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3월 7일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미네타 레인 극장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꿈에 그리던 오프 브로드웨이 전용관을 갖게 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던 송승환 PMC 프러덕션 대표.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기의 돌을 무사히 넘긴 딱 그런 심정"이라며 다시 한번 감회를 나타냈다.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 '난타'(영어명 COOKIN')가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를 두드린 지 7일로 1년이 된다. 미네타 레인 극장과 '오픈 런'(종영 날짜를 정하지 않되 매출이 일정액을 밑돌면 막을 내림) 방식으로 계약, 지난해 3월 7일 첫 공연을 올린 후 벌써 450회 공연(2월 프리뷰 공연 포함)을 넘기며 장기공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  

1년 간 총 1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관객 분포는 뉴욕 현지인이 75%, 한국인이 10%, 관광객이 15% 정도로 현지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처음 공연을 올린 땐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죠. 흥행이란 게 변수가 많아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일단 1년을 넘겼다는 사실이 무척 고무적입니다." 진입도 어렵지만 장기공연을 이어가는 것은 더 어려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송 대표의 말대로 1년을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난타'는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첫 동양권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현재 오프 브로드웨이에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습니다. '난타'처럼 1년 이상 장기공연 중인 작품도 별로 없구요. 넌버벌 퍼포먼스 '스톰프'가 유일한 경쟁작이랄 수 있는데, 매출면에서 우리가 앞선 지 이미 오래됐어요."

지금까지 총 매출액은 약 590만 달러(약 59억원). 송 대표는 "투자액을 거의 회수하긴 했지만 당분간 수익은 마케팅에 재투자해야 할 것 같다"며 "이 상태로 올해를 넘기면 내년부터는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년 간 몇 차례의 고비도 있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8월 말에서 9월 초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로 브로드웨이 전체 관객이 크게 줄어 타격을 입었다. 공연 초반엔 주당 지출비용이 8-9만 달러인 데 비해 수입이 밑돌아 주당 1-2만 달러씩 손해를 보기도 했다. 송 대표는 "안 되겠다 싶어 작년 여름 쯤 주당 지출비용을 5만 3천 달러로 확 줄이고 배우들이 묵는 아파트도 싼 곳으로 옮겼다"며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젠 평균 70%의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은 전통적인 비수기이지만 2월 들어 매출 실적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 지난 2월 19일에는 400석 객석이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의 관건은 현재 관객 분포에서 15% 수준인 관광객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 "뉴욕 현지 관객에겐 어느 정도 인지도를 심어줬다고 생각해요. 브로드웨이 관객 대부분이 해외 혹은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인 만큼 관광객 관람비율이 70-80%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홍보, 마케팅에 좀더 집중할 생각이에요."  

'난타'의 성공을 계기로 브로드웨이, 혹은 오프 브로드웨이 진출을 준비 중인 국내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송 대표는 작품 자체가 경쟁력을 갖추고 현지의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우리도 홍보, 마케팅을 현지 회사와 계약해서 성공한 것이지 아마 우리가 직접 했다면 한국 교포 관객을 대상으로 몇 달 공연하고 막 내렸을 겁니다." 공연 1주년을 기념해 곧 뉴욕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송 대표는 "그동안 현지에서 수고한 배우들을 위해 조촐한 자축 파티를 열어줄 예정"이라며 "앞으로 10년, 20년 공연이 계속되기를 꿈 꾼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로 자유극장에선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1주년 기념 '난타' 특별공연도 펼쳐진다. 자유극장은 PMC 프러덕션이 건물주로부터 5년 간 장기임대해 이번에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여는 270석 규모의 소극장. 
현재 정동극장에서 상설공연 중인 팀이 번갈아가며 출연할 예정이다. 공연시각 화-금 7시 30분, 토 4시ㆍ7시 30분, 일ㆍ공휴 3시ㆍ6시. 4만-5만원. ☎1588-7890, 1544-1555.

최호현 한마루커뮤니케이션 부회장

국내 관객을 겨냥한 <굿모닝 비보이>와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비보이 춘향전>, <비보이 흥부놀부전>
등을 준비 중인 최호현 한마루커뮤니케이션 부회장은 공연계에 비보이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비보이 열풍의 원조 격인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직접 기획하고 이를 위한 ‘비보이 전용극장’을 설립했다.
“이전에 한국의 비보이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직접 보니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보자마자 ‘이것은 훌륭한 문화상품이 되겠다’는 감이 왔죠.”

