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텔레비전은 지금 퀴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봄 개편을 맞아 침체된 예능프로그램의 구원 투수로 퀴즈 프로그램이란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은 기존 <우리말 겨루기><퀴즈 대한민국><도전 골든벨><스타 골든벨>에 이어 <1대 100>을 내놓았다. 에스비에스는 <퀴즈 육감대결>을, 문화방송은 <환상의 짝꿍><7옥타브><지피지기>를 새롭게 편성했다. 문화방송의 경우 정규 편성을 하지 않았지만 법률 퀴즈인 <스핑크스의 함정>, 대학생들의 퀴즈 도전기 <도전, 퀴즈 원정대>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띄운 바 있다.

새롭게 편성된 프로그램들은 순식간에 관심을 모았다. 지난 1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뜬금없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위에 올랐다. <1대 100>의 첫 회가 방영되던 날이었다. 프로그램은 끝 무렵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을 묻는 쉬운 문제를 냈다. 그러나 보기가 만만치 않았다. ‘황해도 평산 출신’ ‘열여섯 살에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 ‘퇴임 후 3년 만에 사망’ 중 정답을 찾느라 시청자들은 인터넷에 매달렸다. 정답 발표 없이 방송이 끝나자 궁금증은 더 커졌다.

신설된 프로그램들은 정통 퀴즈인 <퀴즈 대한민국>과는 다른 물음표를 던졌다. ‘알거나 모르거나’가 아닌 ‘알 듯 모를 듯’한 문제로 허를 찔렀다. 정통 퀴즈 프로그램이 문제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켜켜이 쌓인 지식을 자랑하도록 만들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퀴즈 프로그램들은 세대, 시대, 정서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감대 형성을 기반에 둔 문제들을 출제했다. 세대별 대표 주자들이 나와 시대별 이슈와 관련된 문제를 풀고(<7옥타브>), 아이와 어른이 짝꿍이 돼 동요 <우산> 속에 등장하지 않는 우산의 색을 맞춘다(<환상의 짝꿍>). 육십대 이상이 ‘석호필’을, 십대가 ‘찍구’를 몰라서 문제를 틀려도 무식하다고 핀잔을 줄 수도 없다. 퀴즈라는 형식을 빌어 ‘퀴즈왕’을 뽑는 건 형식이고, 정답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교감이 내용이다. <7옥타브>의 임남희 피디는 “세대별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시대이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퀴즈를 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게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를 얼마나 많이 맞추나?’보다 ‘풀어가는 과정’을 강조하면서 심리적인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정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상대방을 교란시키고(<퀴즈 육감대결>), 팀의 승리를 위해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지피지기>), 적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 능력껏 도전 단계를 멈출 수 있어야(<1대 100>) 상금을 거머쥘 수 있다.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상금이 커지는 퀴즈의 세계에는 욕심껏 갈 때와 멈출 때를 구별해야 하는 ‘고스톱’이나 인생의 명쾌한 진리가 담겨 있다.

퀴즈 프로그램은 직접 출연하든 집에서 시청하든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고, 교양과 예능 프로그램의 순기능이 합쳐져 만족도가 높다는 게 장점이다. 문제가 주어지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도 숨 가쁘게 변할 만큼 반응도 순간적이다. <환상의 짝꿍> 유호철 피디는 “퀴즈 프로그램은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며 매번 다른 문제와 사람들이 나오니 식상함이 적다”면서 퀴즈 형식의 인기를 설명했다. <1대 100>의 전진학 피디도 “지금의 퀴즈 프로그램은 30%의 문제와 70%의 문제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서 “퀴즈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내용이 달라지면서 선호하는 진행자도 바뀌었다. 신뢰감을 주던 지적인 아나운서들보다 긴장감을 덜어주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끌어내 줄 수 있는 연예인들이 주목받는다. 나라별, 문화별 마찰도 적어 프로그램 포맷 수입과 수출도 쉽다. <1대 100>은 네덜란드에서, <퀴즈 육감대결>은 일본에서 포맷을 사왔지만 우리식으로 바꿔 선보이면서 거부감이 없다. <도전 골든벨>은 <스타 골든벨>로 가지를 치더니 중국과 대만으로 포맷을 수출했다.

한국방송영상진흥원의 윤호진 박사는 “상금이 걸려 있어 사행성 조장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시청자들에겐 참여하고 생각하는 동기를 제공하고, 제작진들에게는 저비용 고효율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형식이라 드라마보다 판매가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프로그램 개발을 적극 권장할 만 하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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