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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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분석한 경제학적 연구들이 일곱 편 실려있다. 딱히 총평을 할 것은 없고 글 하나하나에 대한 정리만 하겠다.

 

양동휴(1)19세기 후반의 1차 세계화 물결과 20세기 후반의 2차 세계화 물결을 비교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화 이전에 얼마나 많은 세계화의 역사적 선례들이 존재했는가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역된 상품은 사치품에 국한되었으며 19세기 이전에는 가격수렴이 관찰되지 않았다”(O’Rourke & Williamson, 2002)는 주장을 근거로 자신의 세계화에 대한 역사적 조망의 범위를 19세기 후반의 1차 물결과 20세기 후반의 2차 물결로 국한시키고 있다. 가격수렴을 시장통합의 증거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라는 개념이 현재와 같이 학문세계에서 널리 쓰여지는대로 국제적 시장통합의 내용을 지시할 경우, 19세기 후반 이전에서 세계화의 선례들을 찾기란 다소 무리라는 얘기이다.

그는 시장 통합 (상품시장, 자본시장, 노동시장)과 불평등, 두 측면을 통해 두 세계화 간의 비교를 시도한다 (비교는 다소 산만하다).

1.       상품시장 통합의 측면에서, 현재의 세계화는 19세기와 달리, (1) 산업 내 무역의 성장, (2) 부가가치 연쇄고리의 단절, (3) 싱가포르, 홍콩 등 초무역 경제의 등장, 그리고 (4) 저임금 제조업 수출국의 대두 등의 특징을 보인다 (Krugman, 1995).

2.       자본시장 통합과 노동시장 통합에 관한 부분은 비교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쪽에서는 다소 불명확한, 그리고 황당한 주장을 한다. 19세기 말에는 신대륙으로 노동이동과 자본이동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발산의 동력이 되었는 데 반해, 20세기 말에는 직접투자의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수렴되었다고 한다발산되는 것은 무엇이냐? 자본주의? , 기술의 이전에 수반되는 반경향들 (이전되는 기술을 구사하는 노동의 가치 절하, 지적재산권과 같은 형태의 선진국 기업들의 독점 지대 추구 등)은 언급되지도 않는다.

3.       이런 서술들은 불평등을 다루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세계적 불평등 추세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기술이전과 요소가격 균등화를 통해 국가간 불평등을 감소시킨 면이 클 것이리라고 추정하면서, 불평등 심화의 원인을 선진국의 성장속도가 빨랐던 것에서 찾는다. 이처럼 선진국의 성장에 외부적인 것으로 세계화를 개념화하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다.

4.       backlash를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아닌 세계화의 후퇴로 번역하는 것도 상당히 독특하다.

 

정일용(2)과 안현효(3)는 각자의 글에서 세계화와의 관련 속에서 제3세계 경제발전에 대한 주류경제학적 처방을 비판하는 실증적, 이론적 논의들을 살펴보고 있다. 둘다 대척점을 잘 정리했다. 특히 안현효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적 기초를 비판하면서 기든스의 구조화이론에 주목하여 이를 제도주의적 접근과 연결시키려는 시도(88-91)가 무척 흥미로웠다.

 

박승호(4) <<좌파 현대 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에서의 관점과 문제점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1.       다양한 좌파 이론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가 비판하는 이론들보다도 현실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2.       힐퍼딩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구분, 아리기의 금융적 축적과 실물적 축적 간의 구분을 형태적 추상이라고 일축하는 부분은 사실 좀 어이가 없다. 그가 의지하고 있는 본펠트의 실체적 추상’, 곧 다양한 형태 속에 존재하는 실체, 특수성 속에 존재하는 일반성, 구체 속에 존재하는 추상이라는 개념화에 기반하여 사회 현상의 내적 연관을 밝히는 방법은 시간성 (따라서 역사)이 사상된 추상적인 이론적 공리계 내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상이한 역사적 국면을 구분하고 있는 아리기에게 그것은 형태적 추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 과장하자면, 이승만이나 노무현이나 남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똑같다는 말과 다름 없다. 600년에 걸쳐 네 개의 축적체제 (동시에 헤게모니) 싸이클이 교체되어 온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아리기는 금융적 축적이 우위를 보이는 시기를 하나의 축적체제가 성숙하여 쇠퇴를 암시하는 징표로 개념화한다. 한 축적체제의 말기 징후로서 (곧 역사적 국면으로서) 금융적 축적의 우위를 설명하는 것이 어떻게 형태적 추상에 기반한 것인가? 실체적 추상을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느낌이다.

