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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와 민주주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2. 03.

 

  

이시대의 지성, 강준만 교수님의 안식년의 성과인 『자동차와 민주주의』가 나왔다.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에 이어 『자동차와 민주주의』가 출판되었다. ‘자동차’를 수단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 탐구 가치는 충분하다. 중화학공업의 모토로 경제 성장과 국가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가 산업이다. 또한 ‘드림’은 -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중심축이 바로 ‘소비’이기 때문에 - 실체의 효용성으로 계산되지 않는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자동차의 문화사를 촘촘하게 살펴보면 자본주의 실체를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닮은 어떤 나라』 데일 마하리지 지음, 김훈 옮김, 마이클 윌리엄슨 사진, 여름언덕, 2012. 02. 

 

강준만 교수님의 『자동차와 민주주의』가 외부자적 시선으로 미국 역사를 탐색한다면, 『미국을 닮은 어떤 나라』는 내부자적 관점에서 미국 사회의 위기를 진단한다. 정의(正義)와 부(富)의 상징이었던 아메리카 드림이 세계를 장악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미국은 거듭된 불황으로 껍데기만 남았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저자들은 미국이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대공황에 비유하며, 1980년 레이건 이후 누적된 결과라고 단언한다. 저자들의 30년에 걸친 연구의 성과라고 한다면 신뢰할만하지 않은가? 데일 마하리지는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현장을 기록하였다. 미국 현실과의 직면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90% 학생이 불행한 교육의 풍경 『최고의 학교』남승희 지음, 인카운터, 2012. 03.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학교의 풍경과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을 성찰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교육문제의 모든 책임을 교사와 공교육에 전가시키는 사회적 담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 『최고의 학교』다. 학교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적 공간이 아니다. 상징자본이 붕괴되어 버린 학교는 ‘입시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학교의 사회화와 선발의 기능에 매몰되어서 학교는 비판적 사고 자체를 마비시켰다. 한명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만 명의 행복한 인재를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최고의 학교』는 도구적 기능인으로 계량화하는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교육 문제가 정치경제에서 기인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희망을 발견한다.

 

 

 

 

 

『학교폭력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문재현 지음, 살림터, 2012. 02.

 

 

 

『최고의 학교』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노력하는 교사와 전문가들의 연구팀이 펴낸 책이므로,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폭력은 사실 사회폭력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급사회를 경험한다. 학교의 문화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알게 될 것이다.

 

 

 

 

 

 

 

『영어 계급사회』남태현 지음, 오월의봄, 2012. 02. 

 

 

한국 교육의 최고 정점에 영어가 있다. 현재 수학능력시험의 영어 듣기를 5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난이도에 따라서 다른 문제를 학생들이 선택하게 된다.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치러야 할 관문에는 ‘영어’가 있다. 얼마전 일요 스페셜에서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 서른세 살의 청년이 등장했다. 다른 과목은 모두 통과할 자신이 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포기한 영어 때문에 공무원이 되지 못하는 청년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영어 없이는 다른 능력을 갖춘다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학교와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광기에 가까운 한국의 영어 사교육과 국가 정책,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영어를 통한 계급 간 구별 짓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얼 유토피아』 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권화현 옮김, 들녘(코기토), 2012. 02.

 

"정당하고 인간적인 삶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정표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 나왔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바운더리로 통합하는 듯 보였다. 사회주의 붕괴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있지 않다는 것은 바로 드러났다. 지역 간, 인종 간, 계급 간의 양극화가 첨예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조적 악순환에 절망한 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 진정 리얼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는 없을까? 미래는 희망의 꿈을 놓지 않는 자(者)의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유토피아는 real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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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Together

『왜 분노하지 않는가』

존 커크 보이드(지은이), 최선영(옮긴이), 중앙books(중앙북스), 2011. 12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에서 출발하기

 

