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 통치 국가의 근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제국주의와는 달랐다는 게 이른바 ‘일본 예외주의(exceptionalism)’이다. 이런 맥락에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은 일본이 식민지였던 한국에 대해 ‘개발과 저개발’을 병행한 통치를 해, 저개발 일변도 정책을 펼친 다른 제국주의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한국과 대만이 1960년대 이후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달리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이런 논리가 저변을 넓혀왔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대 앤 부스 교수는 최근 온라인 아시아 태평양 문제 전문 매체인 〈재팬 포커스〉에 실린 논문에서 1910~1938년 사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나라들의 각종 사회·경제 지표의 변화 추이 등을 분석한 결과 ‘일본 예외주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즉 한국과 대만이 이 시기에 다른 식민 통치 국가들에 비해 더 발전했다는 일관된 지표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부스 교수는 먼저 1인당 국민소득을 살펴봤다. 1913년엔 홍콩(영국 식민통치) 싱가포르(영국) 필리핀(미국) 인도네시아(네덜란드) 타이(독립국) 한국 대만 버마(현 미얀마, 영국) 순이었다. 16년이 지난 1929년 한국과 대만은 고작 타이만을 앞섰다. 1930년대엔 한국과 대만이 필리핀 다음의 위치로 올라섰다. 부스 교수는 한국이 1930년대에 들어서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를 따라잡았는 데, 이는 당시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가 동남아 국가에 상대적으로 크게 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용현황 역시 일본 식민지배의 우위를 말해주지 않는다. 1938년 인도네시아에서 농업 분야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분의 1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41%에 달했다.
예산 비교에서도 일본 예외주의에 대한 확증은 잡히지 않았다. 필리핀이나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 식민지 국가들은 1910~1938년 사이 교육이나 보건·농업 등 민생과 관련된 분야에 한국보다 더 높은 40% 이상의 예산을 할애했다. 대만은 이 시기 예산의 약 60%를 이 분야에 썼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치안과 행정력 유지에 들어간 예산이 더 많았다. 특히 1930년대 후반엔 기형적으로, ‘운송’ 분야 예산이 30%에 달했다. 당시 주민들의 생활 수준 비교에서도 일본 예외주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 1930년대 후반 일반사망률(주민등록 기재 인구 대비 당해 연도 사망자수 비율) 지표를 보면 한국은 23%로 말레이시아(21)나 타이(22)보다 높았다.
취학률에서 한국은 필리핀과 타이에 비해 현격히 떨어졌다. 1930년대 후반 전체 인구 가운데 학교에 재학중인 비율은 필리핀 11.5%, 대만 11.4%, 타이 10.7%였으나 한국은 5.8%에 불과했다. 1937~1939년 1인당 구입 가능한 미곡량에서도, 한국은 91㎏으로 타이(181), 인도차이나 지역(140), 필리핀(97)에 비해 적었다.
신장 증감률 지표 역시 교육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대만이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한국은 1920년대생부터 키가 줄다가 1950년대 초반 이 추세가 반전됐다. 하지만 대만은 1910년과 1940년 사이 오히려 키가 늘었다.

부스 교수는 “인구학적이나 경제적 통계를 사용해 당시 식민 피지배 국가들을 대상으로 종합지수를 매긴다면 1위는 필리핀, 2위는 대만이었을 것”이라며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나 다른 인구학적 측면에서는 상위권이었으나 교육 분야에서는 처졌다”고 결론내렸다. 적어도 193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과 대만의 근대화 우위를 뒷받침할 만한 지표상의 변화를 관찰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허수열 충남대 교수(경제사)는 “20세기 초반의 통계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러 항목의 국제 통계를 비교했기에 여기서 추출된 ‘경향성’에 대해선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시대 한국이 근대화됐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차별과 불평등 속에 이뤄졌으며, 해방 이후 15년 동안의 혼란기까지 감안할 때 일제 때문에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300~400년 전만 해도 유럽보다 앞선 사회였던 동아시아 사회의 잠재력, 즉 충분한 문화 사회적 역량이 계기가 되어 발현하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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