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고구려 평원을 달리던 사극의 무대가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9일 첫 방송된 한국방송의 <한성별곡-정>, 9월말에 방송 예정인 채널 시지브이의 <8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는 엠비시 드라마넷의 <별순검>은 모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추리물이다. <왕과 나> <이산-정조대왕> <사육신> 등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사극들도 하반기에 줄을 잇지만, 이들 3편의 역사추리물은 한국적인 장르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다르다.

<한성별곡-정>은 개혁을 꿈꾸는 임금과 신권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의 대립 속에서 음모와 사건에 휘말리는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조 암살 미스터리를 다루는 <8일>은 오세영 소설 <원행>을 원작삼아 정조를 시해하려는 벽파와 정조를 주축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시파의 숨막히는 대결을 전개한다. <별순검>은 조선후기 경찰임무를 수행하던 순검들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며 결정적 운명에 맞닥뜨리는 이야기다.

이들 드라마가 그린 조선후기는 보수세력과 혁신세력이 나라의 운명을 두고 절체절명의 승부를 벌이는 시기로서 극중 정치세력이나 논란거리가 21세기 모습과 닮았다. 특히 수도를 화성으로 옮기면서 정권을 개혁하려 했던 안내상(<한성별곡-정>)과 수구·개혁 모두로부터 견제를 받는 김상중(<8일>), 극중 두 정조대왕을 보면 현실의 어떤 인물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2006년 고대사극이 ‘역사적 정통성 논란’을 부추겼다면, 지금 조선사극은 ‘현재적 정치논쟁’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쯤되면 막가자는 건데…”라는 대사까지 구사하며 상당히 강력한 현실정치의 패러디를 시도한 <한성별곡-정>은 복고의 틀에 갇혀 있던 사극을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8일>을 연출하는 박종원 감독도 “정조가 원래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지만 개혁과 보수로 사회가 갈리며 권력의 비극적인 속성이 드러나는 대선정국의 분위기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추석무렵으로 방송 시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들 세 사극은 멜로드라마를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시도했던 미스터리물의 연장선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한성별곡-정>의 곽정환 피디는 “애당초 외주제작사 주도의 멜로드라마를 대체할 장르드라마를 찾으려는 내부 프로젝트로 기획됐다”고 밝혔다. <별순검>의 이재문 피디는 “현대물로 미국 <시에스아이>에 비길 만한 걸 만들기는 어렵지만, 역사추리물 같은 독특한 스타일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단다. <8일>은 케이블방송 최초 사극이자,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의 박종원 감독이 처음으로 만드는 드라마이다. 배우들은 전부 신인이나 중견 중심의 캐스팅에 기존 천편일률적인 16부작 미니시리즈와는 달리 8부(<한성별곡-정>), 10부(<8일>), 20부 시추에이션극(<별순검>) 형식으로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미술에 투자하는 등 기존 드라마 제작관행을 탈피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작년에 지상파에서 시도했던 4부작 미스터리물은 케이블로 번져가며 새로운 형식의 자체제작 시도를 부추겼다. 올해의 역사추리물에는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 첫 검증은 지금 방송중인 <한성별곡-정>이 될 것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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