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초판이 88년에 나왔고, 실제 인터뷰는 60년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토인비가 말하는 '요즘의 세태' 가 주로 60년대 미국의 히피족들을 꼬집고 있는 것 같군요. 6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가장 오래고 화려한 호황을 맞았던 세계 자본주의가 일단락되었던 시기이지요. 61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반전운동을 비롯해 68년 '혁명' 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던 때이기도 합니다. <토인비와의 대화> 는 인생의 목적, 삶과 죽음, 여성 해방, 지적 생물로서의 인간, 건강과 복지를 위하여,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사랑과 성, 현대의 과제,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장편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발췌독 하였습니다.

- (2장. 삶과 죽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학과 종교의 갈등, 종교와 종교의 갈등, 이데올로기 갈등은 도덕 내지 윤리라는 공통의 가치에 의해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 과학 이전에 종교가 있었다고 봐야 할까요? 과학이 종교로 부터 그리고 철학으로 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라고 봐야할까요?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종교의 시작 - 그것이 다산의 기원이든, 풍년의 기원이든 - 이었던 것 처럼, 철학이나 과학도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철학자 과학자는 기원전 OOOO년 OOOO문명에서 탄생했을지 모르겠지만, 철학이든 과학이든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노력 안에 모두 뭉뜽그려져 있을테니까요. 우리가 최초의 철학자니 과학자라고 지칭하는 이들 역시, 종교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생존 이래 계속 존재해왔던 고민이 어느 순간 집약되고 전문화되었음을 알려주는 척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결국은 오늘날의 우리이니 말이죠.

- 역사의 길이로 과학, 철학, 종교의 우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것은 처음 하나의 목적 안에서 뭉뚱그려진 상태로 존재했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 하나씩 떨어져나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들이 각각 독립하여 종교 철학 과학이라고 불리우기 위해서는 나름의 완결된 체계가 존재해야 할텐데요, 종교가 이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독립했다는 것은 곧, 종교야말로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체계화를 시도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일부가 '종교'라는 이름을 달고 독립을 시도한 만큼, 이제 남겨진 이들과의 구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름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고민' 이라고 하죠. 선뜻 여기에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름들은 후세의 역사가들이 임의로 붙인 것일 뿐인데, 이런 이름들은 오히려 종교, 철학, 과학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름을 붙일 만큼 확실한 것은 '종교' 일 뿐, 종교로의 체계화 속에 편입되지 않은 고민들은 뭉뜽그려 '나머지 고민' 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나머지 고민' 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 과학이 뭉뜽그려져 있을 것이구요. 이들은 종교와 더불어 끊임없이 인류 생존의 과제를 탐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예전 같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을 끊임없는 탐구와 문제제기가 이제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수준은 비슷하면서도 가장 먼저 체계화되어 활약하고 있었던 종교이니 만큼, 가장 큰 지지세력을 형성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정치권력이기도 했을테니까요. 이들의 문제제기는 종교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락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기가 바로, 종교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인 '나머지 그룹' 이 종교에 의해서 억압받았던 중세에 해당한다고 보여집니다. 이 '나머지 그룹' 은 종교처럼 강력한 '스폰서' - 그것이 지지세력이든 정치권력이든 - 가 없어 고통받았을 것이고, 종교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올바른 문제제기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와 '나머지 그룹' 모두에게 불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직자 당국은 과학이 논파한 뒤에도 전통에 입각한 종교적 회답을 지켜 나가려고 하여 성직자 자신이 종교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렸습니다." 라는 토인비의 지적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 종교가 독립한 이래, 결과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한 탐구 전체가 억눌렸다는 이런 밑그림은, 동서양에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중 서양의 가톨릭은 '면죄부 판매' 로 비화되는 극도의 폐쇄성과 부패 속에서 '종교개혁' 이라고 불리우는 일대 변화를 겪게되죠. 그리고, 이것을 통해 줄곧 억압받았던 '나머지 그룹' 에게도 기회가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이들 모두 본래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그룹' 의 발전은 곧 종교의 발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개신교의 탄생이 그것이지요.

- 여튼, '나머지 그룹' 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제법 혁신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사가들로 부터 '근대 철학' 이라는 이름을 선물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오늘까지도 이 '나머지 그룹' 이 종교와 같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고 보여집니다. '나머지 그룹' 중의 일부가 '과학' 으로 독립하고, 과학의 발전이 인류가 가진 욕구의 상당부분을 해결하면서 크게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를 대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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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서로 분리된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은 오늘날 종교 못지 않은 아니 어쩌면 더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토인비는 이 점과 관련해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는데요, 첫번째는 종교와 철학으로 부터 독립한 과학이 스스로 이룩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두번째는, 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렴하려 하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인데요, 실재의 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과학이 좀 더 명쾌한 언어로 추상적인 종교 교리를 뒷받침함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 스스로 과학과의 논쟁을 통해 스스로의 역할을 망각할 뿐 아니라 지위마저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

- 과학은 종교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 도덕이나 윤리라는 교집합을 통해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극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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