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지난 16일 저녁 경북 문경의 <에스비에스>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장에서 병사, 백성으로 출연하는 보조출연자 40여명이 밀린 출연료를 달라며, ‘고구려 의상’을 벗어던지고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촬영은 2시간 동안 중단됐다.
이들이 지난 2일까지 받기로 한 출연료 총액은 모두 1억4천만원이다. 이 중 1억원을 보름이 지나도록 받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이날 4천만원을 우선 받고서야, 다시 ‘병사’와 ‘백성’으로 돌아가 야간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돈은 이날 촬영 현장에 있던 보조출연자에게만 돌아갔을 뿐이다. 19일에도 출연료 일부가 들어왔지만, 아직도 보조출연자 30여명은 밀린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조출연자들이 출연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제작사의 재정난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외주제작사인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의 서주상씨는 “대규모 전투장면인 ‘안시성 전투’ 2회분을 촬영하는 데 5~6회분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등 제작 초반부의 주요 전투장면에 돈을 쏟아부어 후반부로 갈수록 재정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극은 워낙 보조출연자가 많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작사가 아무리 쪼들려도 배우들은 꼬박꼬박 출연료를 받는다. <문화방송> 드라마국의 한 조연출은 “배우들은 한 명만 촬영을 거부해도 제작이 중단되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배우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 가장 약자인 보조출연자와 스테프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연개소문’의 한 보조출연자는 “주요 배우들이 한 달에 받는 출연료가 수십명의 보조출연자들이 받는 출연료보다 많다”며 “출연료에 생계가 달려 있는 보조출연자들의 돈을 먼저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제때 지급된다 하더라도 보조출연자들의 출연료는 너무 낮다.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받는 돈은 3만6천원이다. 대부분 촬영장이 지방이기 때문에 촬영 전날 밤 12시께 방송사에 모여 3~4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지만, 이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다. 새벽 6시 촬영이 시작되기 전 분장하고 의상을 챙겨 입으며 대기하는 1~2시간에 대해서도 대가가 없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은 제작사와 보조출연자 파견업체를 상대로 출연료를 여름철 5만400원, 겨울철 7만5천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계순 노조위원장은 “허허벌판에서 촬영할 때는 임시화장실도 없고, 의상도 제대로 빨지 않아 냄새가 나는 등 기본적인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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