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광주민주항쟁의 열흘을 직설화법으로 묘사한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기보다는 현재의 관객에게 “만약 당신이 광포한 폭력에 부모 형제를 무참히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냐”라고 묻는다. 민감한 해석을 피하고 안전한 흥행공식을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소재에 끼워맞췄다는 비판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화려한 휴가〉가 광주민주항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알리는 데 효과적인 전략을 택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개봉 8일 만에 2백만명 관객이 20대건 50대건 눈물, 콧물로 답했다. 여전히 뜨거운 역사의 상처를 다루면서 지역과 연령의 경계를 넘어 공감대를 끌어낸 것만으로도 〈화려한 휴가〉의 의미는 얏잡아 보기 어렵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목포는 항구다〉로 데뷔해 〈화려한 휴가〉를 두번째 작품으로 만든 김지훈(36·오른쪽) 감독과 주인공 민우를 맡은 배우 김상경(35·왼쪽)을 만났다.

-김상경씨도 시사회에서 우셨다면서요?

(김상경) 지금 또 봐도 울어요. 제 영화는 잘 안 보고, 봐도 “저땐 왜 저렇게 했을까” 객관적으로 따지고 드는 편인데 이번엔 달라요. 제 연기가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 슬퍼 보이는 거예요. 그만큼 5·18이 가진 힘,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요소가 큰 것 같아요. 대구, 부산에서 반응이 좋으니까 광주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유가족이나 생존자분들이 좋아하셨어요. 한 시사회에선 중학교 여학생이 서서 대성통곡을 해서 어깨 두드려줬더니 놀라서 더 울더군요.

(김지훈)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건 아닌지 …. 제가 하고 싶은 거랑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니까요. 부담이 많이 됐는데 시사회 끝나고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사람을 다루려 했던 점에 호응해주는 게 아닐까요?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김지훈) 대구에서 자랐는데 저도 광주민주항쟁이 폭동인 줄 알았어요. 대학 때부터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내공도 없고 해서 제가 만들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가 “‘먹물 냄새’ 잘 빼겠다”고 저보고 해보라는 거예요. 2004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증언록, 다큐멘터리, 소설을 보고 유가족을 인터뷰했죠. 극적인 인물들도 많았지만 취지에 맞는 캐릭터로 골랐어요. 군인들의 폭력에 동의할 수 없어 옷 벗은 경찰 이야기도 증언록에 나오는데 시민군 편에 서는 퇴역 장교 박흥수(안성기) 캐릭터는 거기서 가져온 거예요. 금남로 재현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미술감독이 당시 도면을 구해 오고 사진, 영상물과 대조해보며 꼼꼼하게 만들었어요.

(김상경) 대학교 다닐 때도 연극 공연하랴 뭐 하랴 5·18 비디오테이프 하나 못 봤어요. 그래서 평범한 민우 역에 더 잘 어울렸는지도 몰라요. 매니저한테 〈화려한 휴가〉에 대해 듣고 “지금 광주 이야길 왜 한대?”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처음 반까진 웃기고 뒤로 갈수록 참혹해지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어요. 광주민주항쟁이란 역사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 눌려요. 감독도 배우도. 뭐 하나 잘못하면 욕먹을 것 같고…. 힘 빼는 게 어려웠어요.

-익숙한 규칙들을 많이 가져다 쓰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치적 의견이 없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점도 비슷하고요.

(김지훈) 당시에도 민초들의 관심사는 내 가족의 평안과 행복 아니었을까요? 일반인들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 자기 존재감을 발견하게 되느냐가 광주민주항쟁의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광주항쟁의 역사적 정치적 평가는 끝났다고 봐요. 무서운 건 당시 사람들이 잊혀져 간다는 거죠. 주인공 민우 캐릭터는 원래 시민군의 대변인이던 윤상원 열사에서 출발했지만 공부할수록 민초의 힘을 제대로 표현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뀌었어요. 또 영화에 상업적인 요소가 있다고 속물적이라고 보는 건 잘못이에요. 모든 영화는 돈이 들어가니까 상업적일 수밖에 없어요. (익숙한 장치를 넣은 건) 관객이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역사적 사실과 관객이 만나게 다리를 놓아야죠. 관객과 소통하면서 투자자의 위험 부담도 줄여줘야죠.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영화감독은 판사도 정치가도 아니에요. 저는 원래 아예 “빵” 총소리가 난 뒤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파고들고 싶었지만 광주항쟁을 모르는 세대도 있으니 당시 정황은 요약 정리해 넣었어요.

