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hani.co.kr/westmin/6434)
1. 꼬마 연사.
난 꽤나 내성적인 아이였다. 지금도 그닥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 땐 특히나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은 성격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며 날 동네 웅변학원에 보내셨다. 나처럼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많았던 건지, 성공하려면 외향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엔 웅변학원이 유행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무찌르자, 공산당’ 따위의 반공 구호나 ‘허리띠 졸라매고 죽어라 삽질하자’는 식의 새마을운동 캠페인 같은 연설문을 주절거렸던 듯하다. 마지막엔 항상 두 손을 차례로 치켜들며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기억이 난다. 당연히 원고는 내가 쓴 게 아니었다. 학원에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유형 가운데서 골라준 것이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말들이 진정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외워대느라 허덕댔을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풋내기 중의 풋내기’ 연사였던 것이다.
2. 알파벳 송.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몰고 왔다. 물론 우리 가요 최초의 랩은 홍서범의 ‘김삿갓’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랩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식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된 데에는 서태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후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다 간주가 나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튀어나와 짧은 랩을 뱉어대고 사라지는 모습은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가사는 주로 영어로 된 것이 많았다. 우리말과 영어가 절반씩 섞인 것도 많았다. Hey Yo, Come On Baby 따위의 추임새가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래퍼들 가운데 재미교포나 유학파 비율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영어 가사 가운데는 문법에 견줘보면 어색한, 콩글리시 냄새가 물씬 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 것도 ‘시적 허용’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노래방에서였다. 유행하던 댄스 가요를 부르던 친구는 간주가 나올 때에도 마이크를 움켜쥐고 한껏 폼을 잡았다. 화면에선 영어 랩 가사가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좀 따라하는 듯하던 친구는 이내 포기하곤 이렇게 외쳐댔다. “A B C D E F G….” 배꼽을 움켜잡은 우리들도 곧 동참했다. 우린 속사포 같은 영어 랩 가사가 뭘 뜻하는 건지에는 관심도 없었다. 의미 없는 알파벳 나열에 다름 아니었다.
3. 시인과 논객 사이.
가리온. 한국 언더 힙합의 대부라 불리는 이들. PC통신 하이텔 흑인음악 동호회 ‘검은 소리’를 통해 알게 된 MC 메타(이재현)와 나찰(정현일)이 1998년 초 결성했으니 어느덧 햇수로 10년째다. 이들의 1집 앨범(2004)은 ‘한국적 힙합의 이정표’라는 평과 함께 골수팬들을 낳았다. 당시 함께한 프로듀서 제이유(최재유)는 음악적 견해차로 팀을 떠났고, 두명의 래퍼로 재정비한 가리온은 두장의 싱글 앨범을 냈다.
이들은 우리말로만 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흔한 ‘Yo’도 없다.
“요즘 10대들 사이에선 미국 힙합은 전혀 듣지 않고 국내 것만 듣는 애들도 많아요. 미국 건 들어봐야 무슨 얘긴지도 모른다는 거죠. 우리도 그래요. 영어 랩은 할 능력도, 할 생각도 없어요. 영어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할 수도 없고, 어찌어찌 영어 랩을 한다 해도 그걸 알아들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이들이 꼽는 힙합의 우선순위는 이렇다.
“요즘 힙합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라임’(시에서 운율과 같은 개념. 랩을 할 때 비슷한 발음이 대구를 이루게 배치해 리듬감을 주는 것) 플레이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그건 가장 낮은 차원이거든요. 그보다 중요한 게 랩에 감정의 흐름을 실어 표현하는 ‘플로우’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메시지를 담았느냐 하는 거죠.”
기타 연주로 치면, 얼마나 빠르고 화려하게 치느냐는 가장 낮은 단계의 기준이고, 연주에 감정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한 단계 위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속주로 유명한 잉베이 말름스틴보다 영혼이 실린 연주를 들려주는 에릭 클랩튼이 한수 위라는 주장도 이런 근거에서 나온 것 같다. 물론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곡을 치느냐다. 원곡의 질이 떨어지면 아무리 훌륭한 테크닉으로 영혼을 담아 연주하더라도 큰 감동을 주기 어렵다.
“래퍼는 시인과 논객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에요. 논객처럼 확고한 자기주장을 담아내면서도 시적인 요소를 활용해야 하는 거죠. 특히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면 끊임없이 사색하고 성찰해야 해요.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거죠. 물론 힙합이 오랜 기간 억압받고 소외돼온 빈민가 흑인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내던 데서 유래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 상황에선 사회를 향한 도식적인 분노와 비판만으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1집에서 ‘자의식을 파고드는 내안의 목소리’에 무게중심을 둔 이들은 오는 3월께 발표할 2집에선 ‘인간관계, 사회현상에서 나타나는 대립과 모순, 그리고 대안’에 대해 얘기할 작정이란다. 풋내기 꼬마 연사, 래퍼들에게 한수 배웠다.
[광고] 가리온은 요즘 뮤지컬 연습에 한창이다. 미국 서부 힙합의 대부 투팍과 동부 힙합의 제왕 노토리어스 B.I.G. 얘기를 담은 ‘래퍼스 파라다이스’의 두 주인공을 맡았다. 두 진영이 전쟁과도 같은 싸움을 벌이던 시절, 투팍이 먼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1년 뒤 노토리어스 B.I.G.도 총격으로 숨진다. 이후 두 진영은 전쟁을 멈추고 평화의 손길을 내민다.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실화를 다룬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3월9일부터 홍대앞 전용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