이에 최부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와 보컬, 비보이를 결합해 장기공연을 노리는 <굿모닝 비보이> 준비에 한창인 것. 현재 서울 강남이나 명동 등지를 중심으로 700여석의 전용극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비보이 바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이어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비보이 퍼포먼스를 처음 시작한 주체인 만큼 해외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가 새 퍼포먼스 <굿모닝 비보이>를 기획하게 된 계기다.
“우리나라 비보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습벌레’입니다. 자연히 좋은 비보이가 탄생할 가능성도 높겠죠. 비보이들의 퍼포먼스도 반드시 예술적인 장르로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최부회장은 이렇게 한국의 비보이가 각광받는 지금이야말로 좀더 나은 작품으로 시장 선점 효과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스사이공> 등 뮤지컬 빅4 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곤 비보이 퍼포먼스가 아무리 인기라고 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작품성을 가미한 작품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퇴출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비보이 공연 제작 붐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비보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앞으로 4~5년간 계속되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공연은 재미 위주로만 만들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비보이의 잠재적 가치는 엄청나다”면서 “결국 이들 비보이의 설자리를 어떻게 마련해 줘야 할 것인지는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비보이 자체가 오래 유지되는 트렌드라기보다 공연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롱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서 PMC프러덕션 공연제작부 부장

넌버벌 퍼포먼스(무언극) <난타>로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PMC프러덕션 역시 최근 비보이 공연 트렌드에 동참했다. <난타>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인 후속작품이 없었던 PMC프러덕션은 비보이 공연을 통해 <난타>의 영광을 되살려 보겠다는 각오다.

PMC프러덕션의 비보이 퍼포먼스 <비트 앤 비보이>(Beat & B-Boy·가제)를 총괄하는 김찬서 공연제작부장은 “비보이와 타악을 결합해 상식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면서 “이제 막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단계인데도 벌써부터 해외 파트너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에 이미 비보이 댄스와 유사한 댄스 퍼포먼스를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야심차게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댄스공연이 지나치게 앞선 트렌드인데다 춤만으로는 15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결국 어떤 넌버벌 퍼포먼스라도 드라마가 탄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부장은 “공연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꾸민 퍼포먼스로 세계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타> 해외투어로 유럽에 갈 때면 비보이의 거리공연이 활성화돼 있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이를 극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공연계를 이끄는 주요 세력인 젊은층의 춤에 대한 열기가 뜨겁더군요.”

특히 최근 해외 퍼포먼스의 흐름이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비보이와 국악, 마술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 나오게 되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의 비보이는 일종의 역수출인 셈이죠. 한류가 항상 한국문화에 뿌리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보이는 한국에서 시작된 문화는 아니지만 좋은 콘텐츠로 가공해 내놓으면 해외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는 그럼 비보이의 잠재가치를 얼마 정도로 보고 있을까. “얼마나 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부장은 “비보이의 테크닉만으로 어필하면 금세 한계가 드러나는 만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훌륭한 퍼포먼스를 완성해야만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우성 익스프레션 크루 단장

“예전에는 친척집에 방문하면 ‘가수 사인 받아달라’는 소리만 들었는데 지금은 비보이 자체를 인정해 주더군요.”
9월 오픈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비보이 뮤지컬 <마리오네트>의 연출을 맡은 이우성 익스프레션 크루 단장은 비보이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이같이 표현했다. 92년에 프로댄서로 데뷔, 97년에 비보이그룹 익스프레션 크루를 결성한 이단장은 한국 비보이 1세대 멤버다.

“그동안 수준 높은 비보이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공연을 수용할 문화가 형성돼 있지 못했었죠. 그런데 최근 비보이 붐이 일면서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춤을 좋아해 댄서의 길에 들어서 10년 넘게 춤추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단장은 2002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댄스대회인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팀을 이끌고 아시아 최초로 우승하는 등 화려한 수상실적을 자랑한다.

그는 최근 브레이크댄스와 줄인형극을 결합한 퍼포먼스 <마리오네트>를 완성·공개하면서 새삼 떠들썩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익스프레션 크루가 선보인 <마리오네트>의 10여분간 동영상은 인터넷상에서 인기 콘텐츠가 됐다. 또 지난 5월에는 이 동영상 덕분에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투자자들이 참석한 세계 쇼 비즈니스 투자 포럼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퍼포먼스가 오는 9월에는 1시간20분의 단독공연으로 거듭나게 됐다.
“한마디로 인형사와 관객의 교감을 그린 작품이죠. 인형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형이 춤을 추듯 구성할 예정이어서 춤도 음악도 모두 새로운 무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공연에, 달라진 위상에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이단장에게 비보이 붐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의 비보이 문화가 댄서들의 힘이 아니라 스폰서인 기업에 의해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비보이를 동경하는 이들은 부쩍 늘었지만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대형공연을 이끌어갈 만한 유능한 비보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춤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 테크닉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한국 비보이 문화의 뿌리는 얕은 채로 줄기만 커져버린 꼴이다. 특히 각종 댄스 배틀 성과가 강조되면서 기술이 중요한 하나의 스포츠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설명이다. 그는 비보이가 지금 같은 일시적 붐보다 꾸준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를 잡아야만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의 비보이에 대한 관심이 비보이가 문화코드가 되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해 비보이 퍼포먼스가 장기적으로 사랑받는 공연이 되길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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