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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 세계화의 두 경제학
이강국 지음 / 후마니타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정치적 입장이 상반된 세계경제포럼(WEF)과 세계사회포럼(WSF)이 각각 개최된 두 도시의 이름이 들어간 제목이 암시하듯, 또 “세계화의 두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세계화의 제 측면을 둘러싼 상반된 경제학적 견해들을 다룬다. 또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발전국가 해체 과정과 신자유주의 전개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의 등장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있는 1장에서 지은이는 헬라이너(Eric Helleiner)를 따라,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자본통제가 해체됨에 따라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국내적 전환”이 미국의 주도 하에 어떻게 IMF와 국제통화체제의 재편으로 이어져 소위 “월스트리트-재무부-IMF 복합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보고 있다. 이어서 이들의 금융자유화 구상은 80년대 초반 금융 위기에 처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로 수출되었고, 채무국들에게 부과된 구조조정 정책의 핵심들은 나중에 존 윌리엄슨에 의해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가혹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는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은 이후 또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IMF의 처방은 안팎으로 비판을 맞이하게 된다. 경제가 휘청이게 된 국가들의 위기는 피해당사국에게는 말 그대로 위기였지만, 고삐풀린 (단기)금융자본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에 문제의 월스트리트-재무부-IMF 복합체의 요직에 있던 스티글리츠 같은 이조차 IMF의 구조조정 처방책을 “엉터리 경제학과 어떤 이데올로기의 기이한 결합”으로 비판을 하며, 제도의 중요성과 국가의 적절한 역할을 강조하는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를 촉구하게 되었다.
이처럼 1장의 이야기는 비교적 평이하다. 그런데, 2장부터 5장까지는 세계화의 제 측면을 둘러싼 경제학계에서의 쟁점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국가와 대안적 운동을 다루는 6장은 경제학보다는 사회학에 가까울 듯 싶다). 한줄한줄 읽을 때마다 지은이가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고자 했음이 느껴지고, 출판사도 상당히 공을 들여 쪼끔이라도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면 바로 용어해설을 붙여서 이해를 돕고 있다. (독자로서 지은이와 출판사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지은이와 출판사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대하고 치열한 경제학 논쟁을 어느 정도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고,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이(적어도 내 경우엔)상당히 필요했다. 금융세계화와 자본자유화 (2장), 무역자유화 (3장),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4장), 소득분배에 끼치는 변화 (5장), 국가의 약화 혹은 역할 변동 (6장)을 둘러싸고 전개된 대립적 주장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각 장들의 논리전개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1) 대립되는 주장, 혹은 모델들이 소개된다. (2) 각 모델들을 증명하고자 하는 실증연구들이 검토된다. (3) 그런다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이 되거나, 어느 일방이 논리적으로 우세하다고 볼 수 없는 어려움을 그대로 노정한 채, 하나하나의 경우에 대한 역사적 사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이러한 논리전개 구조가 암시하듯, 7장에서는 한국의 발전국가 해체와 경제 위기에 대한 지은이의 분석이 이어진다. 앞의 장들은 논쟁의 검토 및 소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시장주의자들 (IMF로 대표되는 주류경제학의 입장)과 수정주의자들 (발전국가론자들)의 논쟁은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된다. (사실 여기에 논쟁이랄 것은 없다. 좌파든 우파든 한국의 경제발전이 IMF가 권고해온 시장개방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는 어리석은 이는 이제 없을 것이다.) [개입의 삼위일체 (321쪽): (1) 자본통제, (2) 국내적 금융통제, (3) 산업정책]
