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 대한민국사를 바꾼 핵심 논쟁 50
권오문 지음 / 삼진기획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 정부 수립 직후 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의 논쟁들을 두루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논쟁들을 신문기사 위주로 갈무리해 놓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과 비교해 볼 때, 시간의 범위는 더 넓고 분야는 더 압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게는 정치, 문학, 종교를 다루고 있고, 분야와 상관 없이 근래의 논쟁을 따로 묶어놓았습니다. 책의 특성상 발췌독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만을 짧게 기록합니다.

3. 좌익 간의 대립 - 통일국가의 혁명방식은 무엇인가

- 대부분의 책들은 해방 이후 통일정부 수립과 관련한 논쟁과 쟁투를 다루면서, 너무나 간단히 '공산주의 세력' 또는 '좌익세력' 이라는 분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일진데, 이들의 이런 방식은, 모두어 '공산주의 세력'이라 불리우는 다양한 정치조직 내의 다양한 견해를 전혀 표현해주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 해방 직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어떤 정치조직도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치조직들은 해방 직후 조선사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그 이상 정치활동을 밀고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다루고 있듯이,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조선신민당과 같은 공산주의 표방 조직들의 논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였습니다. 러시아에서 1917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2월 혁명 이후, 레닌의 귀국과 함께 볼셰비키당이 연속혁명(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곧이은 사회주의 혁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들은 미군정을 모종의 진보세력으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협조를 약속합니다. 많은 책들이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있지요.

- 개인적으로는 백남운 교수의 행적이 인상깊었습니다. 백남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역사관과 관련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데, 실증사관, 민족사관과 더불어 사회경제사관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조선사회경제사>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관에 입각해 조선사회를 기술한 것이라고 하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튼, 해방 전 그는 연희전문과 경성제대 교수였는데, 해방이 다가올 무렵 중국 화북지방의 공산주의 세력들이 만든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게 되고, 이 조직은 이 후 조선신민당으로 조직 전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선신민당 남측지부의 책임자였죠.

- 그는 해방 직후 정부 수립과 관련된 논쟁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 를 주창하며 논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연합성 신민주주의란,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좌우합작, 김구 김규식 선생이 주도한 남북연합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당장의 최우선적 과제를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 역시 같은 의견이었으나, 조선공산당의 경우 우익세력과의 연합에 있어서 더욱 원칙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를테면, 친일파나 한국민주당의 참여 같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겠지요.

- 백남운 교수는 조선공산당과 대립했고, 이 후 (조선공산당과 한국민주당, 한국독립당은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인민당의 좌우합작운동과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하다 월북하게 됩니다. 초대 북한정부의 교육상을 거쳐 이후에는 노동당에서 꽤 높은 서열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되어 있군요.

4. 찬탁이냐 반탁이냐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문제

- 찬반탁 논쟁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도식적으로 소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들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결정내리고,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 역시도 신탁 찬성/반대로 도식화하고 있지요. 당시 찬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주된 구호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지지' 이지 '신탁통치 찬성' 이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사항에는 신탁 혹은 후견 문제와 더불어 조선의 통일정부 수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회의의 결정사항이 신탁이냐 후견이냐를 두고 미군정의 공식채널 조차도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군정의 고의적인 정치술수이냐 아니냐를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 김구 선생이 주도했던 국민회의(?)가 경찰지휘권을 접수하려 했던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군요. 당시, 경무부장이 조병옥이었다고 합니다.

6. 가짜인가 진짜인가 - 김일성의 항일투쟁 진위를 둘러싼 논란

-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역시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를 거쳐 1980년대까지 오래도록 지속된 논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절 '김일성 가짜론' 을 주창했던 이들이 한국민주당 간부, 만주 봉천 고등계 형사,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공보실 기획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군요.

8. 남침인가 북침인가 -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둘러싼 견해 차이

-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논쟁구도를 적절하게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립적인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큰 축을 나누고(소련의 세계 제패야욕 - 미국의 팽창주의 정책 내지 전쟁유도설), 수정주의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하고 있는(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기 수정주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검색에서는 최근 발간 순서대로 책이 정렬되니 브루스 커밍스, 존 할러데이와 같은 후기 수정주의 학자들이 주로 눈에 띄지요.

