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국정브리핑)

‘신문 경쟁’ ‘여론다양성’ 원칙 세웠다
‘자전거일보’ 등 신문 유통시장 혼란 바로잡아

[정책리포트] 공정한 신문시장

‘자전거일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만큼 2000년대 초반 신문시장에선 ‘자전거’가 단연 화두였다. 월 구독료 1만2000원짜리 신문을 보는데 10만 원이 넘는 자전거 경품이 제공되다보니 “신문 지국이 아니라 자전거 지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곳에서 자전거를 뿌리면 그 지역의 신문시장은 곧바로 초토화된다”는 게 당시 신문지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급기야 2003년 1월에는 자전거 판매업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매출이 50% 이상 줄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며“법적 제재를 해달라”는 이유였다.

과다 경품을 앞세운 신문업계의 물량경쟁은 2000년대 초 ‘자전거일보’ ‘비데신문’ 등의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극심했다. 신문 경품은 역사가 길다. 1970년대에는 설탕이 있었다. 그 후 컵, 손톱깎이 등으로 발전하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믹서, 레저용TV, 뻐꾸기시계, 버너, 다기능 도마, 교자상,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원목탁자, 발신자표시 전화기, 킥보드, 에어컨형 선풍기, 소형 진공청소기, 돗자리, 밥솥, 정수기, 자전거, 비데, 백화점상품권 등 신접살림을 차려도 좋을 만큼 끝없이 이어졌다.

과열 경쟁은 살해 사건까지 빚었다. 1996년 7월 판매 경쟁을 벌이다 중앙일보 경기 남원당 지국 직원이 조선일보 지국원을 살해한 사건은 언론계 안팎에 충격을 줬다.

과당경쟁으로 신뢰 잃고, ‘제살 깎아먹기’

과열경쟁은 신문사들의 수익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김영주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신문사 재정의 80% 이상을 광고수익이 차지하다 보니 개별 신문사들은 보도의 질을 높여 독자를 늘리기보다 고가 경품과 무가지를 통해 구독자 수를 늘리고, 광고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량공세를 앞세운 경쟁은 관행으로 굳어졌고, 결과적으로 신문시장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신문은 제값 내고 보는 게 아니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렸다. 무리한 확장 경쟁은 신문 절독이 “담배 끊기보다 힘들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게 했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신문이 불법 경쟁을 공공연히 벌이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다. 게다가 출혈 경쟁은 부실 경영을 낳는다. 한국기자협회가 “광고주를 현혹하기 위해 벌이는 경품 파티로 신문 경영이 더 부실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2002.5.22 우리의 주장).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익명의 신문사 사주는 “연간 300억~400억원이 출혈 경쟁으로 낭비된다”며 “이 돈을 절약하면 신문 종사자들의 대우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선 지국장들은 경품 사용을 ‘울며 겨자먹기’라고 말한다. 대개 경품 사용으로 확보한 신규독자 가운데 70% 이상은 기존의 다른 신문 구독자다. 그만큼 이탈 독자가 많이 생긴다는 얘기다. 결국 경품 사용 후 1년이 지나면 지국 수입은 ‘현상 유지’ 수준이라는 게 지국장들의 설명이다. 출혈경쟁이 발전적 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고가경품’이 위험한 이유, “여론 다양성 훼손”

경품은 단순히 시장질서를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부자신문’들이 경품을 통해 물량공세를 펴면 ‘가난한 신문’들은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소수 의견은 힘을 얻지 못한 채 여론은 획일화하고, 심지어 왜곡 가능성도 높다. 몇몇 신문이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계층만 대변한다고 생각해보자. 단편적인 ‘사실’은 알려지더라도 전체를 조망하는 ‘진실’은 가려지기 쉽다. 다양한 여론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위협받게 되고, 사회적 손실은 커진다. 매체 선택권을 박탈하는 ‘고가 경품’은 그래서 위험하다.

신문이 ‘질적 경쟁’을 벌이고, 독자들은 자유롭게 신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신문업계도 ‘자율규제’를 통해 시장정상화 노력을 벌여왔다.

신문협회는 1960년대 이후‘영업정화위원회’ 활동, 신문판매협의회 구성, 신문판매윤리강령 제정 등 자정 노력을 펼쳤다. 1977년에는 ‘신문판매 정상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1996년 조선일보 지국원 살해사건 직후엔 ‘신문 판매질서 확립 공동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를 제정하고, 2001년 폐지했던 신문고시를 부활할 때에도 신문업계는 ‘자율규제’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말 그대로 자율에 그치면서 근원적 처방에 실패했다.

불가피했던 정부의 신문판매시장 정상화 조치

이 과정에서 언론관련 단체들의 시장정상화 목소리는 날로 커졌고,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문고시 개정을 통해 불법 경쟁을 단속하고,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문유통원 설립,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구성 등을 단행했다.

