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앞부분 생략) “홀로 병실에 누워 있으니 묻는다. 아내는요? 자제분들은? 가족간호는 의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가족에 떠넘기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다. 핵가족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멀지않은 장래를 생각해보라. 의료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가족주의적 인정이라면 바로 지금, 시민 스스로가 가치관을 바꾸려하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

내 파트너는 그날 밤 내 증상이 안정되는 걸 지켜보고서야 집으로 갔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왔으나, 요건만 상의하고는 그대로 어학당에 갔다. 이런 행동은 한국에서는 드문 것일까. 병실은 6인실로, 내 양옆의 침대에는 여성들이 환자 시중을 들며 함께 묵었다. 환자 부인들인 모양이다. 허물없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 여성들이 내게 “사모님은?” 하고 묻기에 “학교에 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어쩐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여성이 “자제분들은?” 하고 물어서 “없습니다”고 하자 “왜요?” 하고 거듭 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지만, 특히 이런 경우에는 병원에 문안 오거나 곁에서 시중드는 가족은 없느냐는 의미일 거다. “없다”는 대답은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겐 의외이기도 하고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그 병실 환자들에겐 들락날락하는 아들이나 딸, 며느리들이 병문안들을 왔다.

나중에 파트너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날 처음으로 어학당 수업에 지각한 그녀에게 선생이 이유를 물었단다. “왜 지각했어요?” “지난밤 남편이 입원을 해서…” 그 순간, 선생은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저런! 그런데 왜 학교엔 나왔어요?” 한국에서는 남편이 입원하면 처가 시중드는 게 사회적 상식인 걸까? 그렇다면 내 파트너는 상식에 어긋난 냉혈 인간인 셈이다.

일본의 병원에서는 완전 간호가 원칙이다. 중병이나 수술 직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곁에서 시중을 들 수 없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면회를 할 수 있다. 그런 원칙이 최근 20년 정도 지나면서 사회적 상식이 됐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지킬 것이다.

(중간 생략) 일본의 보수파는 버블(거품) 경기가 꺼진 뒤 긴 불황을 거쳐 전후 민주주의의 근본이었던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거기에는 의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여성의 희생을 강화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하려는 저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인다. 앞으로 일본에서도 완전 간호 원칙이 무너져 여기저기의 병실에서 환자 시중을 드는 가족들 모습이 눈에 띄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인의 가족애가 높아진 결과는 아니다. (뒷부분 생략)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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