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에 대해서는 (1)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할 때 (2) 언론 매체에서 사용할 때 (3) 학계에서 사용할 때, 이렇게 3가지 경우 모두 제각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진보/보수는 현재의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머무르면 보수요, 나아가면 진보라는 것일 뿐, 굉장히 가치중립적인 용어입니다. 혼란은 각각의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를 생략한채 진보/보수를 마구 갖다붙이는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회적 갈등 해결 과정에서는, 용어 먼저 합의하고 논쟁을 하라고 고등학교 때 배우는데. ㅎ)

(1)이야 사적 영역이니 만큼 오해 없는 대화로 극복할 일입니다만, (2)와 (3)의 경우는 공적인 글쓰기인 만큼, 기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사회적 책무가 있겠지요. 우리가 공적인 매체에서 한 사람에 대해서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 라고 총체적인 평가를 하려면, 개개의 사안을 기준으로 하기 보다는 그의 가치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어떤 기준으로 진보/보수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경우, 즉 공적인 글쓰기의 경우 (1)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준인 문화나 관습, (2)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준인 사회적 이슈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이것들을 포괄할 수 있는 총체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 라는 총체적인 평가를 그만 두거나, 신중하게 '어떤 사안, 어떤 기준에서 봤을 때 이렇게 나누어 진다.' 라고 해야죠.

선거철이면 의례 등장하는 후보들의 이념 조사, 이거 무척 좋습니다만, 사안에 대한 태도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진보적이니 보수적이니를 판단하는게 혼란의 시작입니다.

저는 공적인 글쓰기에서 사용해야 할 총체적인 기준이 (3)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만족하느냐 불만족하느냐는 감정적 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 전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뜻합니다. 이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똑똑하신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리 없고, 학계에서 분명히 위와 같은 기준으로 말씀하시던 분들도 언론에 출현할 때는 기준을 두고 나오시는데, 모두가 '부러' 일으키는 혼란이라고 보여집니다. 용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 편가름이 확실해지고, 순간 뱀의 머리에서 용의 꼬리가 될 이들이 있을테니까요.

김규항 선생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런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가 절필 선언을 하고 어린이 잡지 만드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많이 지쳤다는 생각과 더불어 문제 제기로서의 그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더 이상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기득권(다른 표현으로 지배계급)과의 싸움의 하나일 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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