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 인간공학에 대하여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문순표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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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Übung (practice)을 주로 "수행"으로 번역했는데, 문맥에 따라 "실천"과 "수양(수련)"으로 번역했어야 했다. 

그래야 performance를 "수행"으로 번역할 수 있다. 

466쪽 이후에는 "연습"으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괜찮다.

번역이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문제작을 이런 식으로 번역출판해놓으면 어떡하나?

번역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문제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지적하기 귀찮다.


그리고 리뷰든 페이퍼든 이 책에 관해 올라온 저 쓰레기 같은 광고들은 저것을 조장한 출판사든 방조한 알라딘이든 좀 치워라. 악취가 진동한다!!!

고대는 실천적으로 수련의 특성을 띠고 반대로 근대는 노동의 특성을 띤다는 명제는 수행 세계와 노동 세계, 완성 세계와 생산 세계의 대립과 아울러 내적 연관을 주장한다. ... 양쪽 체제를 특징짓는 것은 인간의 힘을 대규모의 노력 프로그램에 통합하는 능력이고, 이 체제들을 분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갈라진 동원의 방향이다. 근대의 경우, 소생된 활력이 대상(객체) 내지 생산물의 우위에 완전히 종속되다가 결국에는 이윤이라고 하는 추상적 생산물이나 혹은 ‘작품‘으로 전시되며 수집되는 심미적 물신에까지 종속된다. 고대의 경우는 모든 힘이 수련 과정에서 훨씬 더 높은 단계의 순수 수행적인 존재 방식으로 발전하는 수행하는 주체를 강화하는 데 유입된다. 활동하는 삶vita activa에 대립시키기 위해 관조하는 삶vita contemplativa으로 지칭했던 것이 실제로는 퍼포먼스(遂行)하는 삶, vita performativa이다. ... - P340

니체는 그의 독자들이 그를 정말 이해하길 원한다면 근대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노동 논리가 수련으로 회귀하는 그 시작을 알리는 명상가 혹은 ‘되새기는 자‘가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달리 푸코가 1980년경 ‘자기배려‘(돌봄)에 대한 고대 담론을 현재의 논의 속에 다시 가져왔을 때 이것은 치료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결됐다는 신호였다. 그때부터 중요한 의제가 된 것은 고대철학과 근대의 예술 실천과 육체 실천의 출처들에서 어떤 일반화된 수행의식을 다시 획득하는 것이다. - P343

운명을 거스르는 어떤 단단한 피부를 기르길 원하는 사람은 먼저 편안한 것에 대한 자연적인 선호를 버려야만 한다. - P350

헤테로토피아는 푸코에 따르면 ‘다른 장소적‘ 공간의 창조로, 한편으로는 어떤 특정 문화의 사회적 자리들의 구조에 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내부에 전체의 논리에 보통 역행하는 완고한 규칙들이 통용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연속에서 떨어져 나온다. 헤테로토피아의 예로 묘지, 수도원, 도서관, 귀족의 유곽, 영화관, 식민지와 선박을 든다. 힘들이지 않고 이 목록을 체육시설, 섬 휴양지, 순례지, 성지, 주차장과 다양한 종류의 접근 금지 구역 같은 현상들로까지 연장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의 헤테로토피아적 공간 발명 가운데 우주정거장은 가장 중요한 혁신들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 P355

한 명의 재능 있는 수공업자나 혹은 유능한 음악가가 되려면 옛 요강에 따라 최소한 1만 시간 동안 연습하는 ‘실천‘(practicing ‘praxis‘)이 꼭 필요하며, 더 높은 단계의 장인 능력을 고려한다면 서슴없이 그 수를 곱절하거나 3배로까지 해야 한다. 천재라고 불렀던 것은 얼마 전까지 평균 수련(practice) 시간을 화려하게 단축한 경우들을 가리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는데, 음악 신동들을 떠올려보자. ... 이 유형은 행위자가 대상의 생산이나 효과의 유발에 몰두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자신의 능력을 재생산하고 확장하는 어떤 연습하는 일(practicing work)을 고무한다.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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