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지난 19일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령에 있는 고학력의 전문직 노동자에 대한 예외조항, 즉 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등과 함께 박사학위를 받고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자는 2년 이상 근무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조항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불안한 고용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연구직들에게는 정규직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이겠지만, 연구의 질을 생각할 때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부적절한 종류의 연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표준화된 매뉴얼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종류는 정규직이거나 혹은 장기간 고용해도 되는 경우이다. 연구자 개개인의 창의성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되며 매일 같은 장소에 출근을 해야 할 정도로 집단적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들을 주로 맡는 연구소들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경험 있는 연구자들을 장기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해마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 주어질 것이며, 비슷한 일을 하는 인력은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 경우 임금을 아끼기 위해 하급직 연구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그에 비해 표준화된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방식이 아닌, 개인의 창의력이 많이 요구되는 연구는 좀 다르다. 이 경우는 그 연구와 정확하게 짝이 맞는 능력 있는 연구자를 찾아 일을 맡겨야 한다.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소라면 연구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한 연구에 능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에도 능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직장에 고용되어 있다는 이유로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 연구를 추동할 연구자의 자발성이 생기지 않고 연구의 질은 현격하게 떨어지게 되어 있다.

사실 자신의 영혼의 무게를 실어 머리를 짜내는 창의성 있는 연구에선 한 연구자가 일생 동안 그렇게 많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잘 안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한 연구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영역은 아주 협소하고 특수한 영역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영역, 그 주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고, 이 작지만 중요한 성과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연구는 정규직화가 힘든 대신, 연구에 대한 값을 매우 높게 쳐주어야 한다. 일생의 성과를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어차피 정규직화가 힘드니 마음 편하게 사안별로 일을 맡기고, 정규 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우 싼 가격으로 처리해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적 지식에 대한 가격은 지나치게 싸다. 원고료는 25년 전에 비해 고작 20배 올랐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맡으면 일의 전문성과 무관하게 그저 일용잡급직으로 처리될 뿐이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알아낸 지식에 대해서도 공짜로 인터뷰하는 것이 상식이다.

돈과 일자리를 쥐고 있는 것은 연구자가 아닌 고용주와 관리자이니, 이를 개선하기란 매우 힘들다. 일의 속성상 개별화된 연구자들은 단결로 힘을 모으기도 힘들다. 가장 열악한 조건의 피고용자이며 도급제 노동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피고용자가 되면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영악한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 고용주가 될 수 있는 의사, 약사, 변호사만 되려고 한다. 똑같이 일하여 똑같이 소중한 전문적 지식을 얻고서도 여전히 불안한 피고용자나 도급제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공 분야나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가 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의 학문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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