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씨가 대선후보를 사퇴했군요. 인물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당을 만들고 세력화하려는 '여권의 주목인사' 정운찬에게는 흥미가 없지만, (아마도 이명박 씨에 견주어) "학자 출신이 경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던 '지식인' 정운찬에게는 흥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도 3불 정책 폐지 운운했지만.

- 아무튼, 그의 대선후보 사퇴를 두고 성한용 기자가 1일자 신문 첫 장에 쓴 기사가 유독 눈에 밝혀 옮겨봅니다. 여권의 대선전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는데 있어서의 현실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상당히 참신했지만, 마지막 두 단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것은 분명 논평이고, 논평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구도, 간판, 요행수" 를 바탕으로 권력을 탐했던 현재의 지식인 정운찬 대신, "도덕성과 전문성"을 가진 미래의 지식인들에게 말이죠. 성한용 기자의 논평은 마치 악담 처럼 들립니다.

- 오히려, 그에게 핵심적으로 부족했던건 중간에 슬쩍 등장했던 "정치적 집념"이 아닐까요. 정치적 집념은, "충청권 결집"과 같은 기존 정치세력들과의 관계맺기 보다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더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물론, 그럴 분은 못되었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래는 기사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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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정운찬(61) 전 서울대 총장도 접었다. 4월의 마지막날,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그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낭독했다.

대선 출마를 포기한 이유는 뭘까? 그는 ‘정치 세력화’라는 말로 설명했다.
“나는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 정치는 비전과 정책 제시만이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자면 이러한 정치 세력화 활동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간명하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 온 원칙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해 낼 만한 능력도 부족하다.”

그의 원칙은 뭘까? 그의 제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식인으로서의 몸가짐’이라고 설명했다. 도덕성이란 얘기다. 그런데 현실 정치를 하려면 조직과 돈이 필요하다. 조직과 돈은 ‘몸을 굴려야’ 만들 수 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것 같다.
그는 ‘마당발’이지만, 정치인들은 잘 모른다. 재산은 방배동 아파트를 포함해 11억2500만원이다. ‘남의 돈’을 끌어대는 수완도 별로 없다. 정치적 집념의 부족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권력은 결국 집요한 사람들이 차지한다. 1987년 이후 대선후보 반열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올랐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노무현 이인제 등은 정치인이었다. 법조인 이회창, 관료 출신 고건도 있었다. 재계에서는 정주영 정몽준이 있었다. 학계 출신은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이 유일했다.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최종 승자는 언제나 정치인이었다.
정 전 총장도 정치판의 이런 현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직한 사람이다.

사실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적이 없다. 그가 잠재적인 대선후보로 부각된 것은 2006년 1월이다. 정치인들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경제 전문가라는 그의 이력을 주목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맞설 수 있는 환상적 조건이다. 그도 솔깃해했다. 서울대 총장 4년 임기를 마친 2006년 7월 이후 지금까지 ‘대선 후보’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그가 만약 출마 쪽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먼저 충청권 결집을 시도했을 것이다. 신당 창당도 시도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서서히 ‘망가져’, 그의 ‘원칙’은 무너졌을 것이다. 불출마 선언 시기를 4·25 재보선 직후로 잡은 까닭은 뭘까? 4·25 재보선은 2007년 대선으로 가는 길에서 의미있는 분기점이다. 대선후보나 정치인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는 불출마를 선택했다. 그게 국민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무튼 그의 불출마는 한 가지 분명한 정치적 교훈을 남겼다. 정치의 문외한들이 ‘참신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역 구도, 간판, 요행수에 기대어 권력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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