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개인의 문화적 취향은 계급을 반영”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구별짓기’(La Distintion·1979)는 현대사회의 문화와 계급의 관계를 경험적인 연구와 독특한 이론으로 규명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는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였다. 저자는 독창적인 사회문화이론가로서 3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또한 68혁명세대 지식인으로서 말년에는 빈곤, 실업, 파업, 세계화 등 현실 문제에도 자주 개입하는 등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닮은 데가 많은 학자다. 부르디외는 사후에 사르트르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0년대 말 전국민을 상대로 한 전국적인 조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음악, 미술, 의상 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요리, 영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프랑스인의 문화적 취향 및 생활양식이 밝혀지게 되었다. 부르디외의 관심은 이 같은 경험적 조사 연구의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르디외의 이론적 관심사는 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문화가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부르디외는 이 책에서 특히 문화와 계급 간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등의 문화적 행위가 때론 의식적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계급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르디외에게 있어 개인이 어떠한 문화적 취향을 갖고 어떤 종류의 문화를 소비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계급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부르디외는 ‘사회공간으로서의 장(場)’ ‘문화자본’ ‘아비투스(habitus)’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

먼저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이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 혹은 이질적인가에 따라 개개인이 서로 구별되는 공간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처럼 상류층은 상류층끼리, 중산층은 중산층끼리 서로 구별된다. 특히 이러한 장에선 개개인이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다양한 자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실상 서열이 매겨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곧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으로, 그 안에서 권력이나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서열을 결정한다.

‘문화자본’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여러 자본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자본이란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같이 어려서부터 내면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클래식을 향유하고 문화·예술 소장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처럼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형성되기도 한다. 또 학력과 같이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자본도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우수한 학업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훌륭한 문화자본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력은 문화자본의 대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과거의 귀족과 하층민, 오늘날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관계처럼 계급·계층 간에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단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어려운 것과 같이 이들 사이엔 문화자본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개인의 취향과 문화소비 경향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재능이나 기호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출신계급(계층), 교육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란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화적 불평등을 설명한다. ‘아비투스’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아비투스가 의식적으로 나타날 때는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된다. 예를 들어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또는 축구보다는 골프를 선호하는 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유한 가정환경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기호를 갖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속한 계급(계층)의 사회적, 문화적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즉 축구보다 골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은근히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도적 전략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듯이 보인다.

또 다른 예로 하층계급이 기름진 음식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는 반면에, 상류층은 채소와 생선류의 식단과 고급 브랜드의 패션을 즐기는 것이 결코 개인적 차원의 취향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남과 구별지으려는 계급(계층)적 차원의 구별이 있다. 축구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부르디외는 계급(계층)에 따라 이토록 취향이 달라지는 것을 두고 하층계급의 ‘필수적 취향’과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자유분방한 취향’이란 말로 구분한다.

사람들은 계급적 위치(상류층이냐 하류층이냐) 및 성향(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취향이 비슷할수록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취향의 차이가 출신, 직업, 정치 성향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샴페인을 마시며 승마와 사냥, 골프를 즐기는 우익성향의 기업체 경영주와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즐기는 좌익성향의 노동자가 친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선호하는 음료, 스포츠, 정치성향 등은 각각의 계급(계층)의 사회적 위치와 상응한다. 이를 두고 문화와 계급이 상동구조(相同構造)를 이루고 있다 본다.

그러나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 소비행태가 반드시 사회계급과 기계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승마, 펜싱, 테니스, 골프는 오늘날 더 이상 상류층만이 즐기는 배타적인 문화행위라고 할 수 없다. 고상한 취미나 스포츠가 중산층에 의해 채택될 때 상류층은 이를 버림으로써 이러한 고상한 취미는 더 이상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역으로 하류층의 문화적 취향이 상류층에 전파될 수도 있다. 청바지는 과거 미국의 하류층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지만 이제 명품 청바지의 경우 일부 상류층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구별짓기’는 현대인의 취향과 소비문화 현상에 대해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이론서다. 일상생활에서의 문화 소비행위는 그 사람의 계층 혹은 계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구별짓기 위해 비싼 외제 승용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며 유명 브랜드의 비싼 옷을 입는다. 또 골프나 승마를 즐기며 해외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런 문화생활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류층의 과시적이고 차별적 의도가 담긴 상징적인 행위일 수 있다. 부르디외의 문화이론은 이처럼 문화 속에 담긴 계급(계층)의 상징적인 행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부르디외의 고찰은 현대인의 소비문화에 대한 마케팅 분석 및 전략 수립의 이론적 근거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