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알제리 독립운동가 프란츠 파농은 독립전쟁(1954~1962년) 시기 여성들의 활약을 찬양하며 “더 이상 아버지들이 자동적인 권위를 부여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탈식민주의 이론은 여성 해방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반세기 뒤, 파농의 예언은 알제리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6일 지중해에 자리잡은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에 전례없는 여성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제리에서는 변호사의 70%, 판사의 60%가 여성이다. 대학 재학생의 60%가 여성이고, 의료계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의 운전 자체를 금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알제리에서는 여성들이 버스나 택시를 운전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식당 등 서비스업종으로의 진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전체 노동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성들의 높은 교육열을 감안할 때 그 비율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알제리 사회평론 잡지 <나크드>의 다호 제르발 편집장은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공직 역시 여성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 증가 이유로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이 남성들을 대학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알제리에서는 대학을 나와도 수입과 신분상승 보장이 되지 않은지 오래다. 내전과 빈곤 등 사회 불안 때문이다. 이에 남성들은 대학 대신 취업이나 프랑스 등으로 국외 이주를 선호하고 있다. 반면 여성들은 사회적 억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로 대학 교육을 선호하고 있다. 국제위기그룹의 북아프리카 담당자 휴 로버츠는 “여성들에게 대학 교육은 집에서 나와 일할 수 있다는 사회적 보상이 뒤따른다는 점이 (물질적 보상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종교는 이런 여성들의 활약에 걸림돌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알제리에서는 이슬람근본주의 종파보다 더 자유롭고 신비주의적 해석을 앞세운 종파가 주류를 차지한다. 이는 ‘이전 세대보다 종교적이며 현대적인’ 여성들을 낳고 있다. 그 결과 여성들이 오히려 이슬람을 방패로 삼아 직업전선에 나서고 있다. 최근 수도 알제의 첫 여성 버스 운전기사인 데니 파티하는 “히잡을 쓰면 아무도 나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대도시에서도 머리를 가리는 히잡을 쓰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게 히잡은 밤에도 일할 수 있는 ‘도덕적 방패’ 구실을 한다.
알제리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최근 총선에서는 97만명이 투표용지를 훼손하며 무효표를 찍었다. 이는 여당이 얻은 표(130만표)에 육박한다. 지난달에는 총리관저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으로 3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알제대학 사회학과 압델 나세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과 여성 운동이 알제리 현대화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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