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우울해하는 친구녀석과 별 생각 없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습니다. '팜플렛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면 그냥 볼'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죠. 중국 지아 장커 감독의 <세계>였습니다. 상영관은 꽤 한산하더군요.

- 포스터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비를 맞으며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있길래, 중국식 사랑얘기이겠거니 했지만, 배경은 중국 베이징의 세계공원(각국의 유명한 조형물들을 축소시켜 모아놓은 공원)이었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남여가 아니라, 이미 사귀고있는 남여, 타이성과 타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 장면 하나. 타이성은 세계공원의 경비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를 찾은 고향 친구, 그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그에게 공원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는 타이성. 그에게 친구 하는 말. "너 제국주의의 수호자가 다 됐구나."
중국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자본주의 국가의 조형물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 장면 둘. 타오를 찾아온 타오의 옛 남자친구. 불안해진 타이성은 사랑을 확인하겠다며 거칠게 타오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타오는 화를 내고, 이튿날 브로커들을 만나 위조여권을 팔고있는 타이성의 모습이 잡힙니다.

- 장면 셋. 타오가 일하는 극단에 함께 하게 된, 러시아 배우들. 안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타오와 곧 친해지지만, 안나는 극단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 장면 넷. 타이성은 사채업자의 심부름으로 사채업자의 돈을 받으러갑니다. 그리고, 그와 동행하는 쉬첸. 동행길에 친해진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쉬첸의 직장으로 찾아온 타이성. 빽빽히 들어앉은 재봉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쉬첸은 견습 재단사들과 함께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이라는 춤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타이성은 쉬첸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만, 쉬첸은 곧 프랑스로 떠날거라며, 먼저 떠나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 장면 다섯. 타이성에게 걸려온 전화. 얼마 전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았던 고향 동생이 수당이 높은 야간작업을 하다 심각한 재해를 당했습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종이에는,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장면 여섯. 타오의 극단에서 연 파티. 한 극단주가 타오를 따로 불러내어, 극단을 그만 두고 자신과 함께 대만으로 가면 호강시켜주겠다며 유혹합니다. 끈적한 유혹을 거절하고 화장실로 몸을 피하는 타오. 거울을 바라보는 타오 옆으로 짙은 화장을 고치는 접대여성들이 분주합니다. 그리고, 뜻밖에 안나를 만난 타오는 끝내 울고맙니다.

- 장면 일곱. 몇일 전 부터 극단주와 애정행각을 벌이던 극단 동료가 새 매니저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의 결혼식에서 타오는 우연히 타이성의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확인하고 맙니다.

- 장면 여덟. 타이성으로부터 떠난 타오를 타이성이 찾아옵니다. 타이성은 타오를 달래보지만, 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두 사람의 시체가 동네 사람들에 의해 실려나옵니다.

- 생각 하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에는 늘 약간의 오차가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경험이 많거나, 진지할 수록 그 오차가 줄어들지만, 제게는 꽤나 박한 능력이지요. 물권법이 통과되었다느니,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느니, 농촌에 사람에 없다느니, 도시에 일자리가 없다느니, 폭동이 일어났다느니 하는 숱한 풍문들이 이 영화 속에 오롯이 녹아 있었습니다.

- 생각 둘. 사실, 영화는 꽤나 익숙한 풍광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5공화국을 전후로 해서 제작되고 상영되었을 영화들이겠죠. 중국의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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