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이병천 엮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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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출판된 이 책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다.
이제 60년 남짓 되는 남한의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 세력이 그래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기간 동안 정권을 잡은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998-2007)의 10년이 꼴랑 전부이다. 그러니, 이 책은 그 자유주의 세력 집권기의 한 가운데에서 출판된 셈이다. 보수우파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기의 한 복판에서 지은이들은 왜 그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을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에서 찾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정희 신드롬”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중권은 이 책에 실린 글에서 박정희 소동이 “한때 신문과 잡지의 지면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제 한마당 희극으로 끝난 듯”하다고 평가절하하였다 (339-340). 그러나 당시 진중권은 몇년 후 박근혜와 이명박이 경쟁적으로 박정희의 후계자적 정통성을 주장함으로써 보수우파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은 틀렸다. 그러나 바로 그가 틀렸기 때문에 (곧 박정희 신드롬이 한마당 희극이 아니라, 747이라는 개발공약을 앞세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됨에 따라 단순한 신드롬을 넘어서 정치를 바꾼 실질적 효과를 갖고 왔기 때문에),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이병천의 총론을 포함하여 모두 열 두 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개발독재의 제 측면에 대한 경제학적 고찰을 싣고 있으며, 2부는 개발독재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함께, 이후 자유주의 집권기의 박정희 신드롬과 소위 “우리 안의 파시즘” 논쟁 등을 다루고 있다. 글 하나 하나를 정리하는 것은 관두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가장 흥미로왔던 서익진의 글과 여러 필자에 의해 반복되어 다루어진 주제 중 세 가지 사항 – 복선적 산업화, 국가의 금융통제, 경쟁적 노동시장 – 을 중심으로 정리하겠다.

박정희 시대의 발전양식 = 차입∙수출 기반 축적체제 + 개발독재적 국가조절양식
프랑수아 셰네에 대해 큰 호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책을 한국에 소개한 서익진에 대한 기대도 무척 크다. 이병천의 총론 바로 뒤에 실린 서익진의 글은 나의 그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대한 접근방식으로서 조절이론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조절이론의 중심 격인 파리학파의 강한 이론지향성, 핵심부 국가에 국한된 분석범위, 일국적 분석단위 등이 몹시도 못 마땅한 나는 서익진이 소개해온 그르노블 학파의 좀더 유연한 조절이론에 큰 매력을 느껴 왔다. 남한의 자본주의 발전 궤도에 대한 조절이론적 접근은 그 동안 초보적으로 몇 번 시도되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알랭 리피에츠의 <<기적과 환상>>(한울)이 그나마 가장 훌륭한 저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리피에츠의 “주변부 포드주의” 개념은 브와이예에 의해 모순형용으로 비판받지만, 브와이예의 이러한 비판에 의해 정작 강조되는 것은 리피에츠의 정치하지 못한 개념 사용이 아니라, 조절이론의 외부, 혹은 그것의 이론적 난점이나 공백의 시인일 뿐이다. 곧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부에 존재하는 일국적 공간을 어떻게 전체의 부분으로서 분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조절이론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겨운 문제인 것 같다. 결코 무시될 수는 없지만 섣불리 다룰 수 없는, 그래서 뭉개고 넘어가거나 회피해 버리고 마는 문제이다.

내가 서익진의 이 글이 좋았던 것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의 [일국적 공간에서의] 결합으로 설명되는 발전양식을 대내적 측면과 대외적 측면으로 나누어 동시에, 또 양자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왔는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학파의 이론화 속에서 일국의 발전양식은 다섯 개의 위계화된 제도적 형태의 결합으로 설명되며,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일국의 거시경제가 어떻게 편입되어 있는가는 그 다섯 개의 제도적 형태 중 하나로 개념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창한 이론화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화에 의지하여 현실을 설명한 연구들은 무척 찾기 힘들다. 불임의 기간이 길어지면 그 이론에 대한 기대도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서익진의 글은 이런 내게 조절이론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가 조절이론을 통해 그린 박정희 시대의 발전양식은 다음과 같다. 

