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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제프 블라터의 철권 통치,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4.7.

 

EBS 지식채널e '축구공 경제‘를 보면 축구공의 경제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불법 아동 노동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최첨단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는 축구공은 100% 수공업 결정체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공의 70% 이상을 인도와 파키스탄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FIFA는 축구공 생산 노동이 강요적이거나 구속적이지 않을 것을 표명하지만, 거대스포츠 기업 아디다스의 천문학적 수익, 황금발의 스타들 뒤에는 10만원 넘는 공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 150원을 받는 아동 노동이 존재한다. 축구공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하루 8시간씩 축구공을 바느질한다. 이 정도가 내가 『피파 마피아』를 읽기 전에 축구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일면이다.

 

나는 운동에 유난히 관심 없는 십대를 보냈다. 선생님이 공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배구공과 농구공도 구분을 못해서 한참 망설였던 부끄러운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양궁을 한번 해보겠느냐는 체육 선생님 말씀에 정중히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라는 세상의 기준을 내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운동은 다른 세계 이야기였을 뿐, 나의 운동에 대한 무지함은 장애가 되지도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한 방송과 사람들의 흥분에도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과 폴란드전, 미국전은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포르투갈 전을 볼 수 있도록 일찍 퇴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TV로 포르투갈전을 보면서 완전히 축구에 빠져들었다. 축구는 그냥 경기가 아니라, 일상의 따분함을 한 순간 사라지게 만들었다. “축구공 하나로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전 경기를 다시 찾아보았고, 실시간으로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스페인전은 길거리 응원까지 나갔다. 그때는 4강전을 보러 일본에 가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다. 축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처럼 한동안 경기를 보면서 해석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익힌 유럽 축구의 구도가 여전히 내가 아는 축구 상식의 전부다.

 

『피파 마피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월드컵과 축구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담고 있다. 스포츠 정치 분야의 탐사 전문 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가 20년 동안 파고들었던 피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파의 역사라기 보다는 범죄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는 오락이 아니라 거대 산업으로, 제프 블라터를 중심으로 하는 피파 수뇌부는 개최국이 마지막 4강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포츠의 자율성은 국가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48쪽). 토마스 키스트너가 파헤치는 국제스포츠계의 행태는 완전히 범죄 그 자체다. 피파는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단 한명의 보스가 지배하는” 마피아 조직이다. 저자는 이 험난한 탐사 취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가 스포츠의 본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수조 원이 공익이라는 미명아래 제프 블라터 패밀리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

   

