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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 무엇이 문제인가
신장섭.장하준 지음, 장진호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1.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분석한 저작으로서 이 책만큼 국내외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책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지은이들은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IMF가 부과했던 구조조정과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있다.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넓이를 동시에 지닌 훌륭한 경제학 서적이라고 생각한다.
2.
먼저 지은이들은, 거셴크론의 논의의 독창적 연장 속에서,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의 비교역사적 특정성을 고찰하고 있다. 거셴크론은 19세기 (개별기업가와 은행에 의해 주도된) 영국, (겸업은행이 주도한) 독일, (국가 주도의) 러시아의 상이한 발전경험을 유형화하면서, 각국의 발전 궤적을 국가간 경쟁이라는 맥락 위에 자리매김한다. 거셴크론은 이처럼 다른 발전 주도 주체의 차이를 후발국에는 부재한 선발국의 이점 – 자본, 테크놀로지, 금융 상의 이점 - 을 “대체”(substituting)하기 위한 후발국의 의식적 노력의 산물로 이해한다. 지은이들은 이 점에 주목하여 거셴크론의 따라잡기 전략을 “대체” 전략이라 이름 짓고, 이를 20세기의 상황에 응용하여 미국, 일본, 한국의 발전과정에 적용한다. 20세기 일본과 한국의 따라잡기는 19세기 독일과 러시아의 따라잡기 과정과 유사성을 보인다. 상업은행과 종합상사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케이레츠 모델은 독일의 겸업은행이 했던 역할과 유사하며, 일본보다 사적 부문이 훨씬 더 취약했던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러시아의 경험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대체전략을 통한 따라잡기를 시도했던 일본이나 한국과는 달리, 싱가포르와 타이완은 선진국의 이점을 제도적 배열을 통해 대체하기보다는 “보완”(complementing)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 3국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국가의 중심적 역할은 공통적으로 드러나지만, 보완전략을 취했던 싱가포르와 타이완과 달리, 한국에서는 재벌이 주요 산업화를 담당하게 된다. 국유화된 은행은 국가와 재벌의 관계를 매개하는 주요 고리였다. 지은이들이 “주식회사 한국 (Korea Inc.)”이라고 부르는 정부 – 재벌 – 은행 간의 연계는 이처럼 후발국가 한국이 선진경제를 따라잡는 과정 중에 선진경제의 이점을 대체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의 역사적 산물이었다. 그리고 지은이의 분석 초점은 바로 이 정부 – 재벌 – 은행 간의 연계에 집중된다.
이 책의 몸통 격인 3장은 1997년 금융위기의 결과 강요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 다룬다. 여기에서 지은이들은 경제위기의 전개와 이에 대한 IMF와 주류경제학의 진단과 처방을 비판적으로 검토, 기각한 후, 그것과 대별되는 자신들의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주류의 해석은 그것이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비효율성과 부패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구조조정은 이 시스템을 해체하는 것을 겨냥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지은이들은 주류 입장이 구조적 문제를 과장했을 뿐 아니라,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짧은 지면에 경제위기 전개 과정을 아주 간결하게 잘 정리한다. 1996년부터 현저하게 드러났던 한국 경제의 문제는 무역적자의 폭증이었는데, 이 자체는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가격의 폭락이라는 주기적 문제였다. 지은이들은 만약 이 주기적 문제에 의해 야기된 경상수지 적자가 단기 외채의 급증과 결합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는 위기를 안 겪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의해 구조적 문제로 지목된 산업정책, 정실자본주의, ‘대마불사’ 논리, 재벌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이것들이 위기를 야기한 구조적 문제였다기 보다는 과거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추동했던 “주식회사 한국” 모델의 강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1998년 말 이후의 경제회복도 구조조정 정책의 성과가 아니었으며,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구조조정 정책은 위기를 완화시키기보다는 심화시켰고, 경제회복은 IMF가 한국 정부가 긴축정책에서 케인즈주의적 경제 팽창정책으로 정책선회를 허용하였던 1998년 중반 이후에 재개되기 시작하였고, 외국 자본도 경제가 회복된 이후에야 다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책선회가 가능했던 것은 1998년 하반기 이후의 세계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었다. 세계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1998년 8월 러시아와 브라질의 위기가 터지고 뉴욕의 헤지펀드인 LTCM이 부도 직전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을 위시한 G7 경제가 이자율 인하와 통화공급 증가를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이 이자율을 낮추고 원화절하를 한 것은 원래 IMF 프로그램에도 들어있지 않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콜시장 금리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이 글로벌 케인즈주의적 정책의 실행이라는 맥락 속에서 가능했다.