한번 상상을 해보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누구도 어떤 조건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너희들이 태어날 세상을 만들어보라는 절대자의 요청을 받았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우리는 아직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재능을 가지고, 어떤 외모를 가지고 세상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만일 인간이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 태어나거나, 다양한 자본을 소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괜찮을 것이다. 반대로 부모의 능력이 없는데 외모까지 추한 상태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겠는가? 당연히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홈리스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이로운 세상이라면, 내가 무엇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괜찮은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상상력에서 천부인권을 이야기하는 정치철학자가 바로 롤즈(John Rawls)다. 그는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에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가정을 설득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상상력을 발휘한다. 사회계약설이 논리적으로 전제하는 ‘자연 상태’를 롤즈는 ‘원초적 입장’으로 전환한다. 원초적 입장은 계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존재로서 도덕적 인격과 권리, 기회, 협동 등과 같은 사회적 기본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약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원리를 담게 된다. 이 원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자유 우선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고 불평등의 원인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이 도출된다. 이로써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자유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섯 가지 자유를 누릴 권리 - 저절로 외우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섯 가지 권리를 손가락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우리 모두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손가락과 각각의 인권을 연결함으로써 잊지 않도록 돕는다. 손을 원해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는 방식으로 천부인권 개념을 이해하게 하는 방식이 탁월했다. 엄지손가락의 강한 힘은 언론의 자유, 집게손가락은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종교의 자유, 가운데 손가락은 가장 길기 때문에 풍족함으로, 넷째손가락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을 연상하게 하는 환경에 대한 자유로, 새끼손가락은 가장 유약하기 때문에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는 인권을 기억해야 할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비유가 될 것이다. 세계화가 끌고 들어온 부와 권력의 집중으로 인권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역으로 이제 인권은 한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인권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인권은 감수성으로 출발하고 완성된다.

 

인권은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진보교육감의 등장은 교문 앞에서 멈춘 인권을 상기시켰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뒤집어 보고, 타인의 관점으로 나의 감수성을 이입시키는 일은 존재 기반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학생인권조례’ 통과에서 부딪히는 여러 보수 단체와 교육청의 갈등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한다는 논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에는 논거가 부족하다. 교권은 학생인권을 억압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상징자본을 존중하고 경제의 논리를 교육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때 지켜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과 교사의 권리를 반비례로 보는 것은 둘 모두를 소외시키는 왜곡된 교육 논리를 빚어낼 뿐이다. 인권과 이슈들이 논쟁화될 때 감수성 또한 발전할 것이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는 인권을 감수성으로 접근하는 개론서로서 아주 훌륭하다. 난해한 이론의 토대 없이도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사고(思考)의 각을 1도만 바꿔도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권을 사유한다는 것은 인권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이 책은 2048 프로젝트가 제기하는 질문을 함께 공유하고, 성문화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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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월 출간 도서는 정말 탁월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추천하는 모든 도서에 각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멋진 책들과 연애하시기를 바라며, 추천합니다.^^*

 

 

 

『웃음의 심리학』마리안 라프랑스, 윤영삼 옮김, 중앙books(중앙북스)

 

 

‘웃음’ 만큼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는 표정도 없을 것이다. 관계성을 담고 있는 웃음을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라면, 한번쯤 읽고 싶지 않은가? 『웃음의 심리학』은 심리학의 대가인 예일대학 마리안 라프랑스의 저서다. 실험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자세, 목소리 톤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여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를 분석한다. 웃음은 사회적 결과를 기대하는 행동이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증명한다. 전략적인 웃음, 조작된 웃음의 정치학을 읽어내는 비법(?)까지 전수받을 수 있는 책이다.

 

 

 

 

『집단 기억의 파괴』로버트 베번, 나현영 옮김, 알마

 

건축물은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 공간에 터전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전쟁으로 파괴 되거나, 정치 세력이 바뀌면서 용도가 달라져 훼손된 건축물을 여행 중에 만나면 우리는 오래 오래 심장이 에인다. 단지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무의식의 토양이 된 인류 유산의 상실이다. 건축물은 물적인 가치로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의 자산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파괴의 실상을 고발하다 나치가 파괴한 이슬람의 건축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의 건물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일, 일본의 한국문화 말살 등은 정복당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과거의 말살이고, 이는 그들의 미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서 집단 기억의 파괴를 의미한다. 건축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은 전 세계 저널리스트들의 기사와 전공 분야의 학자, 역사가, 운동 단체, 인권 단체의 저작을 참고하여 집단 기억의 파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김광웅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general한 specialist를 요구하는 21세기 키워드는 통섭, 융합이다.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는 서울대학교에서 주관한 ‘미래 대학 콜로키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10명의 석학이 4년 간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하였다. 융합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의 통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개개인의 삶을 전망하는 미래학으로도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이와사부로 코소, 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

 

