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부상과 연행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부쩍 많이 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 위를 전경들이 군화로 짓밟고 방패로 찍으며 전진했다는 보도에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분노를 느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저께부터 부쩍 더 시청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고, 갑자기 그저께 밤중에 즉흥적으로 결심했다.
시청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으면서 몇 가지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미리 상정하고 그것을 무릅쓸 각오를 다졌다. '첫째, 전경의 폭력에 당할 수도 있다. 둘째, 연행되어 다음날 출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지함 반 장난 반으로 나만의 시위참가 용품을 미리 챙길까도 살짝 고민했다. '방패찍기 등의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지키기 위한 자전거 헬멧, 살수차의 물세례에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자전거 고글, 비가 내리건 물세례를 흠뻑 맞건 물기를 삽시간에 배출해 주는 자전거 의류, 이 세 가지는 평상시 쓰던 것을 가져가면 될 것이고, 회사 후배들이 점심시간 운동용으로 쓰는 포수 미트를 빌려 가면 전경들의 몽둥이 피칭을 훌륭히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복장의 시위대 틈에 자전거도 없이 자전거 용품으로 무장한데다가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는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포수 미트를 끼고 있는) 웬 미친놈이 끼어 있다면, 당장 다음날 조중동 일면에 '정신분열적 폭도들' 따위의 기사가 뜰 것이 뻔하므로,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시위 참가를 결정하고 '어느 깃발 아래 모일까'를 고민하다가, 아주 즉흥적으로 '우석훈과 함께 촛불을' 들기로 했다. 한겨레 신문 칼럼과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라는 책을 통하여 그의 글을 재밌게 읽었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나는 '우석훈 촛불 번개' 소식을 접하자 마자 별 고민없이 그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우석훈 촛불 번개'는 우석훈 블로그(http://retired.tistory.com)의 독자가 대상이었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그것도 한 다리를 건너서 알게 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이질적이고 무리가 따르는 집회였다. 심지어 나는 우석훈 블로그에 가 본 적도 없었으므로... 그래도 집회에서 따를 깃발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로가 된다. 지난 6월 10일 집회에서는 그야말로 사람의 홍수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함께 하기로 했던 '수유+너머' 그룹에 합류할 수 없었으므로 별 수 없이 홀로 시청앞에서 독립문까지 행진했었지만(그래도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작고 조촐하긴 했지만 재치있는 <임시 연습장>(우석훈 블로그의 별명) 깃발이 최소한의 소속감과 조금 더 강한 연대감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 물론,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시위를 위해 한 곳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에서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엄청난 연대감을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연과 즉흥으로 찾아간 시청앞에서 나는 생애 최초의 경험 몇 가지를 하게 된다. 미사에 참석한 것, 시청앞 광장이라는 공간을 밟은 것, 구호없는 시위와 행진을 한 것 등... 그리 많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내가 시청앞에서 시위에 참가할 때는 언제나 시청앞 광장은 닭장차로 봉쇄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삶은 달걀 껍질을 까서 한 입 물어 보았더니 노른자가 비어 있을 때의 기분이랄까? '시청앞'에서 수 십만의 집단 지성이 뜨겁고 열정적인 군무를 보여줄 때, 정작 '진짜배기 시청앞'은 뇌사 상태, 또는 정신분열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제의 시청앞은 진짜 시청앞이었다. 그곳을 스무번도 넘게 채울만한 인파가 몰렸을 때에는 굳게 닫혀 있던 '진짜 시청앞'이 고작 200여 명의 신부님과 수녀님의 나긋한 노크에 문을 열고 말았다.
사실 나는 근본주의 개신교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가톨릭을 경계한다. 세계 근현대사를 볼라치면 가톨릭의 흔적은 거의 언제나 반동의 악취로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 그나마 진보스럽게 여겨지는 사제들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가 진보의 문턱을 넘으면 그들 역시 반동의 대열에 설 것이라고 손쉽게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평화'는 게으른 자들의 달콤한 속닥거림일 뿐이며, 진정한 평화의 길은 반목과 투쟁으로 점철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즉 6월 말의 촛불집회가 보여준 피흘림이 일반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 생각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러나, 온건하지만 단단한 실천을 통하여 '평화를 통한 평화의 길'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반목과 투쟁이 모르도르의 성벽같은 거대한 장애물에 가로막힐 때, '평화의 도구'는 진정한 메시아로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비록 그 구원이 일시적일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그것이 스피노자가 강조했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종교의 진정한 영역이 아닐까?
정의구현사제단은 부드럽게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명했다. 침묵과 용서와 화해와 자제를. 놀랍게도 아무런 힘도 없을 것 같은 저 단어들이 6월 30일의 대반전을 이끌어 내었고 그 대반전은 어제의 집회를 통하여 압도적인 승리로 변하고 있었다. 한 중년 아저씨가 길가에서 시위대를 향해 내뿜던 악에 받친 저주의 말들은 압도적 다중의 침묵을 통과하는 동안 여과되어 가장 여린 시민에게조차 아무런 생채기도 남기지 않게 되었으며, 몇 날 며칠을 시위대 폭행에 여념없던 경찰이 시위대를 위한 아늑한 통로를 만들어 주고 시위대는 경찰에게 박수를 치면서 보답하는 서로 가슴벅찬 휴전의 평화를 일궈낼 수 있었다. 비록 궁극의 목적지를 직선 거리로 보자면 굉장한 우회로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비폭력 노선이지만, 역사의 네비게이션은 아마도 더 이상 짧은 거리는 없다고, 아니 그 외에는 어떠한 길도 없다고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현 시국에서만큼은 사제단의 개입과 비폭력 집회로의 유도는 집단 지성이 찾아 낸 거의 유일한 해법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