지은이는 1960-80년대의 국가주도 경제성장이 수출과 해외자본 조달 (경제 자체의 대외의존)을 통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강력하고 독특한 자본통제를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춤에 따라, 외국 자본을 활용하되 해외 자본에 대한 종속은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경우, 브레턴우즈체제 하에서 자본통제가 비교적 용이하였으며, 이것이 복지국가 정책시행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에 반해 1960-80년대 한국의 자본통제는 발전국가 정책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이는 냉전체제 속에서 기능하였다.] 한국 상품들은 냉전체제로 인하여 미국 시장에 접근이 용이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남한 정부의 보호주의적 정책을 관대하게 봐줬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재벌의 신용도 상승은 재벌들이 정부의 보증없이도 외국자금을 빌리게 해주었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재벌 소유의 종합금융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됨에 따라, 그동안 은행시스템을 통해 재벌을 통제해오던 국가의 자본통제 메커니즘은 그 기능을 급격하게 잃게 된다. 여기다가 3저호황(대미무역 흑자)과 냉전종식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한국 국가에 압박을 가하여 소위 “개입의 삼위일체”를 무력화시켜버리고, 김영삼 정부는 경제 다방면의 자유화(발전국가의 종말)와 OECD 가입을 맞바꿔버린다. 이제 재벌은 쉽게 빚을 내서 전세계에 걸쳐 문어발확장을 해나갔고, 1992년 증권시장 개방 이후 외국인의 주식보유한도는 증가일로에 접어들게 되었다. 금융시장 개방은 국내 재벌과 (미국 정부의 개방압력으로 대변되는) 국제금융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고, 정부는 ‘세계화’를 통해 선진국 클럽에 “학실히” 가입하기 위해 금융개방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정은 발전국가를 확인사살한다. 1998년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완전개방됨에 따라, 97년 15%였던 자본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004년 상반기 43%로 급등했고, 2004년 하반기 주요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65%에 이르게 되었다. 또 2004년 1분기의 국내재산반출은 “2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3.7배나 늘어났”다 (356). 성장과 분배의 동시악화가 발생하였다. 개방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침체되어, “부자/빈자,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 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수출호황이 국내투자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363). [이런 현실을 보면 “종속심화-독점강화” 테제는 오늘날 다시 강력하게 주장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윤소영 교수는 딴짓 그만하시고, 다시 이 중요한 주제로 돌아오시기를… ]
[마침 오늘 (2006년 11월 21일) 뉴스들은 10대 재벌의 현금보유액이 150조원에 이른다고 전한다. 재벌이 돈을 벌어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끝에서 지은이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약간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투기자본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 외국자본에 대한 선별적 접근, 칠레에서 시행된 것과 같은 가변의무예치금 제도 도입, 동아시아 지역국가간 통화스왑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통화바스켓 제도 등.
지은이가 그리고 있는 현재 한국 경제의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지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올바른 정책을 편다면 한국경제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피력한다. (시원하고 통쾌한 맛은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는 하되, 국가의 정책적 수준에서 약간의 대안이 언급된다. 주장의 참신함보다는 세계화를 둘러싸고 경제학계 내부에서 진행된 전문적인 논의들을 쟁점별로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성의, 그리고 이와 결합된 지은이의 광범위한 학문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지은이처럼 자기 공부를 쉬운말로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실력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쾌도 없는 난마”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은이에게 쾌도가 없다고 탓하기 보다는, 쾌도로 목을 벨 적의 약점을 성의껏 가르쳐줬다는 것에 감사하자.
가끔 <프레시안>에 세계경제의 불균형에 관한 경제학계의 논의들을 올리기도 하던데, 아마도 다음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기대된다.
[사소한 꼬투리 하나.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밀라노빅’을 소개하는 부분 (222-229)에서 지은이는 그가 러시아 출신이라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 그는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이름은 밀라노비치 (Milanovic)로 발음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 책에서 소개된 이전의 연구들을 더욱 발전시켜 2005년에 Worlds Apart라는 책을 펴냈는데, 1978-80년 이후 일국적, 지역적, 세계적 수준에서 소득이 양극화되고 있고, 이는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 탓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그는 아리기(Giovanni Arrighi)의 논의를 끌어들여 이것이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스티글리츠 이후로 가장 주목할만한 세계은행 경제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