책도 흥미진진하지만, 역자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 역자들이다. 진보적 번역모임 <서울리다리티>에서 집단 번역한 책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역자인 소량, 디디, 하지메는 전업역자가 아니다. 직업이 다양하다. 비정규 가사 노동자 겸 인류학자인 하지메, 중학교 국어교사인 디디, 소량은 공상적 국제가내수공업 연대 조직에서 빵을 굽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인류의 90%가 거주하는 다중적인 공간 ‘도시’는 ‘유토피아’와 ‘움직이는 신체’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인류의 꿈과 욕망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 장 마다 뉴욕 민중의 생명력과 활기가 하나의 신체처럼 그려지며 생생한 현장을 느끼게 한다.

 

 

 

 

 

『따뜻한 경쟁』맹찬형, 서해문집

 

무한 경쟁, 승자독식의 신화가 한국의 지배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는 차가운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사다리에는 위계에 있으나, 아무리 올라가도 끝은 없다. 경쟁은 또 다른 경쟁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삶을 피폐화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개인이 사다리를 걷어찰 용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더욱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책이 있다. 바로 유럽본부 주재 특파원으로 있는 맹찬형의 『따뜻한 경쟁』이다. 그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경쟁사회 한국을 분석한다. 현실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물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누구도 패자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일독을 권한다.

 

 

 

 

『소셜테이너』장윤선, 오마이북

 

김제동, 김미화, 김여진, 이 세사람의 이름을 엮어 주는 공통 분모, 바로 ‘소셜테이너’다. 소셜테이너(Socialtainer)는 ‘소셜(Social)’과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사회적 발언이나 활동을 하는 대중문화예술인을 의미한다. 특정 직업인으로 분류되기에 앞서, 이들은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사회적 실천과 발언을 하는 소셜테이너를 2010년부터 1년여 동안 인터뷰하여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기사를 추려 책으로 엮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소셜테이너 19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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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2-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앙 난 왜 이 책들을 처음 보는 거죠?
신간 검색을 제대로 안했나봐요...ㅡ.ㅡ
저는 그냥 책만 올리고 사라졌는데 정성스레 페이퍼 작성하셨네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마지막 인사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진검 승부,

 

<부러진 화살>(2011), 감독 : 정지영, 출연 : 안성기 박원상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억울하게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1년 6개월에 걸쳐 여러 정부 부처에 수많은 진정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했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그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사법부였으나, 교수 지위 확인 재판에서 상식 밖의 재판으로 패소하였다. 제도권을 불신하고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담당판사였던 박홍우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김명호 교수는 ‘석궁 교수’라고 불명예를 짊어졌다. 그는 현재 4년 형기를 마치고 지난 1월 출소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화했고, 사법부의 재판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있다.

 

 

영화는 노동 전문 변호사인 박준이 김경호 교수의 항소심을 변호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 살짝 바뀌고, 영화적 구성을 위해서 몇몇 가상 인물이 삽입되었지만, 재판 속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기소 과정, 재판 내용은 당시의 사실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사건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의뢰인>과 같은 법정 장르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법정의 규칙과 논리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5억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2012년 흥행가도의 첫 주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남부군>, <하얀 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라는 영화 이후, 13년만에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 개봉 당시 보다 두 배 이상의 상영관으로 확대되면서 헐리웃 영화들에 대적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관객의 입소문과 영화 자체의 힘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묘사하는데 코미디만한 것이 없다. <부러진 화살>의 강점은 사건 자체의 무거움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사자인 김경호 교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주어진 장애들을 하나하나 뛰어넘거나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법정에서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상식 밖의 사건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는 유머가 대신한다. “유머는 가장 큰 슬픔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연, 조연 모두 코미디 캐릭터를 변주해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비장함이 상쇄되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다.

 

코미디 설정으로 새롭게 구성된 캐릭터들은 김경호 교수가 피고이고 피해자일 뿐, 범죄자이거나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억울한 피고인 김경호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서도, 스스로 재판을 준비하는 데, 그 과정이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는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도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보수 꼴통’이라고 자처하는 김경호 교수를 통해서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원칙을 가지고 신념을 실천한다면, 한국의 보수를 꼴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원칙도, 철학도 모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나 고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적’ 아쉬움이 남는다. <부러진 화살>은 팔구십년대 영화의 클래식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백한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보면서, 감독의 전작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발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화살>의 클래식한 우직한 느낌은 촌스러운 영화 용법으로, 영화의 젊은 감각과 방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도식적인 관계 구성은 과거 영화로 회귀한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노장의 손길과 뚝심이 느껴지지만, 그 클래식함은 21세기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만 관객들이 이 형식적 취약성을 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진정성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저예산으로 홍보도 약했고, 상영관 수도 적었으나, 이것이 이렇게 개봉관을 늘려가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시대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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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겨울은 반드시 봄을 맞이한다. 맞이할 것이다. 맞이해야만 한다.

