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의료체계의 근간인 일차의료를 담당한 개원의사들 역시 거대 할인매장 앞의 영세 상인처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영리화가 가속되면서 미국의 일차 개원의사들은 환자들 건강의 ‘문지기(gate keeper)’에서 대형병원의 이해를 위해 존재하는 ‘문 단속자(gate shutter)’로 그 구실이 축소되었다. 또한 미국 지엠의 사례와 같이 ‘불필요하게’ 증가한 의료비는 국가의 ‘성장 동력’이 아닌 노사 모두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의료서비스의 영리화가 가속화할수록, 가난한 환자의 쾌유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교과서적 진료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시대의 선한 히포크라테스들은 그저 돈 못 버는 무능한 의사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단지 특정 집단만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소중한 상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의료가 상품이 아니고 인술임을 믿는 사람들, 적어도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이 아파도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천박한 정부의 영리화 정책에 분연히 저항해야 한다. 우리 시민사회의 이 저항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많은 아픈 이들의 희망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또한번 제우스의 번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아스클레피오스의 죽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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