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김형태 
 
저 질풍노도의 1980년대. 제헌의회를 소집해서 나라를 새로이 바꾸자는 급진적 흐름이 있었다. 요즘 87년 체제 헌법 제119조에 대해서 일부 경제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조항은 2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매우 진보적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보다 많고 반도체 회사 임원 연봉이 수십억원인데 4인 가족 월 최저 생계비 기준 121만원을 못 버는 사람들이 167만명에 이르는 지금 모습은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 민주화에 크게 어긋난다.

일부 경제인들의 바람처럼 국민투표로 경제 민주화 조항을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한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원이 되는 힘을 헌법 제정 권력이라 부른다. 인권보장, 법치국가 원리, 민주주의 원리 등과 더불어 경제 민주화 개념은 헌법 제정 권력의 의지이므로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개개 국민 의사의 총합으로도 이 추상적 헌법 제정 권력에 반할 수는 없다.

요즈음 <한겨레>가 어렵다. 임기가 1년 남은 대표이사 사장이 사임하고 3월 말 주주총회에서 사장과 이사들을 새로 뽑는다. 한겨레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운영해 나가는 주인은 누구일까. 대부분의 주주들은 그저 주식대금이나 내고 조금 더 성의가 있으면 주총에 위임장 보내는 정도다. 주인으로서 한겨레의 경영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결국 신문사 임직원들이 회사의 주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한겨레 정관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회사 주식을 소유한 회사 정규 임직원들이 대표이사 후보를 직접·평등 선거로 뽑고 대표이사 후보는 수명의 이사후보를 지명한다. 주총은 이들 대표이사와 이사 후보들을 사실상 그저 추인할 뿐이다. 3명의 사외이사는 자문위원회, 노조, 우리사주 조합에서 추천하여 역시 주총에서 사실상 추인받는다. 결국 40퍼센트 주식을 가진 회사 임직원들이 경영책임을 지는 사장을 포함한 이사 6명을 뽑는 셈이다.

한겨레 창간정신을 잘 구현할 현실적 주주 집단은 회사 임직원들임이 틀림없으나, 경영권이 사내 여론에만 의존하게 될 때 안정적으로 행사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느 기자는 한겨레의 요즈음 상황을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결여라고 자조했다. 편집권의 문제가 아닌 대표이사와 이사의 선임 과정에는 우리사주인 회사 임직원들 이외에 나머지 주주들도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한겨레 창간정신을 유지할 책임은 주주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은 정수장학회 지분을 빼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70퍼센트 주권을 행사하고자 방송문화진흥회를 꾸리고 각계를 대변하는 공익적 인물들을 진흥회 이사로 선임한다. 진흥회 이사들은 문화방송의 주인으로서 사장, 이사를 선임한다.

현재 한겨레는 창간 권력의 뜻을 유지하면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에 회사의 미래가 걸려 있다. 이를 위해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하고 전체주주의 뜻을 반영하는 사외이사 후보를 뽑는 것도 연구해 볼 수 있겠다.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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