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팔봉 김기진, 김유정, 채만식, 그리고 유석 조병옥. 얼핏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듯한 이 네사람들에게는 뜻밖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일확천금의 꿈’을 찾아 금광으로 떠났던 사람들이란 점이다. 물론 누런 노다지는 그들을 외면했고, 이들의 꿈은 한낱 백일몽으로 끝나버렸다. 훗날 김유정이 남긴 소설 <금따는 콩밭>과 <노다지>, 채만식의 <금의 정열>에 지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그 열병의 자취가 그대로 담겨 지금에 전하고 있다.

1930년대, 조선땅은 일대 광기에 휩싸였다. 일자무식의 무지렁이부터 대학교수까지, 배운이 못배운이 가릴 것 없이, 가난한 이는 가난해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겠다며 광기에 동참했다. 그 광기의 정체는 바로 ‘금광 투기’였다. 국문학자 권보드래씨가 1920년대 조선을 ‘연애’라는 새로운 감정에 사로잡혔던 ‘연애의 시대’로 명명했다면, 그 뒤를 이은 1930년대는 가히 ‘투기의 시대’라 이름붙일만한 시기였다. 노다지를 잡아 조선 최고 재벌이 된 최창학이나 <조선일보>의 사주가 된 방응모 같은 이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더더욱 불나방처럼 금광으로 몰려들었다.

국문학자인 전봉관(34)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러했던 1930년대에 ‘황금광시대’란 이름을 붙였다. 전 교수가 최근 펴낸 <황금광시대>는 저 멀리 150년전 지구 반대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만 ‘골드 러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70년전 이 땅에도 한바탕 골드 러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역사학자도 아닌 국문학자가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금광열풍을 탐구하게 된 것은 우연같은 필연이었다. 1930년대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기에 금광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이 많은 점에 주목하게 됐고, 그 배경에 ‘금광 투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1930년대 이 열풍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전 교수는 동시에 황금광시대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책은 그렇게 5년을 투자한 결과물로, 전 교수의 첫 대중적 저서다.

“처음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속물이나 무지렁이들보다 오히려 지식인들이 가장 금광투기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골드러시가 있었던 것을 알게된 그때가 마침 온나라가 코스닥 열풍에 빠져들었던 시기였어요. 이른바 배운 이들이 더 투기에 앞장서는 모습이나 맥락이 같은 것을 보면서 투기의 문화적, 사회적 측면을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게 됐습니다.

전 교수는 책에서 근대화나 경제개발같은 경제적 성과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눈물이 녹아있는지, 그리고 투기란 것이 사람들의 꿈속에 얼마나 교묘하게 파고들어 그 꿈을 왜곡시켜버리는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모두가 최창학이나 방응모가 될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진리를 사람들은 애써 무시하며 투기에 나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70년대 개발 성과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당시 아파트 투기, 땅투기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근대화, 그 속에 숨은 투기의 뒤에 가려진 서민들의 피눈물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보물선’ 해프닝이나 이용호게이트 같은 사건을 보면 지금 우리는 여전히 황금광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이용호게이트: 2001년 7월, G&G구조조정(주) 회장 이용호()의 주가조작 사건 때 검찰이 이용호를 불입건하면서 불거진 일련의 로비 의혹사건.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