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프레시안)

화엄의 소리, 연꽃처럼 피어나…
<기고> 국내 최초 영성음악제 '화엄제' 참관기



▲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환호로 화답하는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 ⓒ 2006화엄제·김문

우리에게는 소리가 있었다. 소리는 말이 되고 염불이 되고 또한 노래가 된다. 소리는 부름이다. 우리 속에서 흘러나와 세상과 공명하는 소리. 그 소리는 언제나 다른 소리들을 불러들이고 다른 소리에 화답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거나 이름을 '부른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다른 피부색과 다른 말, 다른 사상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 소리들의 향연을 펼쳤다.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노래로 영혼의 교감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공연 장소도 전남 구례의 화엄사로 정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영혼의 교감을 나눈다"

<화엄제> 팸플릿을 읽어보고 제1회 국제영성음악제를 왜 열게 되었으며 어떤 고민들이 있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이루어낸 물질문명의 대가인 환경문제, 인간성 파괴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가 화두였다. <화엄제>의 주제를 '첫발자국'으로 정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기주의와 혼란을 극복하고 정신과 물질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첫발자국이 되고자 하는 바람일 것이다.

본행사가 있기 전날인 지난 17일, 구례 천은사 앞 통나무 카페에서 일종의 제의로 '타라를 만나러 가는 밤'이라는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타라는 티벳 문화에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의 고통을 함께하며 행복을 발원하는 치유의 원형이 되는 여신의 이름이다. 전설에서의 타라는 수행자이기도 하고 자식을 잃고 의지가 무너지는 아픔과 약함을 경험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둠과 추위로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카페 안에서 들려오는 악기와 목소리가 다듬는 소리로 다독였다. 드디어 일곱 시가 되어 문이 열리고 입장을 시작했다. 관객들은 각자 촛불을 들고 전깃불 대신 초로 밝혀진 실내로 들어섰다. 인도에서 온 연주자들의 타블라 소리가 낮게 깔리고 객석이 채워지는 동안 공연 참가자인 디첸 샥 닥사이, 박치음, 제니퍼 베레잔이 타라의 그림이 걸려 있는 제단에 불을 켰다.

여성 가수인 디첸 샥 닥사이, 제니퍼 베레잔는 모두 타라를 노래했다. 제일 먼저 디첸이 티벳의 전통적인 형식으로 옴마니반메훔을 들려주었다. 표정, 말투, 몸의 움직임과 노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삶과 사람과 음악이 서로 스며들어 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런 친구 하나 있으면 나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노래를 듣자니 내가 했던 나쁜 일들이 떠올라요"…"그냥 다 밖으로 내보내 버리세요"

다음엔 화엄제의 총감독 박치음 순천대 교수가 1970~80년대 고단했던 젊은 정신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 '산국화'를 불렀다. 그가 작곡한 만트라인 '님에게로'를 관객과 함께 부르는 시간도 있었다. 함께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는 관객의 호응은 연주자들의 카리스마에 걸맞게 아주 열광적이었다. 그는 깨달음의 실천,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는 화엄사상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님에게로'라고 말했다. 여기서 님은 부처일 수도 있고 또 우리 주변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제니퍼는 현대식으로 편곡한 옴마니반메훔과 대표곡인 '쉬 캐리스 미(She carries me)', '이프 아이 캔 댄스(If I can dance)'를 불렀다. 앞의 곡은 타라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고, 뒤의 곡은 춤을 출 수 없다면 혁명의 대열에 참가할 수 없다고 했다는 한 여성운동가의 말을 패러디한 노래라고 했다. 노래 중간에 이 음악회를 기획한 이정명 씨와 영적 수행으로써 음악을 선택한 두 여성 음악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디첸은 유럽 문화 속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티벳 고유의 노래와 춤을 통해 내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찾고자 한다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제니퍼는 세계평화와 여성 영성에 관한 노래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 와인 파티를 열어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마련되었다. 제니퍼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까 오래전에 내가 저질렀던 나쁜 일들이 막 생각나던데요." 그녀는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대답했다. "그냥 다 밖으로 내보내버리세요."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마음을 비우고 비워, 마침내 맑고 드높은 세상을 얼핏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함이 표정에 묻어났다.

"반야심경과 법고에서 미국의 영성음악까지 이어지는 여운"

다음날인 18일, 화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화엄제에는 승려와 신도, 일반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1000명도 넘는 것 같았다. 단청을 하지 않아 더욱 고색창연한 각황전과 그 뒤로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리산이 공연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영성음악제를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구경하다 스태프들한테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여?"
"영성음악제예요."
"뭐라고?"
"마음을 기도하는 음악회예요."
"그럼, 부처님 음악이구만."

중생을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해 친다는 사물(운판, 목어, 법고, 종)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으로 음악제를 시작했다. 스님들이 읊는 반야심경과 법고 소리가 절정에 이르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첫 번째 출연자인 디첸의 챈팅이 그 여운을 이어 받아 객석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

영성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인도는 물론, 몽골, 일본의 음악은 전통음악에 가까워 보다 근원적인 영혼에 호소하는 느낌이었다. 몽골 인간문화재에 해당하는 공훈가수인 네르구이의 장가(長歌, 오르팅 도)는 마치 넓은 초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간절히 부르는 소리처럼 아련하고 깊은 울림을 길게 뽑아냈다. 함께 출연한 18세의 몽골 연주자 테무진은 마두금을 켜며 배에서부터 올라와 목과 머리통까지 함께 울려서 내는 소리인 후미(Xuumii)를 들려주었다. 객석에서 그 소리의 독특함과 마력에 대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타악 그룹 '푸리'의 소리와 연주에 이어 마지막 출연자인 제니퍼가 무대에 나타났다. 모든 출연자들이 다함께 무대에 나와 스님과 관객들이 어우러져 '프레이시스 포 더 월드(Praises for the world)'를 부를 때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한 영성음악을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일상에서는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는 저 밑바닥의 마음을 흔드는 음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단순한 콘서트 아닌 개인과 세계의 평화 기원하는 제의"

불교법회의 한 형식인 '야단법석'처럼 화엄제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닌 개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의라 이름붙일 만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문자 그대로 열린 마당이었다. 서서히 산사에 어둠이 내리면서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 저 아래 세상사의 티끌을 잊게 했다. 쉬이 떨쳐버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인생고라 할지라도 잠시 바닥에 내려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종삼 주지스님 말씀대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화엄이고, 빈 병에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처럼 선행을 쌓아가면서 우리 마음의 빈 병을 조금씩 채워가는 것이 해탈일지도 모르겠다.

태초에 빛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는 소리가 있었음을 일깨워준 이번 공연에 대해 말로써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소설가로서 언어의 힘과 언어가 가진 공감 능력을 믿지만 음악은 언어보다 더 본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젖먹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만큼 원형적인 형태라는 느낌이다. 다만 그 날 그 자리에서 소리와 영혼의 공명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최옥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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