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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경제변화와 국가의 역할 전환
김대환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서평 쓰기가 참 쉽지 않다. 서평이랄 것까지는 없고, 짧은 메모를 남긴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10명에 의해 쓰여진 14개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세가지 정도의 이론적 축에 의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랜동안 조절이론과 접목된 맑스주의 국가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해왔던 봅 제솝의 이론을 발전국가 해체 이후의 남한과 대만에 적용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3장을 쓴 제솝은 서구의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 (Keynesian Welfare National State, KWNS)가 슘페터주의적 근로 탈민족 체제 (Schumpeterian Workfare Post-national Regime, SWPR)로 변형되는 과정을 이론화시키고자 하는 작업을 오래 동안 해왔다. 현재 그와 함께 랭카스터 대학교에 재직중인 섬(6장)은 제솝의 작업을 딛고, 이 이론틀을 동아시아(특히, 홍콩)에 확장 적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섬에 따르면, 서구의 KWNS 모델이 기반하고 있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자기중심적 (autocentric)임에 비해 동아시아 경제 모델들은 자기완결적이지 못한 ‘배태된 수출주의’(embedded exportism)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지구적 규모의 교환 영역과 지역적 규모의 생산규모 간의 접합이라는 형태를 띤다. 4장에 실린 조희연의 글은 제솝과 섬의 이론화를 창조적으로 한국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며, 8장의 왕젠환의 글은 이를 대만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조희연은 남한과 대만의 발전국가 모델을 수출형 축적체제에 조응하는 ‘리스트주의적 준전시국가’ (Listian Warfare State)로 개념화함으로써, 제솝-섬의 이론적 틀의 보편화 (동시에 유연화)를 시도한다.
1장의 김대환, 9장의 윤상우의 글은 기존의 발전국가 문헌들을 검토하고 있는데, 발전국가론이 뭔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정리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잘 정리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을 비교하고 있는 윤상우의 글은, 유사한 경성발전국가였던 두 나라가 상이한 이행경로를 그리며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대만의 경우는 연성 발전국가로, 남한의 경우는 탈발전국가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조절이론의 정치학적 측면에 주목한 제솝, 섬, 조희연, 왕젠환의 글들과 달리, 2장과 12장을 쓴 조명래 선생의 글은 조절이론의 경제 분석에 입각해서 쓰여졌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제시되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지구체제 (global regime) 개념화가 특히 주목할만하다. 그는 지구체제를 “선진국에 거점을 둔 금융적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유통부문(circulation sphere)의 지구적 뻗침'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구화와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관계 (예, 자본노동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산업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생산부문(production sphere)의 지구적 뻗침'” 간의 교차로 개념화한다 (329). 핵심-주변 관계의 이러한 새로운 개념화에 기반하여, 세계화와 더불어 한국 경제가 맞게 된 어려움을 한국의 수출주의 축적체제의 근본 모순이 발현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주도했던 산업생산의 세계화가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는 포스트포디즘적 국제분업체제에서 저기술, 저부가가치의 표준화된 제품을 경쟁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부문으로 점점 제한”되는 효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개방이나 경쟁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부문의 세계화를 추진했지만, 선진국이 독점하거나 통제하고 있는 지구적인 상품순환망에 외향적이면서 불평등하게 연루되면서, 그 결과로 이윤실현의 조건이 더욱 불리하게 되었다. 세계화를 통한 한국자본주의의 지위상승은 결국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는 자본순환 및 교류망의 함정으로 빠져든 채 '주변부 경제'로의 재하강(reperipheralization)이 강제되었다” (344-5).
조명래 선생이 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른 후속작업들이 있는 지 궁금하지만, 앞으로 빼놓지 말고 챙겨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14장에 실린 조희연의 다른 글도 흥미롭다. 4장이 발전국가를 조절이론의 해석틀로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라면, 14장은 한국 발전국가의 변화를 소위 ‘세 개의 전선’ (국가-시민사회 전선, 계급전선, 생활세계 전선)에서의 갈등의 변화 양상을 추적함으로써 그 내부동학을 정치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한다. 지은이가 현재까지도 이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교체 시기와 맞물려 이후의 작업이 기대된다. (얼마전 지은이는 [레디앙]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책적 조언을 기고한 바 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3542).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었는데, 이 책에서 제시된 이론틀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만약 책을 엮었다면, 테마별로, 이론적 입장별로 다르게 구성했을 것 같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에는 1장부터 14장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는 관련성이 높은 글들끼리 보는 게 더 좋을 듯 싶다. 먼저 발전국가론에 대한 정리를 포함하고 있는 1장 (김대환)과 9장 (윤상우)을 읽고, 번역이 꽝이긴 하지만, 제솝(3장), 섬(6장), 조희연 (4장), 왕젠환(8장)을 읽고, 다음으로 조명래의 2장과 12장을 읽은 후, 한국 발전국가의 변화를 조금씩 다른 관점에서 재구성한 11장, 13장, 14장을 읽은 후, 나머지 글들을 읽는 게 좋을 듯 싶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봅 제솝, “슘페터주의적 근로국가를 향하여”, 김호기, 김영범, 김정훈 편역. <<포스트포드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한울
윤상우, <<동아시아 발전의 사회학>>, 나남
유철규 외, <<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함께 읽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