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삶은 뜻대로 안된다고 합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다하다 힘들어 포기한 뒤 다른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원하던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전주의 전통문화사랑모임 김병수(41) 상임대표의 삶이 딱 그렇습니다. 그는 한때 시민단체에 들어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자 애썼지만 힘들고 지쳐 그 일을 그만뒀습니다. 쉬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그곳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고향에서 살맛 나는 마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직함은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관장입니다. 2003년 전통문화사랑모임이 전주시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책임을 맡고 있지요. 마음에 드는 일이랍니다.

한옥생활체험관 운영에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의 꿈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체험관을 바탕으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전주의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8일에 여는 농촌 마을 상품워크숍도 같은 뜻에서 하는 일입니다. 남원 매동마을, 순창 구미마을 등 체험관과 인연이 있는 농촌 마을의 생산품인 곶감, 청국장, 전통주 등의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한 행사지요.

한옥체험관과 함께 전통문화사랑모임에서 함께 위탁운영하는 전통술박물관 직원들은 틈만 나면 농촌마을을 찾습니다. 술만드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김 대표는 “가양주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라며 “농민들이 곡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면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이고 남아도는 쌀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 공방’ 준비중입니다. 70~80대 할머니들이 쓰던 물건을 수선해서 되파는 ‘리폼 센터’입니다. 할머니들의 소일거리이면서 부업을 위한 일입니다.

“얘기하다보니 저도 제 정체성을 잘 모르겠네요. 지금 진행하는 일은 지역과 문화와 농촌을 결합해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성과가 나니 재미 있습니다.”

김 대표는 386 세대입니다. 대학 때는 물론 졸업 뒤에도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997년 무작정 상경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문을 두드린 이유입니다. 경실련에서 도시개혁센터의 일을 맡았습니다. 개발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논리로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일이었습니다. 용적률과 고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아 서울시의 도시계획 조례를 바꿨습니다. 인천공항 부실공사와 부조리를 폭로한 양심선언자와 같이 지낼 정도로 그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도시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해당사자가 많아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대자를 대상으로 날선 표현이 가득한 성명서를 써야 했고, 공무원은 물론 관련 분야의 생각이 다른 학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도 많았습니다. 다툼은 법정으로 비화되기도 했고 이해당사자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싸우다보니 지치더라구요. 동료들 가운데서도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힘이 쭉 빠지고 화도 나더군요.”

경실련에서의 활동은 보람이 있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예 활동을 그만뒀습니다. 한국에도 있기 싫었습니다. 6개월 동안 인도와 네팔을 떠돌았고 돌아와서는 잠깐 동안 쉬기 위해 고향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2001년 일입니다. 다시 서울로 가려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전통찻집 ‘다문’이었습니다.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그는 산조예술제를 준비중인 전통문화사랑모임 사람들을 만났고 여유와 해학 속에서도 일을 놓지 않는 그들의 ‘산조적인 삶’에 이상하게 끌렸습니다.

“어떤 행사라도 준비는 힘들잖아요. 하지만 이동엽 이사장님은 농담과 웃음을 달고 지내시더라구요. 박시도 다문 사장님도 그랬어요. 산조 가락처럼 흩어지지만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는 삶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들과 어울리며 서울에서 쌓였던 내면의 화도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전통문화사랑모임 회원으로 그는 경실련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옥마을 지원조례안을 만들면서 지역 문화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조례를 만들면서 그는 한옥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한옥과 관련한 일을 할 기회도 생겼습니다. 전주시가 한옥마을을 만들어 민간에 위탁한다는 것이었지요.

“시의 계획에 문제가 있어 반대운동을 펴자는 분도 있었지만 일이 상당히 진척되어 반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구요. 전통문화사랑모임에서는 우리식대로 운영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전통문화사랑모임은 2002년 한옥체험관과 전통술박물관 위탁운영자로 선정됐습니다. 첫해 운영비로 3억원을 지원하고 해마다 이를 줄이겠는 조건을 보고 선뜻 나서는 곳은 없었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기에는 “걱정으로 밤에 잠을 못이룰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한옥생활체험관 단장, 프로그램 개발, 예산 확보를 위한 공모사업 신청, 직원 교육 등으로 3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2005년 대학 한 곳을 포함해 두 곳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2차 위탁운영자로 다시 선정됐고 올해 세 번째로 위탁운영을 맡게 됐다고 합니다. 한옥체험관을 전북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의 하나로 키운 데다 지난해 매출액 16억원을 넘겨 위탁 초기 3억원씩 시로부터 받던 지원금을 올해는 1억5천만원이하로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실적을 낸 것이 전주시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통한옥생활체험관과 전통술박물관 운영이 안정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김 대표는 서울에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꿈요? 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과 지역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통문화사랑모임을 지역 공동체 회복을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의 꿈은 ‘모임’이 올해초 실업극복국민재단이 사회적 기업에 주는 가치혁신상을 받을 정도로 현실에서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전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주한옥생활체험관(www.jjhanok.com)은 세화관(世化館)이라 불립니다. 문화의 향기를 나누어 세상의 조화로움을 꿈꾸고 좋은 풍속을 세상에 전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지요.

이름처럼 체험관은 한옥생활, 음식, 놀이, 공예 등 우리의 좋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의 프로그램은 모두 전통문화사랑모임 회원들이 체험관을 운영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밤새 토론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체험관의 프로그램은 민요와 판소리 강습, 연·제기 만들기, 비빔밥 체험, 매듭·나무·한지 공예 등 다양합니다. 대보름이나 단오, 동지 등 절기에 따른 행사도 열립니다. 또 고음반 복원 연주회, 골방 아트영화제, 굿판 등 독특한 기획 행사는 문화예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주를 곁들인 전통음식상에다 한옥생활체험관 소속 예술단 달이앙상블 등 예술인들의 공연이 함께 이뤄지는 ‘연찬’은 체험관이 자랑하는 행사입니다.

한옥마을과 재래시장, 농촌마을 등을 연계한 체험교육 ’옴니버스 문화탐방’과 학교가 쉬는 토요일에 농촌마을을 찾아가는 ‘놀토행촌’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농촌 지역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산야초 효소 품평회,

한옥생활체험관은 문화나눔에도 신경을 써 온누리안, 결혼이주여성, 장애우 등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행사도 자주 엽니다. (063)287-6300.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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