수많은 경기 중에서 왜 유독 축구가 전 세계를 하나로 응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느낄때가 많다. 축구를 보도하는 기자조차도 객관적인 스탠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축구 팬으로서 경기를 바라보고, 촬영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까지도 슬로우 모션으로 담아내면서 시청자의 심장을 딱딱하게 만들었다가 뜨겁게 달구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 축구가 생산하는 경제적 이익이 유통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월드컵 대진표를 보다 보면 축구는 실력이 아니라 ‘대진 운’이라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개최국은 대진에서도 항상 유리한 입장을 취해 왔고, 심판 역시 홈그라운드에 노골적으로 유리한 판단을 할 때가 많이 있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2014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나 역시 공감하는 바다. 축구가 브라질 경기(經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실제의 삶이 더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한 브라질 대중은 그 어마어마한 세금이 다른 곳에 쓰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학교, 병원, 대중교통에! 축구가 끝나고 진짜 인생이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나 그 돈이 필요했습니다. 진짜 인생, 정작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마피아가 움직이고, 영상을 연출하는 탁월한 전문가들이 작정하고 덤빈다면 축구뿐 아니라 어떤 경기도 정치적으로 움직일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어디 FIFA만이 마피아들의 온상이겠는가.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마피아를 연상하게 하는 조직범죄의 진행과정을 우리도 현재 목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의 허약함’(433쪽)은 늘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우리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실제 봐야할 세계는 프레임에 갇힌 사각의 경기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 하나에 얽혀있는 무수한 권력 비리를 눈감는다면 축구는 우리의 도덕과 가치를 잠재우는 아편이 될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미술관 앞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있다. 토요일 오후 유소년 축구단의 연습이 한창이다. 축구 꿈나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연습 하는 것을 보니, 피파 마피아의 얼굴들이 오버랩되어 마음이 복잡해진다. 부디 이 아이들이 축구 선수가 되든, 축구 팬으로 남든 - 스포츠 본질인 경기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만큼 - 조금이라도 정직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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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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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활 밀착형 사회학 보고서 『독신의 오후』, 부제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우리는 누구나 독신으로 세상에 왔고, 단독자로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한때 누구나 독신이었고, 원하든 부정하든 언젠가는 누구나 독신이 될 수 있는 운명에 처해있다. 과정이 무엇으로 채워지든 본질적인 인간 존재 조건의 평등함을 생각하면 인생을 메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긴다. 외국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싱글 라이프가 흔한 삶이 되었다. 90년대 초반 방송국 PD들이 대가족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배우 출연료가 너무 많이 나가서, 주인공 혼자 사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미 1인 가구의 증가는 하나의 사회 현상의 전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신 이야기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관계 맺고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것인지가 독신의 오후를 결정한다. 신간『독신의 오후』를 읽으면서 무수한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 또한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탄생과 죽음을 목도한다. 생각하지 못한 이유로 많은 지인들이 세상을 등졌고, 그들은 내게 인생교과서로 남아 있다. 종교, 성격,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불가피한 독신을 견뎌내는 힘과 방법에서 현격한 개인차가 존재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 작인 영화 ‘환상의 빛’(1995)은 남편이 자살한 원인을 모르는 채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소소한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사로운 개인적 경험이 차원 높은 세계와 마주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 간다. 혼자되었으나 또 다른 삶과 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단 과거 남편에 대한 기억과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켠에 평생 머무르면서 환상의 빛이 된다.

 

허안화의 ‘심플 라이프’(2012)는 4대에 걸쳐 남의 집 일을 해주다가 요양원으로 옮겨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심플하게 다루고 있다. 정결한 한 여성이 요양원이라는 낯선 공간과 그곳 사람들에게 적응해가는 과정 또한 하나의 삶으로 자리한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추억의 공유’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독신의 오후』는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나 저자의 사적 경험을 주관적으로 늘어놓은 책이 아니다. 적어도 ‘생활밀착형 사회학 보고서’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평가다. 양적 자료와 데이터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독신 남성이 증가하는 원인, 세태, 향후 진행 방향과 대안 제시에 대한 저자의 혜안에서 평생 사회학자로 살아온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동아시아”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호황이 끝났다는 점에서, 국가에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신자유주의에서 개인의 ‘노후’는 각자의 책임으로 남는다.

 

 “남자의 ‘불편’과 여자의 ‘불안’의 결합” - 결혼의 변화

 

나의 전공은 ‘사회학’이고, 현재 독신이다. 다행히 경제적인 ‘불안’을 해결하는 수준의 업(業)이 있고, 결혼을 통해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이 해결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미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적어도 향후 수십년의 삶이 ‘인간적’일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 삶을 최소화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에서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페미니스트 작가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 스트리트』(2008.7)를 읽으면서 내가 왜 독신을 선택했는지 공감했다. 망고 스트리트의 나의 집은 한 여성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심적, 물리적 공간으로서) ‘나의 집’을 꿈꾸게 한 유년의 공간이다. 우리에게 나만을 위한 실내화와 내가 어질러 놓은 상태 그대로 나를 기다리는 집이 필요하다. 엄마의 자궁과 같은 집이 필요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력과 수양을 감히 짐작해보지만, 혼자 산다는 것 역시 끝없는 자기 수양과 성장을 요구한다. 독신은 “자기만의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타인들의 일을 대신해주고 고민을 처리해주는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직장, 가족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으로 부자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싱글은 적절하게 시간 활용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신’에 대한 편견은 내 주변 곳곳에서 나타난다. 같은 학문을 공부해도, 살아온 이력은 학문의 영역에 그대로 반영된다.

