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지난 대선에서 처음 도입된 국민경선제는 이번 대선에서 훨씬 보폭을 넓혔다. 한나라당도 제한적으로나마 도입했고, 원조격인 대통합민주신당은 모바일 투표까지 했다. 민주노동당도 대의원 60% 이상이 국민경선제 도입을 지지했으나 가결선인 3분의 2를 넘지 못해 시행하지는 못했다.

현실 정치에서 국민경선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개혁적 정치행위로 지지받는 듯하다. 이처럼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제도는 민주주의를 한단계 끌어올릴 것인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대답은 ‘아니오!’다. 그는 박찬표 목포대 정치미디어학과 교수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함께 쓴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에서 정진민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이 주창해 온 원내정당론과 국민경선제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이 제도는 후보자 중심주의를 강화하면서 정당과 의회 기능을 줄일뿐더러 하층과 사회적 약자의 정치참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다.

정 교수 등은 원내정당론을 통해 정당들이 소수 기간당원의 뜻에 따라 움직이면서 지지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뒤, 이런 괴리를 메우자면 정당이 원외정당적 성격에서 벗어나 의원들의 자율성과 정책역량 강화를 중시하는 원내정당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원 관리 등 정당의 원외조직 관장 사항을 제외한 정책 개발, 입법 등 나머지 정당 업무들은 정당의 원내조직에서 주도적으로 다루도록 하자는 것이다. 후보 경선에 일반 유권자를 참여시키는 국민경선제도 같은 맥락에서 지지한다.

최 교수는 정 교수 등의 이런 견해가 보수적 엘리트 지배구조에 파열음을 낼 가능성, 곧 ‘좌로부터의 접촉 감염’을 차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이념 과잉을 우려하는 중산층 편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 조직을 통해 그들의 권익을 정치과정에 투입하려는 집단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과 경쟁, 이념적 분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제어하려 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편향적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정치학자 로위 등의 연구 결과를 따, 미국 정당의 개방형 예비경선제는 노동자와 하급 중산층, 저학력 유권자, 소수 인종을 포함한 비엘리트층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고 중산층 엘리트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지적했다. 정당 기간조직의 역할이 약화되고 대중매체와 선거자금 동원력이 중요해지면서 주요 정당들의 조직 구조는 ‘후보자 중심-자본 집약적 정당’으로 변모해 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미국에서 예비경선제 지지자도 꾸준히 줄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위를 국민으로부터 직접 도출하면서 그 힘은 꾸준히 늘려 왔으나 그에 비례해 정당과 의회 역할이 줄어들면서 대의제 민주주의 성격은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어 현재 한국 정당의 성격을 포괄정당으로 이해하는 ‘원내정당론자’들의 관점에 맞서 이익갈등에 기반한 대중정당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되면서 사회경제적 구조, 유권자들의 가치정향 등에서 탈산업사회 및 정보사회의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당들이 이익 갈등에 기반한 대중정당이 아니라 포괄정당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노동 소외가 확대됨으로써 대중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견해다.
민주화에도 한국의 정당체제는 노동자를 비롯해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회집단들을 대표하면서 그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한 적이 없기에, 이들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고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넓어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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