                     차입∙수출 기반 축적체제    +       개발독재적 국가조절양식
대외적 측면     ●생산재 중심의 수입                           ●수입과 외환의 통제
                     ●해외차입: 차관 →국제신용
                     ●생산재의 ‘수입을 위한 수출’                ●수출지원 (환율 + 보조금)
                     ● ‘창조된 동태적 경쟁우위’    ●국내의 상대가격 체계를 국제 가격 체계로부터 단절


대내적 측면     ●중앙집권적 은행제도: 고저축→ 고투자 ●국가에 의한 경제의 계획적 운용
                     ● 복선적 공업화:                                ●잉여동원 및 배분의 국가관리
                         수출대체와 수입대체의 병행                 관치금융 + 저축 조장 및 소비 억제
                                         +                                   ●노동력의 국가관리:
                         계열상승과 계열하강의 병행                 - 저임금 : 수출경쟁력의 원천
                     ● 외연적 축적→ 내포적 축적                   - 저임금 장시간 노동 
                                                                                - 저곡가 정책

조절이론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 간의 정합성, 혹은 제도적 형태들 간의 정합성을 통해 주어진 발전양식의 내적 작동원리를 규명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서익진은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엽까지 남한의 발전양식을 이와 같은 차입∙수출 기반 축적체제와 개발독재적 국가 조절양식의 결합으로 규정하면서, 양자가 대외적 측면과 대내적 측면에서 내적 일관성을 지니고 작동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론적 얼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곳에서 김형기, 서익진(2006)은 1980년대 중엽을 거치면서 3저호황에 힘입은 임금 상승에 의한 구매력 확장으로 인하여 내수시장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개발독재 발전모델”이 “한국적 포드주의 발전모델”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후자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과잉생산 경향과 채무화 경향을 내적 모순으로 지니고 있었으며, 97-98년의 경제위기는 이 두 모순이 폭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중의 복선적 공업화
박정희 시대의 복선적 공업화는 이병천 (47-51), 조영철 (139, 142) 등에서도 반복되는 주제이다. 이들 모두는 남한의 반주변부로의 예외적인 지위 상승의 원인을 바로 수입대체 산업화와 수출지향 산업화의 결합에서 찾는다. 서익진은 이에 더하여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계열상승과 계열하강의 병행적 시행”을 지적하며 “이중의 복선적 공업화”론을 제시한다 (80-82). 복선적 공업화는 대내적으로 I부문과 II부문을 고루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II부문의 저발전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아직까지는 과당경쟁의 영역이 아니었던) 선진국을 시장으로 하는 제조업 수출 분야에 발빠르게 진출함으로써 창조된 동태적 경쟁우위를 가져옴으로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제3세계 수입대체 산업화의 실패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국가의 금융통제: 금융헌신과 금융제약
복선형 산업화는 발전양식을 구성하는 여타 제도적 형태들과 제도적 보완성을 갖고 작동하였는데, 국가의 금융통제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발전국가 문헌 중에서 앰스덴, 우커밍스, 웨이드 등에 의해서도 집중적으로 조명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조영철과 유철규가 주로 살펴보고 있다.

조영철은 “대형 상업은행의 금융헌신(financial commitment)”이 후발산업화에 갖는 중요성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금융헌신은 자본시장 중심의 “이탈효과(exit effects)를 중시하는 거리두기 관계(arm’s length relations)의 단기적 기업금융”에서 관찰되는 금융유동성(financial liquidity)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어떻게 모험적 산업화 추진을 위해 “헌신적 자본을 장기간 공급하는 기업금융체제”, 곧 지도하는 국가와 국가의존적인 재벌 간의 발전지배연합체제를 확립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136-142).

유철규는 1960-70년대 제3세계의 금융 현실에 대한 상이한 개념화, 곧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과 “금융제약(financial restraint)”으로 대변되는 시장중심 접근과 제도주의적 접근을 소개한다. 매키넌과 쇼우로 대표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금융억압 가설과 달리, 금융제약은 “정부가 금융부문으로부터 지대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대 취득의 기회를 창출하고 이 기회를 사적 자본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둘 중에서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이 개념만으로는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급진적 금융자유화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다. 곧 한국의 금융자유화는 남미와 달리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으며, 기존 선별금융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산업자본이 저항하기는커녕 ‘시장주의’의 이름을 빌려 대단히 적극적으로 금융자유화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조영철과 유철규의 글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좀 다르다. 예컨대 조영철은 “정부가 신용배분에는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신용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는 감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선별특혜금융으로 야기된 사채시장의 확대를 그 사례로 들고 있다 (149). 이에 반해 유철규는 “시기나 추산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 절반 이상의 은행신용 용처가 정부에 의해 직접 지정되었으며, 정부는 대부분의 주요 은행을 소유했고 이자율을 통제했다”고 주장한다 (177). 이러한 차이가 단지 1972년 8∙3 조치 이전과 이후의 차이인 지는 잘 모르겠다.  