 

사례 1.회식

 

모두 무난한 결혼으로 중산층에 진입한 대학원생들(모두 여성이었음), 나만 독신.

 

그녀들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그녀 : “나는 노처녀들이 영양제 챙겨 먹는 걸 보면,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느껴진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노처녀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그 이야기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독신녀 (나)

    나 :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독립변인이 어디 ‘결혼’ 하나인가요? 신념, 성격, 교육제도, 교육과정, 사회적 조건 등등

           많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죠. 저는 가족주의가 이타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그분들의 공격

  그녀 : “저거 봐. 별거 아닌 걸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노처녀는 어쩔 수 없어.”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독신녀들에게 정 떨어졌던 각자의 경험을 일반화했을 뿐, 그녀들에게 악의는 없었다.

 

사례2. 신입생 환영회

 

겸양지덕을 겸비한 듯한 외양을 갖춘 중년의 대학원 신입생. 서로 알아가자는 의미의 Q&A 시간, 내 차례가 되었다.

    나 : “결혼 안하셨죠?”

    신입 : “어머. 제가 그렇게 능력 없어 보이세요? 저 꽤 괜찮은 남자랑 살아요.”

    나 : “네에. 저는 능력 있어 보이셔서 결혼 안하셨냐고 물었어요. 제가 결혼 안했거든요.”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만만찮게 따지기 좋아하고, 지기주장 굽히지 않는 ‘독신’임에 틀림없다.

 

사례3. 나의 지인(知人)들

 

    지인 :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데, 왜 결혼을 못하냐? 결혼만 하면 딱 좋을텐데.”

    나 : 나의 삶은 결혼하는 순간 180도 달라져. 이건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야.

   

이 사례들을 나열한 까닭은 결혼 유무 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자기 배려의 윤리를 실현하는 삶을 사는 것, 조건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조건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어떻게 반응’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남성 독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선의 매뉴얼을 제공한다. 다소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으나, 저자의 진정성은 후기에 적힌 다음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은 결코 냉담하지도 매몰차지도 않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내에게서는 “자, 당신 홀로 남겨두고 가지만 안심하고 떠나요.”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고, 이혼한 전처에게서도 “당신 낯짝 따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아.” 같은 미움 대신에 “아이들 아버지로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으면 싶다. ‘노처녀들’ 앞에도 매력 있는 남성들이 많이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295쪽)

 

‘독신 삶’의 질에는 철저히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 결혼 이주여성의 증가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여성 중에는 선택적 독신이 제법 존재하지만, 남성중에는 불가피한 독신이 훨씬 많다. 불가피한 독신이라 할지라도 행복을 유보할 수는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과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독신의 오후』는 그러한 고민을 풀어가기에 적절한 교재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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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는 늘 '책'과 '영화'가 한 자리를 차지하였으나, 이번 여름은 책의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더위 탓은 절대 아닙니다.

때로는 '무엇'이 마음에 담장을 쌓고, 먼지아이로 머물게 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시간 안에 거하고 있으나,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추천을 위해서 신간을 살펴보니... 눈에 밟히는 책이 여럿 있습니다.

책은 여름에 읽고, 여행은 가을에 떠나야 하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도 몸도 잘 익어가는 8월 되었으면 합니다.

 

인문학은 자유다, 얼 쇼리스 지음, 박우정 옮김, 현암사, 2014. 7.

