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주대환 지음 / 이후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진중권 씨 책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 눈에 띄어 발췌독했습니다. 인민노련과 한국노동당에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을 염두하며 한국의 정당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꼽아둔 책이었는데, 구하기가 불편해 그만두었던 책이었죠.

-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보정당의 역사와는 내용적으로 큰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용은 철저하게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방법' 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책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1년 전인, 02년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야를 벗어난 이래로 92년 한국노동당, 96년 개혁신당, 97년 국민승리21을 거쳐 99년 민주노동당까지 10년 가까이 국회 밖의 정당에서 활동하면서 쌓였을 피로가 묻어나는 글이었습니다. 

- 그 원인을 분석하는데 있어, 87년 대통령 선거 이래 매번 반복되어왔던 '전략적 선거연합(비판적 지지)' 라는 쟁점이 빠질 수 없을 것이고, (글을 쓴 기준으로 봤을 때) 02년 현재, 민주당과의 전략적 선거연합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지역감정 문제, 그리고 선거 전략 - (1) 사회당, 녹색평화당과의 합당 (2) 자유주의 세력들과의 연대 - 과 제도 개선 방안 - (1)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 (2)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도입 - 을 약간 덧붙이고 있습니다.

-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라는 책 제목에서, '진보정당' 보다는 '비판적 지지' 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이상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까지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당과 합당 혹은 전략적 선거연합을 하든, 그것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제가 의견을 낼 수 있는 여지는, '민주노동당' 보다는 민주노동당이 표방하고 있는 '진보정당'에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당명도 아닌 '진보정당'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사용하고 있는데요, 하나의 공식적인 정치세력인 이상, 자신들이 표방하는 정치에 걸맞는 활동을 할 책임은 있는 것이니까요.

- 여기서 잠깐, 책 초반부에 씌여진 주대환 씨의 이력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사상 편력을 밝히고 있는데, 그가 이것을 언급한 이유도 그리고 제가 이것을 관심 있게 살피는 이유도 바로 "민주노동당은 왜 진보정당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의 사상 편력은 크게,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사회가 제대로 되어야 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는 좌파적 성향" 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그리고 소비에트 연합의 해체 이후에는 "사회민주주의"로 변화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란, "공산주의를 포기한 좌파, 실험과 관찰, 경험과 실용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좌파" 라고 합니다. "공산주의에 비하면 그렇게 '진한' 주의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 저는 주대환 씨의 설명에서 그가 지향하는 정치경제체제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하게 언급된 것은 그가 공산주의를 버렸다는 것 뿐,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도 굉장히 불분명합니다. '실험과 관찰, 경험과 실용을 중시한다' 던가 '현실주의적' 이라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지만, 그것이 무엇을 수식하는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자본주의가 완벽한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유시민 씨 처럼 공개적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들도, "자본주의는 내적 파괴성을 가지고 있다." 고 발언하고 있으니까요.

- 주대환 씨가 책에서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해체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성립 과정을 언급한 것을 보면, 그도 1900년대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던 정당들이 두번의 세계적 전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합의 해체에 대해서는 너무나 간단하게 "공산주의는 안돼. 인간의 본성은 악해." 라고 결론 내리는 그가, 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전쟁 참여에 대해서는 "사회민주주의는 안돼. 결국엔 자본주의 정당들의 들러리가 되고 말거야." 라고 말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그와 민주노동당이 좀 더 확실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 아닌 어떤 사상도(?) 포용하는 민주공화국이 아닙니까. 당원이 아닌 어떤 누구도 그들에게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보정당' 이라는 정체성을 당명 처럼 사용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이런 질문에 좀 더 자신 있게 대답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보탬]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저는 "함부로 진보 행세 하지마!" 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진보정당이 뭡니까?" 라고 질문하고 있을 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