[2011. 3. 16. 추기]  조영철의 주장은 장하원 (1999: 89-90)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용용처 규제에 대한 유철규의 언급은 1972년 8∙3 조치를 통한 정부의 대대적인 위장사채 단속 이후의 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장하원 (1999).「1960년대 한국의 개발전략과 산업정책의 형성」, 정신문화연구원 편,『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경제구조』(서울: 백산서당), 77-125쪽 참조.

경쟁적 노동시장
개발도상국가의 시장 가격 왜곡은 여러 논자들(앰스덴, 쿠즈네츠, 드 버니스 등)에 의해서 지적되어 왔다. 조영철은 자본시장과 생산물 시장에서는 국가가 시장규율을 대신함으로써 이러한 가격왜곡을 주도하였지만, 노동시장, 특히 생산직 노동시장은 “경쟁적 노동시장이어서 노동이동이 활발했고, 임금은 거의 노동의 수요∙공급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152). 이는 김삼수 (207-208), 이정우(232)에 의해서도 지적된다.  


기타
다른 글들도 재미있었다.
이병천의 총론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쟁점을 두루 살펴보는 글인데, 그가 소개한 일본에서의 논의들이 꽤 흥미롭게 들렸다.

이상철은 박정희 정권의 산업정책이 어떻게 유연하게 변화하면서 수출주도 산업화를 가능하게 하였는지 살펴보고 있다. 내가 본 이상철 글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글이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김일성의 유일체제 간의 연동을 살펴보며 동시에 유사성을 비교한 이종석의 글도 재미있었고, 베트남 파병의 경제적 득실을 일본과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한홍구의 글도 매우 설득적이었다.

박정희 시대는 언제까지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으로 남을까?
“우리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은 사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의 부제이다. 그 책은 19세기 시장 문명의 흥망을 다루고 있는데, 1944년에 출판되었지만 21세기 벽두에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기원으로 읽히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2차대전 전후 케인즈주의의 흥망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쇠퇴를 19세기 시장 문명의 흥망 이후의 20세기 속편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맑스는 1852년에 출판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과거의 부르주아 혁명들이 어떻게 죽은 것들을 되살려내 현재 그들의 이해에 복무하도록 만듦으로써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지 고찰하였다. 16세기 독일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사도 바오로를 가장하였고, 17세기 청교도 혁명의 크롬웰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을 인용하였고,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은 로마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세계사적 인물이나 사건은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맑스의 말은 이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들을 가리킬 때에는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유신의 선포와 10∙26 암살까지 박정희 체제의 존속은 20년 가까이에 걸쳐 진행된 위로부터의 수동혁명 과정이었지, 결코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는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는 현재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과거의 언어를 차용했던 부르주아의 행위가 지배계급으로서 그들의 부족한 현재적 정당성을 과거의 신화로 감추려는 시도였음을 간파한다. 이것은 지난 10년간의 박정희 신드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가 동원되는 과정이 위로부터의 수동혁명 과정일 경우, 역사가 두 번 반복되고 그치리라는 보장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예외적인 데에 비하여, 수동혁명은 항상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로 집약되는 남한의 1960-70년대는 참으로 특이한 역사적 경험이다. 신자유주의의 퇴조 속에서도 갈 곳을 몰라 이전의 시장지상주의적 관성에 의존하는 현 정부의 경제운용 또한 참으로 특이하게 보인다. 10년 혹은 20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를 그 미래에 올 “우리 시대”의 기원으로 소급할 것인가? 미래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을 새 시대의 혁명은 정녕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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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9-01-2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에로이카 님 리뷰는 알차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줘서 늘 잘 읽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에로이카 2009-01-2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 서재글에 무려 다섯 달만에 달린 댓글인지라 무지 반갑습니다. ^^ 두서없는 리뷰에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겨레신문에 격주 연재된다는 21세기 진보 사상 기획에 기대가 무척 큽니다. 지성의 비관이 커질수록 의지의 낙관은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고만 있는 나날들입니다. 발마스님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