 

얼 쇼리스의 유작이라니...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 출판되었다. 그의 희망의 인문학에 위로 받고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현실에도 답이 없던 시절,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니체를 읽는 일이었고, 푸코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배움은 오롯이 내 안에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로 존재한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이라는 부제는 희망의 인문학의 다른 표현이다. 인문학은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추상적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유혹하는 책 읽기앨런 제이콥스 지음, 고기탁 옮김, 교보문고, 2014. 7.

 

이사 오면서 많은 책을 정리(처분)했으나, 다시 또 책이 쌓여간다. 벗들은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함께 읽자고 설득하지만, 여전히 책의 물성(物性)에 매혹되어 있는 내가 전자책을 읽게 될 날이 언제쯤일지 모르겠다. 사물, 특히 책은 나에게 물질의 속성 자체가 매력적이다. 사각거리는 연필이 흔적을 남기고, 원하는 페이지를 접기도 하고, 포스트 잇을 붙이는 것, 그것은 마치 동일한 아파트 구조를 변형하지 않고도 나다운 집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나만의 독법이 없어서 이 책을 추천하는 바가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기대한다.

    

  

 

 

 

 

 

 

 

 

 

 

 

 

 

 

 

내릴 수 없는 배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14. 7.

 

세월호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현재 시점으로 우리 삶의 일부로 존재하는 세월호는 의사자 대우, 세월호 대입 특별전형 등으로 의제가 설정되면서, 본질적인 논점에서 자꾸 멀어지는 듯 보인다. 국가의 문제 상황을 총체적으로 직면하였지만, 우리는 이번 7. 30 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에게 완승을 안겨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에서부터 선거까지 보여주었던 무수한 문제 때문에 선택지는 새누리당뿐이었다고 위안할 수 없는 선택이다.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채 우리 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에피스테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된다. 우석훈 교수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지혜로운 해답을 함께 고민할 동력으로 이 책을 쓰신 듯하다. 경제학자의 현실적인 대안을 들어보고 싶다.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문학동네, 2014. 7.

 

알랭 드 보통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런던 시내 어느 카페에서 한번쯤 마주칠 것 같은 친근함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우리 삶에 사소한 것은 없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스타일리쉬한 글을 읽으면서 낄낄거리고 싶다. 올바르고 공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한다는 가장 상식적인 본분을 망각한 기레기들이 쏟아내는 기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취사선택하며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언론의 공정보도를 위해서 편집·편성의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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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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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아닌 실천을 위한 (별을 바라보는) 하녀의 철학,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4.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이 뜨거웠던 1990년대 후반, 현란한 언어로 포장된 경구로만 읽히던 니체를 제대로 읽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교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여섯 명의 스터디 멤버에게 니체는 탈근대를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이었다. 『도덕의 계보학』,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으면서도 니체 철학의 근간을 세우는 것이 우리에게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해석을 요구하는 니체 철학은 오독의 오독을 반복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보내던 시간이 꽤 흐른 후, 어둠에서 발견한 한줄기 빛이 고병권 선생님이 번역한 『한권으로 읽는 니체』였다. 그 이후 『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은 니체 원전을 읽을 때 옆에 두고 참조해야 하는 귀중한 책이었다.

 

                  

 

 

 

‘수유 너머’에서 잠시 뵈었던 고병권은 시간을 넘나들고, 공간을 변형하는 트랜스포머였다. 호모쿵푸스로 살아가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유 너머는 공동체 운영의 방식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공간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윤리적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실이었다. 그곳에서 (거의 훔쳐보는 것에 가까웠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고병권 선생님은 젊은 철학자였으나,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하게 무겁고 깊고 강직했다. 선생님의 역서와 저서를 통해서 니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만 겨우 전했을 뿐,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나, 젊은 철학자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책이 출판되면 빼놓지 않고 구해 읽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토록 멋진 철학자가 있다는 것에 위로 받으며 『철학자와 하녀』를 아주 천천히 읽었다. 때마침 만난 복음서와 같은 다소 격앙된 마음으로, 심장이 밑줄 긋게 하는 글들 행간에서 아주 오래 머무르며 이 책을 읽었다. 고병권의 글은 죽비가 되어 독자의 등을 내려친다.