신문고시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개정됐다. 신문업계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던 신문고시 위반사건을 공정위가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신문고시는 연간 구독료의 20%를 초과하는 경품과 무가지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그해 5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공정위가 조사한 신문지국은 1316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신문고시를 위반한 904건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고, 12억715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2005년 4월 1일부터는 불법경품 등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이후 2006년 9월까지 모두 117건에 포상금 1억4777만 원을 지급했다. 일부에서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신문고시는 이미 2002년 7월 헌법재판소의 전원 합의를 통해 합헌 결론이 났다. 헌재는 “신문고시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을 완화하고,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해야 할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만큼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선풍기 지급’에 첫 수금월도 구독일자보다 4개월 후로 명시돼 있는 애독자 카드. 이 신문 지국은 시민 신고로 적발됐다. 현재 신문시장 신고포상금은 최고 1000만원까지 지급된다.

“참여정부 잘한 일, 신문고시 개정”

신문고시 개정은 신문업계 안팎의 지지를 받았다. 기자협회가 전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신문고시 개정은 참여정부 언론정책 중 ‘잘한 일’ 2위에 올랐다(2004.2). “잘했다”는 응답이 50.3%, “잘못한 편”이 12.4%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對) 언론조치’ 중 가장 잘한 것 1위로 꼽혔다(2003.6). 일선 신문 지국들은 더욱 강력한 규제를 주문했다. 언론학회의 ‘전국 신문판매지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2531개 지국 중 79.7%가 “판촉활동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서울 소재 지국은 83.7%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2004.3).

신문고시 개정과 신고포상금제 실시로 판매시장은 다소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공정위가 중앙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독자 중 위법한 경품 및 무가지를 받은 비율은 63.4%(2003)→ 41.9%(2005) → 35.1%(2006)로 줄었다. 그러나 판매시장의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공정위는 2006년 12월 “신고포상금제 시행 직후 거래질서가 일시적으로 개선되기도 했으나 2005년 말 이후 다시 불공정거래행위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매체선택권 보장 위해 신문유통원 설립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또 다른 축은 신문유통원 설립이다. 유통구조를 개선해 신문산업 진흥과 국민의 폭넓은 매체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게 설립 취지다. 신문유통원이 담당하는 공동배달은 언론계의 오랜 주문사항이기도 했다. 매체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여론형성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자본력이 약한 신문사는 배달망이 무너져 신문을 잘 만들더라도 ‘질적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배달 체계의 효율성을 높여 고비용 구조 개선도 기대했다. 공동배달제 연구는 2000년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본격화했고, 2003년 경향신문 등 5개 중앙일간지를 주축으로 과천에서 시범운영을 거쳤다.

신문유통원은 2005년 1월 제정된 신문법 37조에 따라 2005년 11월 문을 열고, 공동배달제의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기능적으로는 지국의 배달, 판촉, 수금 업무 중 배달에 대해 위탁수수료를 받고 대행해준다. 강기석 신문유통원장은 “신문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민간기업”이라며 “공공재인 신문이 물량경쟁으로 도태되지 않고 질적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통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신문유통원은 2006년에 공배센터 73곳을 구축했고, 2007년에는 223곳을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다. 공동배달은 배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유통원에 따르면 실제 공동배달을 하고 있는 서울 서소문 공배협의회의 경우 평균 배달단가가 공동배달 전 1부당 1,100원에서 925원으로 줄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신문의 경우 1부당 3,000원에서 큰폭으로 낮아졌다. 부수가 많아지면서 1부당 배달단가가 절감되는 효과다. 또 지국들이 배달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판촉이나 독자관리에 충실해질 수 있다. 지국간 합의를 통해 과도한 경품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강기석 원장은 “전문지나 각종 간행물 배달 등 2차 사업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 것”이라며 “배달원의 근무여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경쟁 지국간 합의를 통해 민영 공배센터를 운영하고,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일이 간단치는 않다. 2006년 가을 공배센터에 참여하기 시작한 서울의 한 지국장은 “지국들이 2차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면 지금처럼 무리한 확장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거대 신문들이 지국의 공배센터 참여를 사실상 막고 있어 주저하는 지국들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공동배달제는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수십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스웨덴은 1969년 도입해 공동배달회사를 이용하는 신문에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보다 앞선 1947년 정기간행물 공동배급회사인 NMPP를 설립하고 국가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 공동배달제 근간을 마련한 전 통신분야 정무장관 로베르 비셰는 “언론의 자유는 편집자가 원고를 작성한 시점부터 독자가 그 기사를 읽는 순간까지 계속돼야 한다. 그러므로 신문, 잡지들에게 동등하고 정당한 운송 및 배급 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진정한 언론자유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도 신문유통원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바 있다. 헌재는 2006년 6월 29일 신문법 위헌 제청사건에 대한 결정에서 “신문유통원을 이용해 공동배달망에 가입할지 독자적인 배달제도를 유지할지는 각 신문사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며 “(신문기업에 대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유통원을 통한 국고지원으로 신문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통제의 길이 열리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신문고시 개정, 신문유통원 설립과 함께 2004년 3월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제정되고, 2005년 10월 신문발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경영이 어려운 언론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기초인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신문사는 기사의 질로 경쟁하고, 독자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신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작업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특별기획팀 (webmaster@korea.kr) | 등록일 : 2007.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