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요일이고 수유+너머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회사일이 밀려 수유+너머에 가지 못했다. 일을 끝내니 일곱 시. 서울 시내로 가려고 민주노동당의 지인에게 전화했더니 목요일에 성남에서 집회가 있단다. 목요일 성남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그간 묵혀 놓았던 <화양연화>를 DVDP에 걸었다. 거칠게 뭉게졌지만 알록달록한 화면발은 수개월 기간동안 발효한 까닭에 더 짙은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듯하다. 모든 장면은 장만옥과 양조위의 스틸 사진 화보와 같다. 좁고 추해 보여야 정상인 60년대 홍콩의 슬럼가 주택이 환상 소설의 무대인 양 몽환스레 보였다. 변주곡처럼, 일관된 스타일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다시 등장하지 않는 디자인의 원피스만을 입고, 60년대 풍이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은 헤어스타일을 한 장만옥. 비를 흠뻑 뒤집어 쓰고도 마치 살갗인 양 몸에서 떨어져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사복 차림의 양조위. 두 사람이 슬럼가에 핀 국화와 같이 극적으로 젊잖은 사랑을 나눈다.
양조위... 다시 한 번 사랑의 기회가 온다 해도, 그는 온전한 정신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앙코르와트의 심연을 향해 메아리 없는 깊은 고백을 하고, 텅빈 눈을 타자기에 하염없이 고정시킨 채, 허무에 찬 글을 끄적이기만 할 것이다. 멀쑥한 신사복같은 사람에게는 스탠다드한 외로움이 정상적인 것.
이 영화에서 유독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양조위에게 넋이 나가서 감정이입되어 있는데, 어느새 불현듯 전람회와 같은 영화가 끝났다. 현실에서 나는 어느 정도로 양조위인가? 글쎄, 돌아 보면 나의 글은 거의 언제나 화양연화의 양조위 같았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는 불쌍한 겉멋까지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