 

 

별을 보는 철학자, 생계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녀, 그 둘이 바라보는 세계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넘나들 수 없는 경계를 이룬다. 저자는 하녀가 별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 땅의 최소수혜자에게 철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사회의 부품으로 순종하기를 강요하는 명령들에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 수 있는 힘이 철학에서 나올 것으로 믿는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인생을 전후로 가르는 큰 일을 치룬 지인의 여전한 모습을 보면서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지인께서는 십수년 동안 철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았던 무사무욕적인 공부는 선생님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나 또한 힘든 시기의 초조함을 극복하기 위한 바탕을 만들어준 것이 니체와 함께 한 세월의 힘이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만 갖게 된다면 벗은 시공을 초월해서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다. 나와 같이 비혼(非婚)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이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주적인 차원의 고민을 하는 것이 싱글의 삶이라고. 내 아이와 가족에 갇혀서 세상을 보지 않으므로 사해동포주의를 발휘하게 될 때가 참으로 많으면서도 성찰의 성찰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몽상가들이 많다.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 배움 이전에 배움이 일어난다.”

 

천국에서는 고민할 게 별로 없다. 선택하는 순간과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한다.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는 박학다식해 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애초에 답이 따로 잊지 않기 때문에 깨닫는 과정의 연속이다. 타자의 가치와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면 항상 초조하다. 초조한 사람은 현재를 충분히 즐길 수 없다. 사다리는 오르고 올라도 정상이 없으니, 상승만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

 

“노파나 노인에게서 원숙미 같은 것을 보고, 아이들의 매력을 순결한 눈으로 본다.”(45쪽) 『무지한 스승』의 인용 글을 통해 저자는 선생은 가르칠 수 없어도 학생은 배울 수 있음을 언급한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다. 세상은 배움의 수련장이고, 스승이 따로 없이 배움은 누구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능력이 불평등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 또한 새겨볼만하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3장에서는 “사물과 사람이 맺는 각별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십삼 년 동안 탔던 자동차와 이별했다. 오래 탄만큼 잔고장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손해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폐차 값도 안나온다는 반협박으로 차 값도 거의 받지 않고 팔았다. 그 이별의 마음은 인간의 이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힘든 주인 만나서 고생 많았을텐데, 이후에라도 다른 곳으로 팔려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맘이 들었다. 자동차는 혼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십여 년 동안 내가 겪었던 무수한 일에서 발생했던 나의 만 가지 감정을 다 알고 있는 사물이었다. 그러니 애완견과 가족이 되는 것인들 이해 못할 이유가 되겠는가? 그 이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게 될 터이므로, 물건을 집에 들이는 일에도 여러 번 고민하고 결정했다. 사랑하는 것에 대체물은 없다. 사랑을 잃고 나면 그 슬픔은 내 안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불쑥 불쑥 밖으로 뛰쳐나온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루쉰의 글에서 힘을 얻었을 수 있었다. 좀 더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무수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랑귀처럼 타인의 평판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더러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견뎌내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무수한 이유가 있다고. 손익을 따져야하는 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무엇을 유능하게 해내거나, 무능하기 때문일 때도 있다. 하다못해 과거에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한 사람과 닮았다는 이유로 싫어지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에 예민하게 굴다보면 옳은 소리를 낼 수 없을 때가 많아진다. 상당히(?) 많은 적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견뎌낼 때만 좀 더 윤리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꿇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149쪽).

