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과학으로 ‘살아 있는 지구’ 개념 밝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Gaia)
 
우리는 ‘저명한 과학자’라면 당연히 세계 굴지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과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엄청난 연구비와 잘 훈련된 연구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오직 널리 알려진 대학과 연구소만이 그런 자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예외도 있는 법.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대표적인 인물로, 그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가이아 가설’만큼이나 독특하다.

젊은 시절의 러브록은 여느 과학자들과 다름없이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과 연구실을 전전했다. 하지만 화학과 의학 두 분야에서 모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극미량의 화학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프라는 분석장치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부(富)를 동시에 얻었다. 과학계에서는 1960년대부터 DDT를 비롯한 유해화학물질이 환경 속에 축적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만약 러브록의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그런 극미량의 유독물질에 대한 연구는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러브록은 40대 중반부터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자신의 저택 겸 연구실을 마련하고 이후부터 독립적인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특히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1960년대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잠시 연구하는 동안 ‘지구의 모든 생물이 마치 하나의 초생물체(Superorganism)처럼 함께 행동하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과 물질순환 과정을 주도한다’는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획기적인 사고는 1970년대에 ‘가이아 가설’로서 처음 제안되었으며 1979년 발간된 ‘가이아’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가이아’는 이후 지구과학과 환경과학, 진화생물학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브록은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과학자, 새로운 사고와 연구 방식을 고집하는 자유분방한 과학자로서 지금도 연구에 분주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은 과거 40억년 전 생물이 지상에 처음 출현한 이후 끊임없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고 단정한다. 즉 태양복사열 증가, 화산폭발, 운석의 충돌, 대륙이동 등 여러 지질학적 원인에 의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대기와 해양의 조성이 변화하고 또 기후가 바뀌었으며, 생물은 그러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런데 지구에 생명이 처음 출현했던 당시의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의 대기권에는 산소가 21%나 들어 있다. 또 바다는 지구 탄생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생겨났는데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만약 하천을 통해서 염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었다면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점점 더 높아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35억년 동안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근까지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누구도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엽 러브록은 전혀 새로운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다. 그는 먼저 지난 30억년 동안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만약 생물의 존재가 지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오가며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생물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해안선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대륙을 이동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생물체의 엄청난 능력에 착안하여 러브록은 자연스럽게 이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이러한 지구의 실체를 일컬어 ‘가이아’(Gaia·주 참조)라고 명명하였다.

러브록은 40억년의 생물 역사가 보여주듯이 가이아가 대단한 자가조절 능력을 발휘하는 거의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 운석의 낙하로 모든 공룡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대재앙이 발생하는 등 지구는 크고 작은 재난을 무수히 많이 겪었지만 전체 생물종이 일시에 사라진다거나 또는 그로 인해서 중요한 물질순환의 과정이 단절된다거나 했던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가이아의 생존 능력이 그처럼 강인하다’는 부분을 오해한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은 가이아 가설과 러브록에 대해 한때 상당한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다. 지구의 생존능력이 그토록 강하다면 우리는 환경파괴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품이 현대사회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그는 타고난 환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이아가 몇 가지 환경적 재난에는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을 크게 강조한다. 마치 우리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팔다리의 중요성과 두뇌, 허파, 심장의 중요성이 서로 다른 것처럼 지구를 구성하는 가이아의 각 부분도 그 중요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브록은 감기와 폐결핵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다른 것처럼 환경오염도 그 종류에 따라서 가이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러브록은 열대우림 지역을 지구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열대우림은 방대한 양의 수증기를 발산하고 동시에 구름의 형성을 돕는 여러 종류의 가스와 입자상 물질을 엄청나게 방출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흰 구름은 그 자체가 태양열을 반사해서 외계로 빠져나가는 에너지의 양을 증가시키고 또 구름에서 비를 내리게 하여 대기권의 온도를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열대우림을 인체에 비교한다면 마치 피부와 허파의 역할을 합친 것과 같다고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열대우림을 손상시키는 일은 대규모적인 핵전쟁보다도 더 가이아에 끔찍한 일이라고 그는 우려한다.

러브록은 ‘행성 지구가 현재 지구온난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상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이아 이론은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추세가 열대삼림의 파괴에 덧붙여질 때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우리 인류를 포함하여 생물권 전체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 주(註) | 가이아’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을 일컫는 말로, 지구의 생물을 마치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여신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그 신화를 과학으로 대체했는데, 지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최적의 생존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항상 지구의 환경조건을 스스로 바꾸어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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