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사회적 정의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사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어야 정의도 의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후세계의 절대적 자유와 정의를 약속하는 종교조차 자살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강요된 죽음만 있을 뿐, 자발적 죽음은 없다. 자살은 목숨이 아니라 관계를 끊는 것이며, 현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성적비관이나 생계비관 자살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적이나 생계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이 타살한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배척한다고 모두가 죽지는 않는다. 억울해도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삶을 택한다.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소외된 상태에서 언어까지 빼앗긴 사람은 끝없이 저승사자와 싸워야 한다. 승리는 대부분 산자의 몫이지만, 그 대가는 작지 않다. 감금된 상태에서 말조차 빼앗긴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멈춰야 한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삶은 계산되지 않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