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화학물질의 해악을 낱낱이 고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50년대 정도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미국에서조차 대단히 희귀한 존재였다. 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여성 과학자는 남성 과학자들의 위세의 눌려서 그야말로 얌전히 실험실만 지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1962년 자그마한 몸매의 한 여성 과학자가 세상을 뒤바꿀 만한 놀라운 일을 저질렀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때까지만 해도 ‘꿈의 화학약품’으로 간주되던 농약과 살충제의 위험성을 낱낱이 고발했던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교육을 받고 한동안 연방정부 산하 기관에서 해양생물학자로 일했던 카슨은 자신이 습득했던 과학적 정보를 유려한 필치로 풀어낼 수 있는, 과학과 문학을 겸비한 보기 드문 재원(才媛)이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발간이 타고난 능력만으로 될 수 있었던 일은 물론 아니었다. 책의 내용은 당시 번창일로에 있던 화학회사들과 화학공업계에, 그야말로 메가톤급 핵폭탄이 될 것이 자명했다. 만약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하고자 하는 결연한 용기와 의지가 카슨에게 없었더라면 책 발간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 발간 이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레이첼 카슨이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용기 있는 고발 정신’ 때문이라고 하겠다. 열성적인 생태주의자이자 자연보호주의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슨은 1964년 56세 때 된 암으로 사망하였다.

사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온통 뒤바꾸는 기폭제가 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그런데 ‘침묵의 봄’은 당시만 해도 기적의 화학물질로 칭송되던 각종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들이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의 주범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고발함으로 써 그런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미 대륙의 한가운데 모든 생물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평화로운 한 마을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 누웠다. …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내 새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을 알아챘다. 봄이 돌아왔지만 새들의 지저귐은 들을 수 없고 들판과 숲과 습지에는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이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카슨은 그런 침묵의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인류에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원흉으로 살충제와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의 대량 사용을 적시하였다. 화학물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해서 개발된 약품들 중 일부가 유해곤충의 박멸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화학약품은 소량만 살포해도 효과가 탁월하고 약효가 오랜 기간 지속되며 무엇보다도 제조가 용이해 값이 싸다는 장점 때문에 매년 엄청난 양이 농경지와 자연에 뿌려졌다. 그리고 매년 점점 더 많은 화학약품이 개발되면서 그 독성과 지속성 역시 점점 더 강력해졌다.

자연에 살포된 농약과 살충제가 애초 박멸하고자 했던 해충에만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먼저 농부들을 중독시키고(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농약중독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이어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느릅나무 잎-지렁이-울새-독수리’의 순서로 화학물질이 축적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런가 하면 화학물질의 오랜 지속시간으로 말미암아 DDT와 PCB처럼 이미 오래 전에 생산이 중단된 화학약품도 여전히 하천과 호수의 침전물 속에서 검출되고 있다. 심지어 전혀 그런 물질을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에스키모인의 몸 속에서까지도 발견된다.

카슨의 경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카슨은 탐욕에 가득 찬 인간은 점점 더 강력한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자연계의 균형이 깨지고 급기야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새들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슨에게 있어서 ‘침묵의 봄’은 곧 지구의 멸망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침묵의 봄’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대인의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보다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농약과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 봄이 찾아와도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봄이라 하겠는가? 그런 환경 속에서라면 우리 생활이 제 아무리 풍요롭다고 해도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침묵의 봄’은 환경오염의 재앙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은 비록 느리게나마 서서히 세상을 바꾸어 나갔으며 이제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과거 4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적어도 레이첼 카슨이 우려했던 ‘침묵의 봄’은 현실로 재현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지금도 일부 환경낙관론자들은 카슨의 경고가 너무 과장된 것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대에 앞선 그런 경고가 있었기에 ‘침묵의 봄’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것이리라.

‘침묵의 봄’이 발간된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만약 21세기가 40년 전 카슨이 살았던 시대보다 환경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카슨의 주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카슨이 고발했던 주장의 상당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고 자연계에서 쉽게 분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인체 호르몬과 유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미량의 화학물질이 여전히 자연계에 존재하면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40여년 전에 발간된 저서에 대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저서가 과학기술 분야의 책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책 또한 오늘날 우리 현실에 꼭 맞는 그런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사용되는 농약은 더 이상 카슨 시대의 농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책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여성 과학자의 예리한 관찰력, 용기 있는 고발정신,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통찰력이다. 가뜩이나 혼돈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한 번쯤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카슨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물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도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농약과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면 그런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를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