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의(醫)와 대응하는 고대 그리스어 피직(physic)은 본래 자연을 뜻했다. 따라서 자연의 현실을 연구하는 의사는 말 그대로 자연철학자였다. 의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피지션(physician)은 이런 어원을 가지고 있다. 자연에 대한 탐구만으로는 치료라는 ‘현실의 문제’를 대처할 수 없기에, 중세에는 상처를 꿰매고 결석을 제거하는 등의 별도의 직업이 있었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몸을 자연과 하나로 인식할 때까지만 해도 의학과 철학은 같은 길을 갔다. 하지만 철학의 주요 관심이 자연 일반에서 인간으로 옮겨지면서 “‘인간이라는 자연’은 ‘육체적 자연’과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의학과 철학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몸의 학문인 의학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사유와, 철학과의 관계 맺기 그리고 동·서양 의학의 몸에 대한 태도 차이를 들여다본다. 치과의사로서 15년을 일했으며, 지금은 인제대 의대에서 인문의학 교실을 개설해 철학, 역사,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그의 이력이 이런 관심에 대한 답을 줄 듯하다.
그가 보기에 의학이야말로 과학과 인문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학문 분야 가운데 하나다. 의학이 사물을 설명하는 과학과, 사람의 삶을 해명하는 인문학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의학의 역사를 지적 모험의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서양 역사 초기에는 병의 원인을 악령이나 신성에서 찾았다. 종교와 과학을 적절히 결합시킨 의학의 형태를 남긴 그리스인들은 병의 원인을 자연과 신성 양쪽에서 찾으려 했다. 의학에서 신성을 걷어내고 진정한 의미의 자연의학을 발전시킨 이는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다. 그는 우주를 이루는 네 원소를 각각의 성질에 따라 몸 속에 들어있는 네가지 체액에 대응시켰다. 이 도식은 해부학에 근거한 근대의학으로 대체될 때까지 1500년간 유럽의학의 주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의학에서도 혁명적 발견이 이뤄졌다. 베살리우스의 근대적 해부학과 윌리엄 하비가 발견한 혈액순환의 원리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르네상스 이후 20세기 초에 이르는 의학을 ‘몸과 마음의 분리’로 설명했다. 몸이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사실’의 영역에 속하자 그런 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탐구가 이뤄지면서 의역학이나 의화학 등 새 이론들이 속속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기계론 철학이 영향을 미쳤다. 세균학과 항생제로 대표되는 현대의학의 실효성이 입증될수록 ‘철학적’ 의학의 설 자리는 좁아들었다.

저자는 1970년대를 의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시점으로 꼽았다. 의철학자 펠레그리노는 1970년대 이전에 크게 벌이진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은 특히 의학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의학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기술, 인문학의 관심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문화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도 강조했다. 
저자는 두 마리의 뱀이 서로를 물고 있는 형태의 상징인 ‘우로보로스’를 끄집어 내 우리 몸을 풀이한다. 우로보로스는 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구별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우리의 몸은 서양의학의 코스모스(질서)와 한의학의 카오스(혼란)가 뒤섞인 카오스모스이며, 있음과 없음을 포괄하는 우로보로스라고 할 수 있다.”
몸은 해부학이나 생리학과 같은 질서잡힌 학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무정형한 증상과 특이 반응들이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질서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물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삶의 의미를 물음으로써 새로운 의학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몸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생성하기 때문에 의학은 몸의 존재조건에 대한 전반적 반성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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