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올해 봄 <교수신문>이 학회지와 계간지 편집위원들을 상대로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단연 카를 마르크스(오른쪽 사진)의 <자본론>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만큼 자본론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자본론만큼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을 찾기가 드문 저작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일 노동운동사를 공부하고 1991년부터 동아대에서 강의해온 강신준(54) 교수(경제학·왼쪽)가 <자본>(1-1, 1-2. 도서출판 길 펴냄)이란 이름으로 마르크스의 주저를 다시 번역해 냈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간 경제대국에 인류지성사의 최상급 고전 반열에 든 <자본> 번역본이 겨우 2개뿐이라는 건 초라한 일일뿐더러,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낙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가 저문 지 20년에 가깝고 ‘퇴물’ 취급을 당한 마르크스가 강단에서조차 거의 사라져버린 우리 현실에서, 왜 지금 다시 <자본>인가?
마르크스 ‘자본’ 번역한 강신준 교수
“그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문헌적 정본 만들기인데, 이 땅에선 아직 제대로 된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 없었다. 이론과실천사가 낸 <자본>은 이른바 ‘운동권 빵잽이’ 6명이 번역을 나눠 했는데, 그 번역초고 최종점검이 내 손에 맡겨졌다. 제1권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분만 손봐서 냈고, 제2권과 3권은 내가 1990년까지 따로 번역했는데 그나마 모두 절판됐다. 영어판 중역본인 비봉출판사판도 한계가 있다. 독일 관념철학을 토대로 한 변증법적 유물론 부분은 매우 논리적이다. 영어로는 이 부분을 옮기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우리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노동운동에 문제가 많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최근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질 때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로 인적 갈등 때문에 갈라섰다는 점이다.”
‘과학의 문제’ 강조한 마르크스
<자본>이 나온 배경을 생각하면 그것은 더욱 문제가 된다. 19세기 유럽에서 번성한 노동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특히 1848년 혁명 때는 파리와 빈이 노동자들 적기로 뒤덮이고 정규군이 쫓겨날 정도였는데도 실패한다. 왜? “마르크스는 그때 결론을 내렸다. 세상의 변화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다, 과학적 논리를 토대로 삼고 과학의 지렛대로 무장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실패한다고.”
우리 노동운동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변혁운동의 최고급 활동이 정당운동이다. 유럽에선 최근의 민주노동당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강령 논쟁이 벌어진다. 강령이란 노동운동의 과학적 프로그램이다. 잘못됐으면 바꾸든가 삭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 논란에도 강령 차원의 논쟁은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진행된, 그 엄청난 동력을 지녔던 노동법 개정투쟁 때도 과학적 프로그램이 없었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것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그것은 17세기 이전에는 없던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이상한’ 가난이었다.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가 왜 가난한가? 그것은 노동력 상품의 부등가교환 때문이며, 노동운동의 실천적 과제는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교환이 사회적 합의과정이라면 교환을 바로잡는 방법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란 다수에 의한 결정을 뜻하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행이다.”
촛불시위도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짚어낼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정치부문의 민주주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달성됐으나, 경제부문은 대혁명으로 권력을 쥔 부르주아의 독재가 확립됐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맛본 대중이 경제부문의 민주주의도 요구하게 되는데, 이 경제적 민주주의가 바로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 독재 상태로 방치됐으나 대중의 저항과 내부모순 때문에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케인스 체제는 바로 이런 내부모순을 완화하기 위한 과두체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임노동세력으로 구성돼 있는데, 원래 금융자본이 제일 힘이 세다. 케인스 체제는 이 세 세력이 힘을 나눠 갖도록 국가가 강제한 것이다. 2차대전 뒤 30여년간 이 체제는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수익률이 떨어진 금융자본이 균점을 깨고 자신이 우위에 서는 자연상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게 신자유주의고, 그것은 민주주의 붕괴와 독재 상태로의 복귀로 귀결됐다. 지금 한국의 촛불시위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거기에 대해 다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가 확실히 발을 빼고 조정역할을 방기하는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추구한다. 촛불시위는 거기에 대한 저항이다.”
경제부분 과감하게 풀어 써
결국 노동운동이나 촛불시위나 불합리한 모순으로 고통당하는 현실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바로잡자는 것이고,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천이며, <자본>은 그것을 위한 과학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강 교수 생각인 셈이다.
그는 사실상 독재를 합리화한 민주집중제 따위를 들고 나온 볼셰비즘을 반쪽 사회주의, 사이비 사회주의라 비판했다. <자본> 번역출간의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레닌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자본>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도 들어 있단다. “노동자의 임금을 산업자본이 빼앗아 가고 산업자본의 이윤을 이자 형태로 금융자본이 또 빼앗아 간다. 이자라는 건 기생소득이다. 기생소득이 숙주소득을 넘어서면 붕괴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 중에 별로 이익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빚을 내서 주주에게 배당하는 빚잔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게 신자유주의다. 빚내서 배당하는 신자유주의는 애시당초 시한부 생명이었다. 우리는 그 다음을 논의해야 한다. <자본>은 그 다음 구상에도 필수적이다. 촛불시위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번역은 쉽게 읽히게 만든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경제 부분은 과감하게 풀어서 우리식으로 옮겼다. “‘상품’ 등 제1권 앞부분은 논리적이고 철학적이어서 딱딱하지만, 중반 이후 공장법 등 역사적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될 만큼 생생하고 재미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