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 1990년 = 장편 극영화 <파업전야>(감독 이은 장동홍 장윤현)는 도둑 상영을 했다. 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이 영화를 정부가 상영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상영장은 최루탄 탓에 눈물로 얼룩지기 일쑤였지만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30만명이 이 영화를 봤다.

■ 1995년 = <낮은 목소리>(감독 변영주)가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극장에 걸렸다. 제작진은 필름 값을 구하려고 ‘백피트 회원’을 모집했다. 관객이 제작자인 이 영화의 마지막엔 수많은 회원들의 이름이 올라간다. 이 작품으로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착취당했던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됐다.

■ 2000년 = “독립영화도 재미있구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감독 류승완)가 나왔을 때 관객의 반응은 이랬다. 반응이 뜨거워 16㎜짜리 단편 4편을 35㎜로 바꾸고 이어 붙여 극장에서 개봉했다. 독립영화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액션이란 장르의 특성을 화끈하게 살리며 관객층을 넓혔다.

■ 2007년 = 서울 종로구 중앙시네마 3관, 일반석 154석, 장애인석 2석, 독립영화를 눈치 안 보고 틀 공간이 생겼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8일 문을 열었다. 제작비 1억원 남짓의 저예산 한국 장편 독립영화를 틀며, 관객이 안 들어도 한 편당 2주 상영을 보장한다.

한국에서 한 해 만들어지는 제작비 1억원 규모의 장편 독립영화는 40여편이다. 이 가운데 개봉되는 영화는 5~6편뿐이다. 전용관이 생기면 17편 정도가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래서 2000년부터 독립영화계는 전용관 설립을 지원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고 드디어 이번에 결실을 본 것이다. 

봉준호, 장윤현, 류승완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도 독립영화부터 출발했다. 독립영화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인력과 시도를 공급하는 바탕이다.

미지수이지만 희망은 있다. 올해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10만여명, 극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4만여명을 모았다. 주류와는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층이 있다는 것이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소장은 “시민단체나 각종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누리꾼들이 함께 홍보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임대료·사업비 약 3억원을 보조하지만 운영비·인건비 등은 티켓을 팔아 벌어야 한다.

인디스페이스는 개관 기념으로 8~21일 <파업전야> <낮은 목소리 2> 등 한국 독립영화 역사 30여년을 개괄할 수 있는 33편을 상영한다. 마이너리티, 관객, 영화, 정치라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삼은 ‘독립영화를 횡단하는 네 가지의 키워드’ 섹션, 2007년 지금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소개하는 ‘독립영화, 아이엔지(ing)’, 실험영화, 독립애니메이션 등을 묶은 ‘독립영화와 친구들’ 섹션으로 구성했다.

인디스페이스말고도 또다른 독립영화 극장이 생긴다. 다음달 1일 독립·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 스폰지하우스가 서울 압구정, 명동에 이어 광화문에 문을 연다.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등도 같은 공간에 들어설 계획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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