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내년 2월 정년퇴임한다. 1989년 47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19년만에 교단을 떠난다. 임용과 마찬가지로 퇴임이라는 그의 거취도 큰 관심의 대상이다.

자본론이 여전히 금서인 시절인 노태우 정권때 그가 서울대에 임용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대학원 재학생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학생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후임을 놓고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경제학자가 후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류경제학자인 상당수 동료 교수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내년 3월 이후 후임자 채용 원칙을 정하기로 한 것은 이런 대립관계의 성격을 반영하는 어정쩡한 타협으로 읽힌다.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게 가장 절실한 주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올해 2학기 그의 학부 강의인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은 100명이다. 이 정도면 다른 강좌에 비해 대형 강의다. 하지만 그는 “너무 적다”고 했다. 분명 수강생 1천명이 대형강의실을 꽉 채웠던 ‘호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렇지만 최근 1~2년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2학기 같은 강좌 수강생이 41명으로 바닥을 친 이후 46, 63 등 조금씩 수가 늘어나고 있다.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 사정이 굉장히 나빠졌습니다. 실업자가 늘고 양극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면서 노동계급 탄압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시장주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죠. 시장에 맡기면 다 해결된다는 주류경제학으로는 이론적 해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가칭 사회과학대학원의 수강생도 지난 1학기 첫 개강때는 등록생수가 30명이었으나 2학기때는 8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 대학원은 그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마르크스 강좌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학교 바깥에서 ‘교육운동’을 벌이고 있는 둥지이다.

그와 제자들이 정년퇴임을 기념해 펴낸 논문집 이름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신정완 편, 서울대출판부)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정성진 경상대 교수·강남훈 한신대 교수를 포함해 진보학자 16명이 자본주의 이후 새 사회의 상을 놓고 다양한 층위의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그는 자본주의 이후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말하면서 ‘점진적 과정’을 강조했다. “운동하는 세력이 하나씩 쟁취하면서 자심감이 생기고 또 쟁취 과정에서 운영 능력이 커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년 민주화 세력의 집권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시민운동이나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이런 것들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 상당수가 노동자를 타락시킨다면서 배척하는 ‘사민주의’ 아이디어도, 그는 적극 수용한다. “독일과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정부가 개입해서 민간의 이윤추구를 줄이고 학교와 병원을 공짜로 하는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실업과 양극화 해결은 어렵습니다.” 이 과정은 또 민중들이 다가올 새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값진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한 ‘궁극적 그림’을 이렇게 요약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생산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생산이 사회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생산이 사회화되면 이익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관리하고 나누어 먹고 공유하는 그런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모든 공장을 다 사회화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에 현 단계에서 재벌 기업의 국유화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자본이 발달하면서, 독점·재벌이 생깁니다. 이것을 사회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쉽습니다. (삼성 회장인) 이건희는 회사 주식의 1% 미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벌은 사회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재벌 국유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이야기가 됩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펴고 있는 ‘재벌활용론’은 재벌의 독점력을 키우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했다. “국내 재벌이든 외국자본이든 자본의 기본은 이윤추구입니다. 재벌도 한국에서 이익 보지 못하면 다른나라로 갑니다. 재벌이 외국자본과 경쟁해서 한국경제와 민중을 돕는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모든 국민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두어야 합니다. 수출산업 위주의 경제성장으로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고용이 필요한 게 아니라 최신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없다고 했다. 세금을 더 내야 자살하려는 사람도 살릴 수 있고 사회도 따뜻해지는 데 세금 몇만원 올리겠다고 하면 보수 신문들은 한목소리로 복지비용이라면서 반대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지금의 우리 소득수준에 비해 훨씬 낮았던 1948년에 병원과 학교를 무료로 했고 완전고용 달성, 복지국가 건설을 뼈대로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사회적 합의는 고작 자본가의 이윤을 늘려주는 그런 것입니다.”

”사회과학대학원 강의에 전력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마르크스 전집을 우리말로 옮기고 싶습니다. 모두 60권 분량인데 국내에는 6권 정도가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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