3.       18세기에는 자본주의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단언도 황당하다. 영국의 산업혁명(그 이후에야 비로소 맑스가 개념화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포섭이 가능했기 때문에)을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일국적 분석단위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파악하고, 유럽중심주의적이며, 산업주의적인 것이다. (사실 여기서 박승호는 월러스틴에 대한 브레너의 70년대 비판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4.       셰네의 금융 지배적인 세계적 축적체제론을 비판한다면서,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금융적 축적전략을 무슨 대안적 이론화쯤으로 격상시키려고 시도하지만, 정작 이론적 설명은 없고, 순 꼬투리 잡기들밖에 없다. 굳이 이론적 설명을 찾으라면, ‘자본의 도주전략에 대한 주목 정도일 것이다. 자본의 이동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의 공간적 이동spatial fix이든, 아니면 산업영역에서 금융영역으로의 영역간 이동financial fix이든)을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본이 노동의 저항을 피해 도주하는 것으로 개념화고자 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시각의 연장인데, 자본의 이동 원인 중 노동계급의 투쟁은 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본가들이나 정권, 보수언론이 기업 못해먹겠다고 하는 이유가 강력한 노조 때문이라는 건데, 박승호 선생은 뭐라고 할까? 자신의 논지에 따르면, ‘맞다고 해야 한다.)

5.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의 도주를 강조하는 박승호와 자본의 포섭을 강조하는 이진경 간의 대비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의 능동성과 이것이 자본에 끼치는 치명성을 강조하는 박승호는 자본의 도주를 이야기하고, 자본에 의한 노동과 활동의 기계적 포섭을 말하는 이진경은 프롤레타리아의 탈주에 초점을 맞춘다. 둘 다 극단적이라는 느낌이다.

 

조복현의 글(5)은 금융자유화와 금융공황의 역사와 이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을 잘 소개해주고 있다.

 

이강국(6)은 자본자유화와 경제성장 간의 관계를 둘러싼 계량경제학적 연구들 간의 논쟁점을 잘 정리하고 있다. 정리하면, 사실 별 관계 없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는 예의 신중함으로 자본통제만을 옹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패가 심각한 나라의 경우에 때로는 자본통제가 경제에 더욱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면, 관료의 질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0). 하지만 동아시아와 같이 경제성장이 자본통제, 국내적 금융통제, 산업정책에 기초한 고부채 모델 (high debt model)’의 경우 자본통제가 경제성장에 유리했음을 밝히고 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자본통제가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높은 부채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며, 또한 고부채 국가에서는 자본통제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신의 실증분석을 통해 주장한다 (194-5).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동아시아의 경우 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세계 자본주의 거버넌스의 문제를 다루는 장시복(7)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기초적 논의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거버넌스에 대한 좌파적 연구가 절실한 시점에서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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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3-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저도 곧... ^^

다지원 2009-07-0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대항-대학 다중지성의 정원입니다.
실례인줄 알지만 내일부터 7주간 박승호 선생님의 책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을 중심으로 한 박승호 선생님의 강좌가 개설되어 안내드립니다.

아시겠지만 박승호 선생님께서는 저작에서 조절이론, 브레너의 국제적 경쟁론, 자율주의, 개방적 맑스주의 등 최근의 좌파이론을 분석하고 새로이 재구성된 독창적인 정치경제학을 모색하고 계십니다.

강의 시간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이며, 수강료는 7강에 104,000원, 청소년의 경우 50% 할인됩니다.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daziwon.ohpy.com/227090/11

감사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