(김상경) 주요 인물들은 한번도 ‘민주’라는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이념과 정치적 메시지가 주도하는 영화라면 10대, 20대는 “지루해” 그러고 안 봐요. 30대 이상은 “아는 걸 왜 또 만들어” 그러면서 안 봤을 거예요. 그저 남의 슬픈 얘긴 거죠. 이 영화는 단순하고 무식해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보고 관객이 “열 받네”하면 굳이 영화에서 발포를 누가 지시했는지 의미가 뭔지 선생님처럼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객이 찾아봐요. 우린 찾고 싶은 마음만 주면 되는 거죠. 그리고 광주항쟁 자료를 보면 모인 분들이 대개 그냥 아저씨, 아줌마들이에요. 무고한 시민을 군인들이 말도 안 되게 괴롭힌다니까, 모인 거예요. 그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화가 나서 나온 건데 빨갱이라고 폭도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외로웠겠어요.

-그런데 왜 주인공들은 모두 표준말을 쓰고 웃기는 조연인 인봉(박철민) 용대(박원상)만 전라도 사투리를 써요?

(김지훈) 이건 한 공간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잖아요. 그동안 광주는 내 일이 아니라고들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표준어를 쓴 것도 있고 사투리를 쓰면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도 연기가 좀 어색해져요. 박철민씨나 박원상씨는 원래 전라도 말을 잘해요.

-슬픈 장면 앞뒤로 코믹한 장치들을 넣어두셨더군요.

(김지훈) 가장 슬플 때 웃음이 나올 수도 있고 웃음이 나올 때 눈물이 흐를 수도 있죠. 광주민주항쟁 때 시민들은 자신의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애썼어요. 그런 배려와 같은 맥락에서 코믹한 설정들도 넣은 거예요.

-그런데 주인공 민우는 너무 바르기만 한 청년 아닌가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나요?

(김상경) 너무 삐뚤어지신 거 아닌가요? (웃음) 첫 장면에서 민우 얼굴이 펑퍼짐하게 터질 것 같잖아요. 뒤로 갈수록 까칠해지죠. 민우는 그저 신애랑 결혼해서 동생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사람인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사로 변해가죠.

(김지훈) 상경씨가 민우의 얼굴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알아서 살도 빼고 …. 우린 맛있는 거 많이 먹었는데 미안하죠. 그야말로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을 찍을 땐 그 전날 밤을 새고 왔더라고요. 
 
-애국가가 흐를 때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발포하고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에선 김상경씨가 진짜 넋을 잃은 듯 보이더군요.

(김지훈) (증언을 들어보면) 더 지옥 같았어요. 그만큼 극한으로 몰고 갈까 하다가 관객이 분노와 두려움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기로 했어요. 그 장면은 유리창도 깨지고 그래야 해서 딱 한번에 가야 했어요. 상경씨가 뛰어나오는 순간 상경씨 같지가 않더라고요. 동생을 부여잡고 울 때는 한 마리 가냘픈 짐승 같다고나 할까?

(김상경) 진짜 동생이 죽어간다면 다리가 풀리겠죠. 바보처럼 뛰어야 해요. 우는 건지 웃는 건지도 모르는 공황 상태에 빠지겠죠. 넋을 잃어야죠. 망월동 국립묘지에 참배 갔을 때 묘비에서 당시 고교 1학년이던 학생 사진을 봤어요.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인데 딱 동생 같은 거예요. 그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금남로 장면에선 저도 모르는 제 얼굴이 나오더라고요. 동생을 병원으로 옮기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처음으로 컷이 된 뒤에도 울음이 멈춰지지 않는 경험을 했어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거의 다섯 달 내내 광주에 있었어요. 금남로 세트에 있으면 차도 포니고 80년대 풍경인데 거기서 먹고 자고 하다가 서울에 오면 정신이 흐트러지더라고요.

-마지막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더라고요.

(김지훈) 윤상원 열사가 숨지고 난 뒤 영혼결혼식을 올릴 때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에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요처럼 대중을 사로잡는 정서가 있어요. 꼭 넣고 싶었어요. 살아남은 신애(이요원)의 표정에는 제가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숨어 있죠. 그거 말하면 영화 보실 때 재미없겠죠?(웃음)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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