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현장 목소리 담은 ‘공론의 장’ 만들었죠
출판잡지 <기획회의> 200호 앞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국 출판계의 쟁점이 모이는 공론장이자 출판 정보의 허브인 격주간 잡지 <기획회의>가 200호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1999년 2월 첫 호를 낸 이래 만 8년3개월 동안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달려온 <기획회의>는 다음달 중순 200호 고지에 오른다. 지면으로 펼친 한국 출판의 현장이라 할 이 잡지를 맨 앞에서 이끌어온 이가 뚝심과 저력의 출판쟁이 한기호(49·사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다.

출판계 안팎에서 이 잡지를 읽는 독자가 1만 명에 이르지만, 그가 처음부터 거창한 꿈을 품고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건 아니다.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에서 15년 동안 전문 영업자로 활약했던 그는 1998년 가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세웠다.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출판계에 유통대란이 터진 때였다. 출판도매상 송인이 부도를 내고 쓰러지자 그는 채권단 재산관리인으로 들어가 송인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데 앞장섰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창간한 게 <기획회의>의 전신 <송인소식>이었다.

“처음엔 출판 유통이 제자리를 잡도록 돕는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잡지란 게 생명체와 같아서 시간이 좀 지나자 자기 동력이 생겼다. 독자들이 점점 더 수준 높은 글을 요구하다보니 책을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했다. 도매상 송인의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는 자생력을 키우기 어려웠다. 2004년 7월 <기획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유료화했다. 돈 받고 파는 잡지가 됐으니 기획도 더 충실해졌다.”

<기획회의>는 나올 때마다 번번이 출판계 안팎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감한 주제를 과감하게 파고드는 한 소장의 성격은 잡지의 주목도를 높였다. 한쪽에서는 그의 용기를 칭찬하는 박수가 터졌고, 다른 쪽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 출판의 방향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 논쟁의 공간을 제공한 것이 또한 <기획회의>였다.

한 소장은 잡지를 통한 논쟁 가운데 가장 기억할 만한 것으로 ‘전자책의 미래’, ‘주례사비평’, ‘도서정가제’ 등을 꼽았다. “2000년 전자책 논쟁이 붙었을 때 <기획회의>에서 ‘이북(e-book·전자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전자책 출판인들은 5~6년 안에 전자책이 출판 시장의 60~70%를 차지할 거라고 주장하던 터였다. 나는 종이책이 더욱 발전할 거라고 봤던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전자책은 없고, 종이책은 여전히 책의 중심이다.”

2002년 <기획회의>는 ‘주례사비평’에도 돌을 던졌다. 평론가와 출판사와 언론사가 유착해 몇몇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을 품질과는 상관없이 ‘한국 문학의 축복’이라는 둥 해가며 띄워주기로 일관할 때, 그는 ‘이런 식으로 가면 한국문학은 처절한 죽음을 맞고 말 것’이라며 반성을 촉구했다. 그 때문에 그는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금 한국 문학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주례사비평’ 논쟁은 더 철저히 진행돼야 했다.”

2004년 이후 계속된 도서정가제 논란에서도 그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책 팔아 돈 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양질의 책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도서정가제가 그 기초”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그는 “일부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한국 출판의 위기를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팩트’(사실)와 ‘필드’(현장)는 한 소장이 잡지를 만들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두 단어다. “책이 중요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만큼 책에 관한 통계와 기록과 사실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 ‘팩트’를 책임지는 일을 출판 현장 종사자들을 통해 했다. <기획회의>를 현장의 목소리로 채운 것이다. 현장 중심의 기획이야말로 <기획회의>를 활기 넘치는 잡지로 이끈 힘인 셈이다. 200호에서 그는 ‘키워드로 읽는 10년 후 한국문화 지형도’를 그려 특집으로 꾸미고 2000년 이후 베트스셀러 200종을 분석한 별책도 낼 예정이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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