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세태풍자극이 아니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초절정 비극이 된다. 성정의 우유부단함과 영혼의 뺀질뺀질함, 그리고 경제적 무능함을 가진 한 젊은 남성이 제도 앞에서 느끼는 주눅을 냉소와 자조로 표현하며 뻗대다가 결국 처절하게 무릎 꿇게 되는 사연인 것이다.

"아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요?" 이 너무나도 순진한 역설법은 '시장'에서 그 조건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실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그 따위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자기방 기제가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제도권 속으로 쑥 진입하기에, 혹은 제도권 밖에서 격렬히 저항하기에, 별 변변한 무기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그는 제도를 얕잡아 보는 태도를 표방한다.

(한겨레,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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