 

얼마 전 직장에서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가 주어졌다. 직원들이 한동안 숙직과 야근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결정권은 남자 직원들에게 달려 있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남자 직원들은 남녀평등 차원에서 함께 숙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몇몇 남자 직원은 남자 직원이 숙직을, 아이들이 있는 여직원이 야근을 맡아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남성의 배려 차원이었고, 여직원은 구차하게 그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의 분위기는 살벌했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회의 바로 직전에 우리 모두 다문화연수 30시간을 함께 받았다는 것이다. 그 연수를 통해서 각 지역과 민족의 문화에 대하여 알게 되기는 했으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각성의 단초를 마련한 연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중동과 이슬람에 대한 대화가 오가기도 했는데, 그것은 단지 지식과 정보 수준이었다. 이해타산으로 굳어진 철옹성의 이기심에는 바늘 하나 뚫고 들어갈 구멍이 없었다. 앎과 삶이 정확히 분리되는 지점이었다. 그때 나는 『철학자와 하녀』를 읽고 있었다. 부조리한 세상, 모순된 인간들, 그 세상 안의 하녀인 나는 문득 하늘의 별이 보고 싶어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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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4-07-2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숲님,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아, 깊고도 울림이 있구나 감탄했어요.
그냥 서평단으로 쭉 달려오셨군요...
그동안 제가 너무 많은 무심을 저질렀어요....
알라딘에도 무심했고..(책도 거의 구입하지 않았고..) 숲님을 비롯한 몇 몇 분들께도 무심했어요..
다른 곳으로 방을 옮겨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 게 시큰둥해지다보니.....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잊지는 않고 있어요..
다음에 또 만날 날이 오겠죠?
그동안 건필, 건강..^^

더불어숲 2014-08-06 12:40   좋아요 1 | URL
어서 돌아오세요...
서평단의 내 유일한 벗님!
그대 메인 대문의 글 때문에...마음 숨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번 가을엔 꼭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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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히틀러의 철학자들』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여름언덕, 2014. 5.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아주 사적인 단상 1.

 

폴란드 크라코프(Krakow)에 가본 적이 있다. “하루에 24계절이 있다.”는 유럽의 속담처럼 그해 여름, 오슈비엥침은 가을처럼 서늘했다. 원주민들이 크라코프는 항상 잿빛 하늘,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고 얘기했다. 오슈비엥침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른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오슈비엥침을 다녀와서는 물 한 모금 넘길 수가 없었다. 때마침 여름방학이었던 유대인 아이들이 곳곳에서 기도하고 통곡 섞인 추모곡을 불렀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제주도로 현장 체험을 떠나는 동안, 유대 아이들 대부분은 국가가 제공하는 비용으로 2주 이상 오슈비엥침에 머물면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 교육과정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제주도 조차 4.3 항쟁의 역사적 장소가 아닌 관광으로만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슈비엥침은 유럽의 중심으로 유대인, 부랑아, 장애인을 모아오기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한 사람이 이루어낸 참사가 아니라, 유럽인, 세계인의 노골적 지지와 암묵적 동의를 통해서 이루어진 인류의 씻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아주 사적인 단상 2.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공부했다. 『존재와 시간』을 밑줄 그어 읽어가면서 탐독했던 시간은 지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섬세하게 그의 철학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철학으로 들어가는 관문 하나를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존재자(dasein)로서 -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인 - 인간은 늘 새로운 상황 속에 존재한다. 하이데거의 언어에 대한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푸코, 메를로 퐁티의 철학적 기반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생태주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하이데거를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는 기술의 탈은폐성과 지배적 기술을 통해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존재를 해명한다. 탈은폐의 방식을 하이데거는 부품(Bestand)라고 이름하는데,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즉시 가까이 지정된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 요청되고 있으며, 그것도 그 자신 또 다른 어떤 요청에 의해 대비 상태에 있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이다. 현대기술이라는 새로운 계기는 용재성과 전재성과 나란히 부품성이라는 새로운 드러냄을 보인다. 자연을 부품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세계를 이처럼 부품으로 드러나도록 도발적으로 닦아세우는 담당자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일을 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동시에 자신도 마찬가지로 도발적으로 닦아세워지는 자이다. "인간이 그 편에서 이미 자연 에너지를 채굴해 내라는 도발적 요청을 받고 있는 한에서만 이러한 주문 청탁하는 탈은폐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하이데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지도교수님은 나치의 정치적 도구로써 철학을 제공한 그의 과오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이데거를 공부하지 않고 실존주의를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특별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이광수, 이효석, 서정주의 글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아주 사적인 단상 3.

