(조선일보)

자유로운 토론 막는 전체주의 비판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합리주의는 비판적 논증에 귀 기울이고 경험에서 배우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런 태도를 말한다. ‘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면 우리는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논증과 관찰 같은 수단을 통해 많은 중요한 문제에 관해 사람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이다. - 본문 중에서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1902~1994)는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 빈대학에서 26세 때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1937년에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분야에서 20세기 거장의 반열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은 그가 뉴질랜드 망명 시절인 1938년에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고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3년에 완성했으며 1945년에 출간되었다. 전체주의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시기에 집필됐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제목대로 포퍼가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판단한 사상가들, 이를테면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포퍼의 비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과학철학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점쟁이가 당신에게 “올해 운수 대통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런데 당신은 큰 사고를 당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점쟁이를 찾아가 따졌다. 점쟁이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운수가 대통해서 큰 사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거다.” 점쟁이의 예언은 반증(反證)할 수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점쟁이의 말은 과학이 아니다.

칼 포퍼가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을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기 위한 ‘반증가능성 이론’이라고 부른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과학을 자처하지만 과학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고,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법칙으로 내세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과학적인 법칙이 아니라 점쟁이의 예언에 가깝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의 오류를 수정하여 더 나은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의 오류를 다시 수정하여 좀더 나은 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반증을 통해 오류를 점진적으로 수정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포퍼의 이러한 과학철학은 사회철학에서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것이 지금의 불평등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나은 방법인지 토론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도출한 합의에 따라 기존의 제도나 법률을 수정한다. 그렇게 수정한 제도나 법률에 다시 문제점이 있다면 역시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합의를 도출한다. 이런한 과정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한마디로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개혁 노선인 것이다.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닫힌 사회’에서는 문제를 개선해 나갈 수 없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포퍼가 보기에는 ‘철저하게 닫힌 사회’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철학자가 통치하는 플라톤의 이상(理想)국가는 가능하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꿈에 불과하다.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자(者)가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결국 독재에 대한 옹호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국가는 비판과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혁명에 의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또한 역사의 일정한 법칙을 상정하고 그 법칙의 절대성을 강조함으로써, 반증될 수 없는 사이비 과학을 주장했다. 더구나 그가 꿈꾸는 공산국가는 혁명을 통해 달성된다는데, 이것은 결국 사회 전체를 단번에 변화시켜 어떤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릇된 기대일 뿐이다. 
 
포퍼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완전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완전한 사회를 혁명과 같은 수단을 동원해서 단번에 이룩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고, 이 세상을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선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engineering)이라 부른다. 마치 결함 있는 기계를 기술자가 고치고 개선해서 좀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 내듯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내세운 포퍼가 폭력과 유혈을 수반하는 혁명에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폭력과 혁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더구나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오며 자유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가 폭력, 혁명, 독재 등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나치즘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가져온 비극을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와 ‘점진적 사회공학’이 지닌 문제점은 없을까? 첫째, 혁명이나 폭력을 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개선할 길이 보이지 않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에서 점진적 사회공학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열린 사회의 핵심적인 조건인 시민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은 긴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면 정말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전체주의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이자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옹호인 것만은 틀림없다. 포퍼가 꿈꾸었던 ‘열린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때문에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펼친 주장에 계속해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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