IMF와 달리 지은이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옛 모델에서 새로운 발전 모델로의 “이행 실패” (transition failure)에서 찾으면서 이를 (1) 발전국가 모델의 쇠퇴, (2) 금융자유화 과정의 실패, (3) 재벌의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적응 실패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4장에서는 5대 재벌들의 ‘빅딜’과 기타 재벌들의 ‘워크아웃’을 통해 이루어진 기업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살펴보고 있는데, 불공정거래로 지목된 재벌의 내부거래의 금지나 금융기관들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forward-looking criteria)이나 BIS 비율을 준수토록 함으로써 기업 대출을 힘들게 한 것 등이 기대한 효과보다는 비용이 훨씬 더 컸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결론에서는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이 과거 주식회사 한국 모델의 강점이었던 국가와 재벌의 위험부담 기능을 사실상 해체시키면서 본질상 보수적 자금운용을 할 수밖에 없는 금융부문에게 이 기능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구조조정 이후 한국 경제의 주요 특징은 바로 주요 위험부담 주체의 부재로 요약된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미명 아래 강요된 이 특징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경제의 특징인데, 지은이들은 따라잡기 발전 전략을 여전히 추구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선발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거셴크론의 논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끝에서 지은이들은 한국이 경제위기로 폭발한 “이행 실패”를 딛고 “이차 추격 시스템(second-stage catching-up system)”을 마련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경제영역에서 후퇴할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시스템 관리자(the ultimate system manager)로서 경제체제의 획일화를 강요하는 글로벌리제이션과 국내 경제의 특수성 간의 조정자(media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해외 자본의 유출입에 대한 규제권을 다시금 획득해야 하고, 해외 금융에 대한 개방은 국내 상황의 고려에 기반해서 협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국가가 이를 잘 수행한다면 재벌구조를 해체함으로써 금융 위험을 감소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재벌의 다각적 구조 (diversified structure)에 기반한 내부의 자원동원과 계열사간 상호지원은 바로 재벌의 국제 경쟁력의 원천인데,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3.
분석의 철저함이나 주장의 뚜렷함 모두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 또한 이들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28년 동안 지속되어온 레이거노믹스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라는 옛날 책 제목이 생각나는데, 오늘날 이 시점 역사의 판단은 IMF와 주류경제학은 틀렸고, 신장섭, 장하준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은이들의 반신자유주의 주장을 접하면서 이전에 서평을 썼던 책 두 권이 계속 떠올랐다. 하나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http://blog.aladin.co.kr/eroica/2157950 )이고, 다른 하나는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조영철의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http://blog.aladin.co.kr/eroica/1948027 )였다. 전자는 금융자유화가 그것이 기대했던 원활한 기업의 자금 조달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할 때 떠올랐으며, 후자는 국가가 고위험을 부담할 수 있는 체제를 다시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읽었을 때 떠올랐다. 세 저작 모두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내가 쉽게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 있듯, 지은이들의 초점은 국가 – 은행 – 재벌의 연계이다. 지은이들이 이 책에서 이 초점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을 테고, 또 이렇게 초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분석과 주장이 더욱 빛난다. 그러나 주식회사 한국 모델의 주요 특징인 국가와 재벌에 의해 부담된 위험은 이 연계 내부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지은이들은 다루지 않는다. 이 연계가 과거 고도 성장을 추동해 온 발전모델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은이들의 진단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 연계 바깥에 수출을 통한 기업의 이윤실현에 유리한 기회구조 – 세계적으로 팽창중인 시장 – 에 적절한 타이밍에 결합할 수 있었다는 점과 아울러, 연계 내부의 주요 위험 부담 주체, 곧 국가가 비용과 위험을 국민들에게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부터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과거 발전모델에 있어 일상적이었던 것이다. 지은이들은 한국 경제 자체의 성숙과 글로벌리제이션이 과거의 주식회사 한국 모델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2차 추격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지은이들의 제안대로 연계 내부를 재정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연계와 연계 외부 간의 채널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지은이들은 국가가 글로벌리제이션과 국내 경제 간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다.
지은이들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이다. 시장은 사회에 배태되어 있는 것이라는 폴라니의 인식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한 기초를 이룬다. 국가 – 재벌 – 은행 간의 연계라는 제도적 배열의 변화를 통해 경제 발전과 위기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제도주의 경제학의 전범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연계 또한 그 외부의 더 큰 사회에 배태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며, 만약 2차 추격시스템이 이전의 주식회사 한국 모델처럼 다시 한 번 하층 계급에게 고통을 짊어질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시장 전제(market despotism)를 통해 위험을 전가하는 작금의 신자유주의보다도 나을 게 없을 것이다.
어떠한 책을 읽고, 지은이가 다루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비판이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이 서평은 결코 지은이들의 이 훌륭한 책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언급하는 것은 “2차 추격 시스템”으로의 이행이라는 지은이들이 제시한 정책 방향에 대한 동의 여부는 그 연계 내부 자체의 재배열 문제에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 장하준, 신장섭에 대한 독자들의 호오 여부는 사실 재벌에 대한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재벌 체제의 존속을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인정하면 이들의 논의를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기각하고 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지은이들의 대안에 대한 동의 여부에 있어 재벌에 대한 입장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국가 - 재벌 - 은행 연계 외부로 전가되었던 위험이 어떻게 재구조화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