 

학회에서 가끔 보았던 사회학 전공 교수님. 미국 유학 이후 대학을 자리를 잡은 젊은 교수는 학회의 중심에 있었다. 사회학에서 진보는 부르디외식으로 보면 크나큰 상징자본이 될 수도 있고, 그 학문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삶의 궤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사회학은 법학, 의학, 경제학과는 다르다. 학문과 실천이 불일치하는 순간, 그의 연구 성과 모두 거짓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섦과 동시에 인수위원회에 들어가서 이전에 그가 연구한 것과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사는 세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옆에서 지켜보던 분의 변절을 보는 것은 학문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부의 힘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간 『히틀러의 철학자』는 그동안 당연하게 공부한 철학이 히틀러의 정치적 도구로써 어떻게 복무했는지 철저하게 규명하고 있다. “나치 입문서는 권위적이다. … 어느 한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결과물이다(131쪽).” 그가 명명하고 있는 ‘히틀러의 철학자’는 홀로코스트 시기 히틀러 주변의 철학자를 통칭한다. 칸트에서 니체, 알프레드 보임러에서 마르틴 하이데거, 한나 아렌트에서 발터 벤야민에 이르는 철학자들은 모두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고민했으며 이들의 삶은 서로 연관성이 많았다. 즉 그들은 학생이었고, 교사였고 동료였고 친구였으며 심지어 연인이기도 했다(7쪽).

성실한 사람일수록 나치 복무 역시 더욱 성실했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히히만의 재판을 다루고 있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하고 있듯이 악의 평범성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악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니체주의자의 변명

 

니체를 공부하다 보면, 니체철학의 어떤 부분이 히틀러를 매료시켰을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의지를 실현하는 위버멘쉬(초인), 끝없이 새롭게 변주되는 영원회귀, 연민과 약함에 대한 부정은 히틀러의 게르만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논리로 악용되었다. 인간을 벌주고 시험에 들게 하는 신(神)을 부정한 니체의 당시 기독교에 대한 혐오에 히틀러는 매료되었다. 사실 종교는 믿음이기도 하지만, 태도라고 했을 때, 니체가 부정한 신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신이었다. 니체는 예수에 대해서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천재라는 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천재라는 술을 섞는 바텐더에 가까웠다.(57쪽).”는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의 말처럼 니체철학은 히틀러에 의해서 오인된 희생양이다.

 

『히틀러의 철학자』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읽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만한 하이데거, 아렌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이 책의 핵심에 등장한다. 역사적 기록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중심의 구성은 소설을 읽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편안한 자세에서도 편안하게 읽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범(戰犯) 처벌에서도 하이데거 사상은 살아남았다. 전쟁 이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의 축적된 의학은 미국으로 넘어 갔고, 전쟁은 마취학을 비롯해 20세기 지식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철학이 윤리적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어떤 학문이 그러한 기준을 세우겠는가?’

 

저자 이본 셰라트의 문제의식을 우리의 현재로 가져와야 한다. 윤리적 인간으로 진화하기를 거부한다면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명과 종교가 소용될 일은 악을 평범하게 만드는 일 밖에는 없다. 2014년, 대한민국 국민은 세월 호 사건을 통해서 국가의 부재를 경험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의 요구를 의사자 대우나 세월 호 대학 특례 입학으로 물타기를 하는 현실 또한 답답하기만 하다. 『히틀러의 철학자』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지침인 지식과 철학의 진정한 역할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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