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소련이 붕괴되던 즈음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란 영화가 있었다. 북한 영화 전문가의 말로는 북한에서도 이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그때 제목은 〈모스크바에서는 울어봤자 소용없다〉였단다. 영화 제목으로는 과도하게 직설적인 제목이지만, 오히려 작품의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주는 측면이 있다. 뜬금없이 옛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올해 봄여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이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이 다 그러하지만 매우 많은 대중이 수용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야말로 그 시기 시청자 대중의 사회심리의 변화와 흐름을 적확하게 말해주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올여름에는 확실히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다.

올해 봄여름의 화두는 돈과 범죄다. 5, 6년간 그럭저럭 유지된 불치병과 출생의 비밀에 의한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물론 이는 새 경향을 주도하는 미니시리즈에만 해당된다.) 〈꽃 찾으러 왔단다〉가 유일한 불치병 이야기인데, 이 역시 죽음을 우습게 여기고 돈이 최고라 여기는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오히려 불치병 소재 드라마를 희화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 이전의 드라마 트렌드는 〈육남매〉나 〈덕이〉로 대표되는 가난한 시절 이야기와, 〈토마토〉로 대표되는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였다. 나는 이들이 모두 외환위기의 사회심리를 반영한다고 본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내쫓기는 강퍅한 현실은 모함과 음모에 남의 자리와 사랑을 빼앗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서바이벌 게임의 위기감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한편, 어려웠던 시절처럼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가자는 생각이 복고형 〈육남매〉류의 인기를 동시에 만들어냈다.

이어진 〈가을동화〉류의 불치병 소재의 인기도 같은 요인이었다. 순정적 사랑은 그저 신화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도발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했던 1990년대 초·중반의 신세대 문화는 외환위기로 인해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존재로 전락했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순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고 싶어 했다. 영화에서 〈접속〉, 〈편지〉 등 시공과 생사를 초월한 순정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인기를 끌더니 급기야 그것의 텔레비전 버전인 〈가을동화〉가 2000년에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것들은 모두 지나갔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현에 즈음하여 다시, 현실을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코미디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약간의 부침을 거듭하며 2006년 말과 2007년 봄에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제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는 즈음에는 아예 돈과 범죄가 최신 경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사랑이나 인정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 앞에 놓인 생존을 위한 게임만이 남아 있다.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처럼 선악의 구도가 선명하지도 않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향해 치닫고, 먹고살자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선악 구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 욕망은 〈내 남자의 여자〉나 〈쩐의 전쟁〉에서 보이듯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무섭고도 허망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히트〉에서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수사팀장은 냉철함을 되찾고서야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2007년 여름 대한민국 국민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아니, 대한민국에서는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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