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한국 정치에서 사법기구와 준사법기구, 즉 헌법재판소, 법원, 검찰,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과 영향은 최근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사법기구가 민주주의와 민주정책의 향방을 좌우하는 경향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뚜렷한 특징의 하나였다. 필자는 이를 ‘정치의 사법화’, ‘민주주의의 일탈’, ‘소송사회화’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사회에서 사법기구의 역할은 인간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보호의 영역에 그쳐야 한다. 민주주의가 사법에 의해 좌우될 때 ‘다수의 지배’는 ‘소수의 지배’로, ‘법의 지배’는 ‘법률가의 지배’로 전락하고, 정부를 구성·심판·교체하는 국민의 주권과 정당의 역할은 크게 침해받는다.

문제는 정치 사법화가 민주정치의 주체들에 의해 반복되는 데에 있다. 지난 6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건을 보자. 우선 국가원수·행정수반과 정당 지도자라는 이중 지위를 갖는 민주정부의 대통령에게 정치 중립이란 성립 불능의 원칙이다. 특히 정당 지도자로서의 행위를 행정수반으로 의제하여 탄핵·심판·경고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위헌이다.

선거 중립 위반에 대한 대통령 심판이 필요했다면 ‘정치자금 모금’, ‘국회의원 공천’, ‘정당자금 지원’, ‘국회 및 정당 고위직 임면’을 통해 제왕적 위헌적 통치를 지속했던 전임 대통령들이 먼저였다. 그러나 의회와 선관위는 당시엔 침묵한 반면, 위헌적 관행을 중단한 현 대통령에게는 탄핵소추와 사법심판을 시도하였다.

결국 2004년 탄핵소추와 최근 선관위의 결정은 정치적 요인 및 대통령 지위에 대한 헌법·입법 흠결로부터 초래된 사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헌법적, 제도적 권한을 확정받아 보려는 노 대통령의 시도는 일단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헌소 청구는, 민주주의의 위축과 사법화를 더욱 촉진한다는 점에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공할 수도 없다. 외려 의회가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입법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도 제왕적 위헌적 관행과 헌법적 제도적 권한 사이에서 계속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고소·고발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주의의 향방이 연방대법원에 의해 최종 결정되는 현실에 대해 일부 미국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조종’이라며 통탄하였다. 정치 경쟁과 선거 결과가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대한 후퇴를 의미한다. 특히 사법적 진실이 항상 정치적 지지 여부의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고소·고발을 통한 사법적 문제 해결이 갖는 근본문제는 이로부터 연유한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정치 문제의 사법으로의 호소와 철회, 즉 고소·고발과 취하를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자의로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것은 정치 사법화를 넘어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불법이 있었다면 대통령 후보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사법심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공동체를 책임질 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은 필수적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공적 삶에 시민윤리의 합의 기준을 갖추어 오고 있었다. 그 점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민주정부의 총리·장관 후보에 비해 훨씬 약한 검증 기준을 최고 공직후보에게 적용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우리 공동체를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능력과 시민윤리를 갖춘 공직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반복적 위장전입만으로도 총리·장관은 물론 고위 공직 임용조차 불가능한 기준을 풀어, 그 최고 권력자 수준의 인물들로 공직사회가 구성된다면 어떻게 법치, 공직윤리, 임용 검증, 준법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은 지금 고소·고발을 넘어 아예 정치와 진실, 권력과 양심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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