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2008년 사극의 시계는 앞으로 당겨질까? 193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전설적인 마피아 보스 제이슨 리(이장손·사진) 일대기를 담은 <자이언트>, 가수 이난영(사진)을 그린 <목포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를 다룬 <비운의 이방자 여사> 등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줄줄이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이는 사극 열풍이 우리 시대 가까운 역사로까지 확대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전 같으면 20세기를 그린 시대물은 대부분 시대 배경만 빌어 쓰는 허구적인 드라마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사극과 구분됐다. 그런데 2008년 예정작 가운데 <단군> <일지매> <홍길동>은 고대와 중세를 배경으로 허구와 상상력을 강조하는 반면에 20세기 실존 인물을 다룬 드라마들은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역사극에 가깝다.

<다모> <주몽>의 정형수 작가가 집필하는 <자이언트>는 100여년 전 미국 뒷골목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 미국 쪽 작가진이 합류할 예정이다. 가수 이난영의 굴곡진 인생사와 주변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목포의 눈물>은 이선희 작가가 여러 해 동안 연대기와 관련 자료들을 취재해온 결과물이다. 이 작가는 해방 전후 가요사와 문화적 분위기를 꼼꼼히 고증한 데다가 이난영씨의 유족들을 통해 인간 이난영의 캐릭터를 되살리는 작업을 거쳤다.

작가들이 ‘20세기 역사극’에 도전하는 이유는 압제와 전쟁의 시대 자체가 어떤 작가의 상상력보다 극적이기 때문이다. 또 채 잊혀지지 않은 20세기 초반 인물들의 영화와 부침은 실감나는 역사극의 재료라는 것이다. 이선희 작가는 “일제시대와 전쟁, 만주·일본·한반도를 활동 무대로 했던 한 스타의 사랑과 욕망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동경과 공감을 얻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방자 여사 일대기를 준비하는 정하연 작가는 “격렬하고 자극적인 사극이 유행하는 경향이지만, 가까운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인물의 이야기는 굳이 허구적인 재구성이나 자극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며 “극화를 배격하고 사실에 충실한 사극의 원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20세기 역사극’은 퓨전, 판타지 사극이 방치했던 사료와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돌리고, 퇴행하는 사극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에스비에스 구본근 드라마 국장은 “요즘 사극은 영웅과 승리를 지향하는 경향인데 암울한 시기를 재현한 역사물이 과연 대중성이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제작과 편성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드라마 <서울 1945>를 둘러싼 논란처럼 근현대사에 따르는 이념 시비와 유족들의 이의제기는 제작진들의 사전검열을 부추긴다. 현실과의 긴장관계는 ‘20세기 역사극’의 자산이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사진한국방송,목포문화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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