 

<래빗 홀>(Rabbit Hole, 2010) 감독 존 카메론 미첼/출연 니콜 키드먼, 아론 애크하트

 

<래빗 홀>은 <헤드윅>, <숏버스>의 감독 존 카메론 미첼과 배우 니콜 키드먼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의 원작은 데이비드 린제이가 제작한 연극에 바탕을 두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강렬한 인상을 심었던 연극 <레빗홀>은 퓰리쳐 상 수상, 토니 어워즈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부부 이야기에 공감하여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아름답고, 민감하며,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어린 아들의 죽음 이후, 부부가 겪어 나가는 일상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누구나 직면하게 될 수 있는 상실과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지만,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관객은 고통에 직면하고 극복해 가는 여정의 주체로 위치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들을 잃고 일상을 유지하기도 힘든 코벳 부부, 행복이 컸던 만큼 아들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는 역설적으로 아들의 물건을 정리해서 치워버리거나, 아들을 차로 친 가해 소년을 찾아가서 위안을 얻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아내를 위로하고 소통하려는 남편의 시도는 매번 거절당한다. 남편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겪고 있는 다른 여자와 마리화나를 피우며 슬픔을 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 간다.

 

회복 불능의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바로 보지 못한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없다. 마당에 심고 있던 화초를 실수로 밟은 이웃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고 있는 모르는 여자의 뺨을 때리는 황당한 장면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베카는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가 보지만, 언제나 사람과 상황에 부딪혀서 허둥대고 겁을 먹는다. 마약으로 아들을 잃은 자신의 엄마에게 폭언을 퍼 붓고, 뱃속에 아이를 품은 행복한 여동생을 매번 불안하게 만든다. 주변 사람 하나둘 뒷걸음질 치게 하는 베카는 상실의 동반자인 남편까지 슬픔에서 배제시키며 자신의 밀실로 잠행한다.

 

카메라는 아들을 잃은 코벳 부부, 특히 아내 베카에게 응시하고 있지만, 사실 주변인들 역시 감당키 어려웠던 상실을 끌어안고 숨죽인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상실의 슬픔은 도처에 퍼져 있다. 자녀를 잃고 집단 심리 치료를 십수년 째 받는 사람들, 마약으로 돌연사한 아들과 11년째 이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베카의 엄마,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레빗홀’이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 십대 소년은 베카의 슬픔 역시 그 많은 상실 중 하나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레빗홀>은 코벳 부부의 아들을 차로 친 십대소년이 베카에게 선물한 만화의 제목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로 간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단지 슬픔의 차원일 뿐이고, 다른 세계에서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잠시지만, 현재의 슬픔을 잊게 한다. 그렇게 수많은 차원의 세계를 연결하는 ‘레빗 홀’이 있고, 각각의 차원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조금은 낙관과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므로,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평정심으로 회복하기를 바라는 베카에 대한 소년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깊은 슬픔에 빠진 부부에게 계몽적인 미션을 제시하지 않는다. 슬픔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 개인의 몫으로, 설사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온전한 위로가 어렵다. <레빗홀>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켜나 철저히 개인의 고통에만 집중한다. 개개인의 시계는 - 거대담론의 그늘에 가려져 - 미시사의 소우주를 형성하며, 초침과 분침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슬픔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내는 것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생명을 키워낼 새봄의 토양이 준비되어 있다. 깊었던 사랑은 온몸에 상흔을 남기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직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온몸에 새겨져서 일생을 함께 간다. 즉 슬픔의 무게가 변하여 견딜만한 것이 된다 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주머니 속에 넣어가지고 다닐 만한 벽돌”이 되어서 언제든지 꺼내볼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남은 세월 그 슬픔을 인정하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야 하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영화 <레빗홀>은 회복 불능의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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