한국 문화계를 달군 격렬 논쟁들

- 문학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보니, 괜시리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흥미를 잃었습니다. 주된 논쟁의 축은 '현실 참여'를 둘러싼 것이라 보여집니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현실에서 밥벌어먹는 작가라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사회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차이는 '정도' 에서 발생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작품을 두고 이루어진 문학 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 논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올바를 듯 합니다. 문학 논쟁이라면,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논쟁을 통해 본 한국종교

- 기독교, 불교, 유교를 폭넓게 다루고 있고 각 종교 내적인 논쟁 뿐만 아니라 종교들간의 논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입니다. ^^

21. 신에 대한 헌신인가, 성추행의 원인인가 - 가톨릭의 독신제도 시비

- 독신제도가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웃지못할 분석이군요.

22. 타종교 비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종교정신'을 놓고 촉발된 종교계 갈등
31.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 '종교다원주의'와 감리교의 종교재판

-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몇일 전에 읽었던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문득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묶어서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논쟁의 시작은 종교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실학을 주장하다가 감리교 교단 내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 처분을 받는 사건입니다. 출교 처분을 받은 당시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훗날, 출교 처분 덕분에 특정 교단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씀하셨다는 군요.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 종교 다원주의는 전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정도에 따라, 절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65년 가톨릭의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포괄주의를 결정내렸다고 하는군요. 다원주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삼위일체와의 마찰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 하지만, 변선환 학장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가 유일신 사상 때문에 종교 다원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시각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유대교 처럼 특정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닌 이상, 한분 밖에 없는 신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매우 인상적입니다.

34. 현실참여 vs 교리적 정당성 - 불교도 민중에 눈을 돌려라

- 불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는 민중운동불교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기관지 <민중법령>까지 발행했습니다.

- 논점은 '민중불교' 라는 명칭, 정토사회의 성격, 구제의 문제, 폭력성에 관한 문제까지 폭넓게 형성되었는데, 정토사회의 성격과 관련한 논쟁이 웃지못할 정도입니다. 민중운동불교연합 측에서는 무소유에 초점을 맞추어 계급적 불평등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강조한 반면, 교단 측에서는 재가자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불교에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니.. 허허 웃을 일입니다.

38. 다름과 차이 - 여성해방론을 둘러싼 갈등

- 해방 이후 좌파 비평가들과 노천명, 조연현 문학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부터 1990년대 조직된 여성주의 모임과 단체들까지 여성운동 전반을 폭넓게 훑고 있습니다. 1930년대 여성주의 문화활동가로 알려진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여성의 특성이 배제된 남녀평등과 특수성이 인정되는 평등 간의 갈등도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 '여성 할당제'가 있지요. 저는 이런 제도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지만, 다소 기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의 차별만 없다면 분명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발휘할진데,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더라도 후자에 확실하게 방점을 두고 보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특수성을 인정하는 남녀평등은, 출산과 육아와 같은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겠죠. 아 여성문제만 나오면 너무 부끄럽군요.

43. 과학 vs 생명윤리 -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

-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는 걱정 보다는, 인간 복제 역시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활용 영역의 설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관이 앞섭니다. 유이한 인간일지언정, 인간 복제 사회 이전의 인간일지언정, 존엄성이란 끊임 없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일무이한 인간도 노동시장에서는 대부분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고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인간 복제가 시작되는 순간 의학의 영역에서만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한 병사를 만들고 판매하던 스타워즈가 생각나는군요. 제도적인 금지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44. 한글 vs 한자 - 전용이나 혼용이냐

- 한글 전용과 한자와의 혼용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과거 정부의 행적을 보며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일관성 없다는 비판 보다는, 그저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거니 생각됩니다.

- 언어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언어와 관련해서는 제도를 통한 규제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사회의 큰 흐름에 종속적인 것이 아닐런지요. 끊임 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것이겠죠. 기존 문화의 장점을 보존하려는 이들과, 새로운 문화의 장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함께 권장하면서,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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