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재야 세력이었지만, 이후 기존 제도권 정당에 가입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정치인들의 최근 근황을 잘 소개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이라면, '운동권 출신 (제도권) 정치인'이라 총칭해놓고, 실제로는 주류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글쎄요.. 성한용 기자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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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성한용 칼럼)

김근태 의원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 것은 6월12일이었다. 그와 가까운 몇 의원이 만류했다. ‘세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김 의원은 불출마를 강행했다. 그 뒤 ‘지티(김근태)계’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인영 이기우 의원 등은 국민경선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다른 후보 캠프로 간 사람도 있었다.

지난 10월1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후보자 지명대회의 주인공은 정동영 후보였다. 이인영 의원이 대회를 진행했다. 후보 기자회견 사회는 이기우 의원이 맡았다. 그날 저녁 두 의원과 ‘지티계’ 당직자, 보좌관들은 장충체육관 앞 족발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분위기가 침울했다. 누군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김근태는 경선에 나서지도 못했다. 운동권 출신인 이해찬과 손학규는 저 꼴이 됐다.”

70~80년대에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통칭하여 ‘운동권’이다. 운동권들 중 일부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합법적인 공간, 주로 야당으로 들어가 안에서 싸우겠다는 명분이었다.

1988년 ‘평민연’(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1991년 ‘신민련’(이우정 신계륜 박우섭), ‘민연’(이부영 유인태 제정구), 1995년 ‘통일시대 국민회의’(김근태 심재권 천정배) 등이 제도권 정당으로 들어갔다. 여야가 바뀐 뒤 2000년·2004년 총선에서는 80년대 학생회장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임종석·김영춘·오영식·우상호·송영길·최재성 의원 등이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지금,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좌절감과 낭패감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에서 져 정권을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은 여기저기서 ‘죄인’ 취급을 당한다.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독재와 싸웠다.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국가를 끌고 가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이목희 의원·54)

“2005년 대연정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연정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민주당이 살아났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들은 더 나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대안으로 요구했다. 단순한 생활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안이했다.”(이인영 의원·43)

“가치는 사라졌다. 비전은 창출하지 못했다. 세력만 남았다. 국민들은 우리를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본다. 그게 현실이다.”(조현우 국회의장정무수석·45)

운동권 출신들은 역사적 책무를 다한 것일까? 그들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

임채정 국회의장(66)은 요즘 주변 사람들과 많은 토론을 한다. 대략의 결론은 “비전을 찾아야 한다. 진보적 가치를 중심에 둔 새로운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원식 의원(50)은 이렇게 말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바닥을 살피면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은 물로 이어진다. 지금은 몸을 낮춰야 할 때다. 자기를 버리고 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장기다. 희망을 접어선 안된다.”

하긴 해답은 언제나 치열한 고민 속에서 나온다. 그들이 과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성한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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