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영화감독과 노동자가 만났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니, 진짜 노동자들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극장이 아니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 있으면 찾아가 영화를 튼다. 그래서 디브이디가 먼저 나왔다. 독특한 35분짜리 중편영화 <00씨의 하루>(감독 박정훈)의 이야기다.

<00씨의 하루>의 주연 배우 3명은 연극 동아리 활동조차 안해봤다. 밑천은 영화 주인공 문씨, 허씨, 강씨의 심정을 빤히 안다는 점이다. 금속 공장 직원인 주인공들처럼 김은철(42·문씨역)씨와 강방식(39·강씨역)씨도 금속 공장에서 손마디가 굵어졌다. 노조 활동으로 해고 된 뒤 은철씨는 민주노총 상근자가 됐고 방식씨는 곤충 농장을 한다. 박현철(46씨·허씨역)씨도 같은 이유로 해고된 뒤 전국사회보험노조에서 일하고 있다.

<00씨의 하루>는 평범하고 특별한 주인공 문씨의 일상을 좇는다. 동료 강씨는 용접기계로 라면을 끓여먹는데, 사장이 나타나자 기계 사이로 도망 다니며 젓가락질 하는 모습이 하루 이틀 내공이 아니다. 12시 땡 치기가 무섭게 족구장으로 향하고, 시간은 어제의 복사본처럼 흐른다. 다만 그날 허씨는 손가락 2개를 잃었고 밤엔 유난히 장대비가 쏟아졌다.

영화를 찍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들을 만났다. “캐스팅은 완벽했죠. 어설픔과 연습된 느낌이 충돌하면서 어떤 에너지가 나오는 것도 같고….” 박 감독의 해설은 멋들어졌지만 배우들은 어색해했다.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장대비가 세상을 쓸어가 버리라고 하지’ 그 대사,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인데 내가 영….”(김은철) “손가락 붙이려고 간 병원 장면은 우리 잘 하지 않았나? 연기할 때 뭉클한 게 올라오더라고.”(박현철) “그 장면에서 저도 잘한 거 같애요. 자기가 다쳤으면서 친구들 위로하려 드는 동료를 볼 때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는데 저는 눈물이 살짝 고이는 정도가 맞을 거 같더라고…” 강방식씨가 자랑스레 웃었다. “그게 모두 첫 번째 찍을 때 했던 연긴데 영화엔 두 번째 찍은 걸로 들어갔지….” 세 명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묻어나자 “제 실수로 날려버려서 그렇게 됐다”며 감독이 말꼬리를 내렸다.

<조폭마누라> 조감독을 했던 박정훈씨는 올해 초 ‘노동자의 힘’이란 단체의 공부 모임에서 이들을 만났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시원하게 하고 싶었어요. 배우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실제 노동자가 출연하면 신선하겠더라고요.” 박현철씨는 “단역인 줄 알고”, 김은철씨는 “주연인 줄 알았지만 때마침 술 기운에”, 강병식씨는 “평생 언제 영화 출연해 보겠냐”란 생각에 박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작비 1500만원은 감독이 인맥으로 긁어모았다.

세 주연은 대본 읽기 연습을 했던 두 달이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 감독은 “일주일에 4번 대본연습을 했는데, 보통 영화보다 10배 수준이었다”며 “원래 그런다고 거짓말했다”고 웃었다. 5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모두 일이 있으니 주말에 강행군했다. 스탭들은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주연 배우들이야 지출봉사죠. 밥도 많이 사셨거든요.”(박 감독) 또 연기할 계획이냐고 물으니 박현철씨가 웃었다. “에이 그러겠어요. 이번엔 우리 이야기니까 한 거죠….”

단체로 영화를 ‘불러서 보고’ 싶거나 디브이디를 구매하려면 홈페이지(www.mr00.co.kr)에 글을 남기면 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정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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