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를 論한다 -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
박효종 외 지음 / 바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 이 책은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 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 서울대 박효종 교수, 소설가 복거일 씨, 한나라당 원희룡 국회의원,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연세대 함재봉 교수, 정성환 씨 까지, 보수주의자를 표방하는 7명이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묶어두고 있습니다. 책은, 최근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을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 라고 생각해 - 물론, 일부 필자는 한나라당이 한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것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반대했지만 -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 7명 필자들의 논점과 내용은 제각각인데요, 박효종 교수와 원희룡 국회의원, 소설가 복거일 씨의 경우는 다소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일관했던 것 같고,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와 연세대 함재봉 교수는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보수주의 비판에 대한 비판, 즉 반(反)비판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정성환 씨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층에, 김정호 원장의 경우는 경제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쓰고 있습니다.

- 우선, 필자들의 글을 싣기 이전에, 출판사와 필자들부터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누구인지"를 토론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복거일 씨의 경우는, 보수/진보 라는 (이미 가치판단이 포함된) 표현 대신, 좌파/우파 친체제/반체제와 같은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김정호 원장의 경우도, 자신은 한국사회가 변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보수주의자라는 호칭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한 권의 책에서 조차 필자들 사이에 합의되어 정의된 단어가 사용되지 않고 제각각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적어도 책읽기에는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지요.

- 더구나, 필자들이 '보수주의' 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이것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좌파' 내지 '빨갱이' 라고 불리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겠죠. 물론, 언어란 사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것인 만큼, 그 언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왜곡한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변화를 꾀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적극적인 대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라고 말하기 보다는, "너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극적이니까요. 적어도 보수주의는 좌파나 빨갱이 처럼 법적인 위협을 받는 호칭도 아닌데.

- 용어를 정리하는 데 있어, 초기 보수주의를 주창한 에드먼드 버크의 표현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보수주의란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모색하는 것" 이죠. 이 표현을 한국 사회에 적용할 때, 전통과 질서의 의미가 '자유민주주의' 와 '시장경제체제' 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개혁'에 있는데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왜 모든 개혁 세력을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지가 궁금합니다. 이들은 앞에서 에드먼드 버크의 표현을 실컷 인용해 놓고, 바로 뒤에서 "시장의 질서나 독과점 방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 진보" 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전혀 일관성이 없지요. 

- 한 발 양보해, 이것이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점진적인 개혁"이 아니라면, 이들은 점진적인 개혁과 급진적인 개혁의 차이를 설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당신은 '개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구주의가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들도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생각이죠. 정성환 씨는 한국 보수주의의 과제가 '조갑제 류의 극우 세력' 과의 결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극우 세력과의 관계 보다 개혁 세력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 두번째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곧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라는 시장의 논리를 주창하면서, 기업 운영을 "혼신을 다해 기업을 일구고 고용을 창출했다." 고 미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가들은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기업을 운영하죠.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죠.

- (몇몇 필자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개혁을 넘어선 모종의 조치라면, 국가 주도로 모든 산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며 금융시장을 통제했던 3공화국이야 말로 역대 정부 중에서 가장 반체제적인 정부가 아닐까요.

-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를 가지고 보수와 진보를 가른다는 것 역시 형용모순에 불과합니다. 성장과 분배 앞에는 '시장경제체제' 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성장에 중점을 둘 것이냐 분배에 중점을 둘 것이냐 하는 논쟁이죠.

- 용어의 혼란과 그로 인한 자기 모순은 자유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성환 씨는 "진보를 빨갱이로 보는 색안경을 버리자."고 요구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색안경이기 이전에, 물리적 강제와 폭력이었습니다. 즉, "빨갱이 좀 예쁘게 봐 달라." 는게 아니라, "빨갱이를 허용하네 마네 운운할 자격이 없다." 는 것이죠. 자유민주주의는 시장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곧 국가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니까요.

- 두번째로, 특정 정치세력 내지 이익집단을 '보수 세력' 이라고 총칭해서도 안됩니다. "보수 세력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주류였다." 라던지 "혼신을 다해 기업을 일구고 고용을 창출했다." 라는 표현에서 저는, 필자들이 보수주의 라는 사상의 표현을 (전혀 다른 범주인)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과 뒤섞어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을 지칭하려면, 가장 중립적인 표현으로 (순수한 의미에서) '기득권' 이 되겠습니다. 아니면, 정확한 명칭을 나열하던지요.

- 마지막으로, 함재봉 교수와 김정호 원장의 경우는 용어의 혼란이 어디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함재봉 교수는 87년의 민주화 항쟁을 언급하면서, 근대국가 건설 이후 일어난 보수주의 세력의 균열을 진보 세력이 이용한 것일 뿐 진보 세력의 공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더러 (정작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보수주의 세력의 균열 운운하는 것은 정말 웃지 못할 해프닝일 것입니다. 김정호 원장 역시 진보 세력을 논평하면서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 부자에 대한 적대감, 미국에 대한 적대감, 북한에 대한 온정적 태도" 라고 말하고 있는데, '연민', '적대감', '온정적 태도' 에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지 의문일 뿐입니다.

- 사실, 책이 표방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 비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지역주의, 과거사 청산을 내걸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집권과 함께 정치권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는 지금까지 보수주의를 독점해 온 세력들이, 새로운 보수주의 경쟁 세력을 맞이해 벌이는 자기혁신 노력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하지만,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자기혁신 전략이라는 것이, 도덕적 의무 지키기, 군사문화에서 벗어나기, 중산층 정서 이해하기, 미래비전 제시하기와 같은 것들이라, 이것을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뭐 열심히 노력해서 열린우리당, 민주당과 공정한 경쟁을 벌이시기를 바랄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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